100년 전 골목 카페에서 프로이트와 커피 한잔을

2014. 9. 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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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매거진 esc] 여행

예술인들의 흔적 곳곳에 밴 오스트리아 빈 골목길 산책과 카페 문화 탐방

'예술의 도시' 오스트리아 빈(영어명 비엔나). 너무나 유명한 이것, '예술' 말고 빈의 다른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4박6일 동안 지하철로, 트램(전차)으로, 또 걸어서 빈 시내를 돌아다니며 마주친 건 죄다 음악과 그림, 그리고 그것들을 연주하고 전시하며 기념하는, 예술적인 공간들이었다. 중심가에도 변두리에도, 도심을 관통하는 도나우 강변에서도 여행객을 기다리는 건 모차르트와 베토벤이요, 클림트나 에곤 실레 같은 화가, 건축가인 오토 바그너 등 거장 예술가들의 흔적이었다. 그냥 기다리는 게 아니라, 서로 얽히고설킨 인연들을 거느린 채였다. 빈은 예술과 일상생활, 전통과 첨단 문화가 공존하는 어쩔 수 없는 예술도시였다. 아쉽게도 오페라극장·콘서트홀 등은 여름 휴식에 들어가 거의 매일 곳곳에서 벌어진다는 공연·연주회를 접할 수는 없었지만, 음악가·화가들의 발자취를 뒤적이며 음악과 그림이 어우러진 진한 향기의 여정을 누렸다.

한자리에 모여 울리는 음악 거장들의 선율

"위대한 일을 하지 않고 죽은 자에겐 삶이란 없다." 오스트리아 빈 남쪽 외곽의 중앙묘지. 제2문을 올라 음악가들 묘역으로 가는 길에 만난 아돌프 레만이란 이의 묘비명이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 묘비명)보다는 덜하지만, 위대한 일을 더 못하고 떠나는 한 예술가의 탄식, '죽어 마땅하다'는 겸손과 죽음을 대하는 여유로움, 유머가 묻어난다. 빈 중앙묘지는 대부분 '위대한 일'을 하고 죽은, 오스트리아의 예술가들과 명사들이 묻힌 곳이다.

'음악가들'이란 소박한 팻말 옆에, 하나같이 '위대한 일'을 펼쳐놓고 떠나간 음악가들의 묘역이 있다. 그 이름도 영롱한 모차르트·베토벤·슈베르트·브람스·요한 슈트라우스 일가…. 이들 중 하나의 묘만으로도 기념물이 될 만한, 쟁쟁한 음악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이다. 빈을 방문한 각국 여행자들이 저마다 꽃다발을 들고 이 공동묘지를 찾는 이유다.

'음악가들' 묘역의 중심에 모차르트가 있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묘는 실제 무덤이 아닌 기념비다.(매장지가 확인되지 않았다.) 모차르트 기념비 뒤 양쪽으로 그를 흠모했던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묘가 자리잡고 있다. 슈베르트는 아예 "죽으면 모차르트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옆으로는 '왈츠의 제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와 브람스의 묘가 나란히 서 있다. 묘 앞엔 방문자들이 바친 꽃들이 쌓여 시들어가고, 그 위에 다시 새 꽃들이 올려진다. 악기를 멘 오스트리아 젊은이도, 일본인 젊은 남녀도, 독일인 노부부도 손에 꽃 한송이씩을 들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묘 뒤쪽엔 <라데츠키 행진곡>을 쓴 그의 부친 요한 슈트라우스 1세와 역시 작곡가 겸 지휘자인 요제프 등 음악가 형제들의 묘가 늘어서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경기병 서곡>의 프란츠 폰 주페, 지휘자인 요한 헤르베크의 묘도 발견할 수 있다. 작곡가 쇤베르크와 체르니도, 오스트리아의 대표적 건축가 아돌프 로스도, <지니>라는 곡으로 유명한 대중가수 팔코도 이곳에 묻혀 있다. 오스트리아 역사·정치·문화에 밝은 이라면, 숲으로 우거진 묘역 곳곳을 산책하며 아는 이름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거장들의 발자취 따라 가보는 거리 산책

이들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 걷기 좋은 곳이 빈의 역사·문화 중심인 슈테판성당 주변 케른트너 거리 일대다. 오페라하우스에서 슈테판성당 주변까지 2㎞쯤 거리 곳곳을 거닐며 18~19세기에 걸쳐 절정을 이룬 '빈 음악파'들의 희미한 족적을 살펴볼 수 있다.

슈테플 백화점 건물 뒷골목에 프라우엔후버라는 오래된 카페가 있다. 1788년 개업 때 모차르트가 기념 연주를 했던 곳이자, 뒤에 베토벤도 찾아와 연주를 했던 곳이라고 한다. 슈테플 백화점 건물은 병마와 싸우던 모차르트가 1791년 숨을 거둔 집이 있던 곳이다. 이를 알리는 팻말을 뒷문 입구 벽에 붙여 놓았다. 케른트너 거리 건너편 골목 안에는 하이든이 2년간 살며, 뒤에 독일 국가가 된 <황제 찬가>를 작곡했던 집이 있다. 지금은 옛 모습을 잃고 다세대주택으로 남아 있다. 베토벤·슈베르트의 어릴 적 스승이자 빈 궁정 작곡가였던 안토니오 살리에리가 살던 집도 부근에 있다.

프로이트도 트로츠키도히틀러도 드나든140년 역사의 카페 첸트랄2011년 커피하우스 문화로세계문화유산 등록

오스트리아의 대표적 건축가 아돌프 로스가 1908년 설계해 지은 아메리칸 바(로스 바)를 보고 광장으로 나서면 빈을 대표하는 상징물인 슈테판 성당이 기다린다. 1359년 옛 성당 자리에 합스부르크 왕가가 고딕양식으로 재건한 건축물이다. 136m 높이의 성당 첨탑이 아름답다. 이 성당은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러진 곳이자 하이든·슈베르트가 소년성가대원으로 활약했던 곳이다.

베토벤은 괴팍한 성격으로, 한곳에서 이웃과 어울리지 못하고 떠돌이 생활을 했다. 빈 주변에서 옮겨다닌 집이 무려 80곳을 넘었다고 한다. 빈 북서쪽 외곽 그린칭의 호이리게 마을이 그중 한 지역이다. 호이리게란 '햇것'이란 뜻으로, 오스트리아에서도 가장 이름난 포도 산지다. 이곳에 베토벤이 살던 집과 산책로 등이 남아 있다. 1817년 한때 베토벤이 살던 집은 꽤 인기있는 식당이 돼 있다. 베토벤은 옮겨가는 집마다 다툼이 끊이지 않아 내쫓기듯 이사가야 했다지만, 이제 주민들은 베토벤 이름을 걸고 장사하며 여행객들을 맞는다.

거리마다 미술관·박물관 세계 명화 즐비

빈 여행의 필수 코스 중 하나가 미술관 탐방이다. 미술사박물관·벨베데레궁전·레오폴트미술관·알베르티나미술관·쿤스트하우스 등 세계적 명성의 미술관들이 기다린다. 특히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대대로 모아온 중세·근대 미술품들을 보유한 미술사박물관은 세계적인 규모와 수준을 자랑한다.

빈은 과거 '음악의 도시'로 통했지만, 근대 이후 '미술의 도시'로 떠올랐다. 이 배경에 세기말 오스트리아의 대표적 화가이자 한국인들이 유독 사랑하는 구스타프 클림트가 있다. 모차르트의 얼굴 그림과 함께, 빈의 거리나 기념품점들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그림이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본디 제목 '연인')다. 남녀가 키스하는 모습을 그린 황금빛 색채의 이 그림은 가방·머플러·지갑·물병·접시·컵 등 안 들어간 곳이 없을 정도다. 빈 공항에 도착하면 처음 만나게 되는 광고용 벽그림도 <키스>다.

클림트는 19세기 말 보수적인 정통 미술가협회에 반기를 들고, 실험적이고 자유로운 예술을 추구하는 이들이 모여 꾸린 이른바 '분리파'의 선두 주자였다. 클림트의 그림을 비롯해 그를 추종하던 화가 에곤 실레 등 분리파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곳이 벨베데레궁전과 레오폴트미술관 등이다.

벨베데레궁전에서 <키스> <신부> <물뱀> 등 15점의 클림트 작품과 에곤 실레, 오스카어 코코슈카, 그리고 모네·마네·르누아르·밀레 등 저명한 화가들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2001년 문 연 레오폴트미술관은, 어둡고 우울하고 퇴폐적인 세기말 분위기로 가득한 에곤 실레의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한 미술관이다. <삶과 죽음> 등 클림트 작품들도 이곳에 있다.

100년 넘은 카페에서 '비엔나커피' 한잔

빈의 골목들엔 예술가와 명사들이 드나들던 오래된 커피하우스들이 숱하게 남아 있다. 자허호텔 카페, 카페 데멜, 카페 첸트랄 등이 대표적이다. 첸트랄은 프로이트도 트로츠키도 히틀러도 드나들었다는, 140년 역사를 지닌 카페다. 주소지를 아예 첸트랄로 옮겨놓고 살다시피 한 작가 알텐베르크가 밀랍인형의 모습으로 손님을 맞는다. 이 작가는 주변의 도움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이곳에서 글을 썼다고 한다. 150년 넘은 건물에서 이어져온 첸트랄의 커피하우스 문화는 2011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우리나라에서 한때 유행한 '비엔나커피'(커피에 휘핑크림을 얹어주는)는 비엔나에 없었지만, 비슷한 형식의 커피로 멜랑제가 있었다. 커피잔이 아닌 유리컵에 담겨 나왔고, 따로 물을 한 잔 곁들이는 점이 달랐다. 초코케이크('자허토르테'로 대표되는)도 따라 나온다. "먼저 물을 드시오. 입을 씻고 마셔야 커피 고유의 향을 즐길 수 있다오." 직원은 이것이 비엔나커피를 즐기는 전통 방식이라고 말했다. 높직한 천장의 1층 공간은 여행자들로 북적인다. 2층은 행사용 공간이다. "연 400여차례 예약이 들어온다"는 귀빈 전용 행사장이다. 더워도 에어컨 없이 운영하는 것 또한 첸트랄의 전통이라고 한다.

17세기 말 침입했던 튀르크족이 남겨두고 간 몇 개의 '커피 자루'에서 시작됐다는 빈의 커피하우스 문화는 이제 세계 여행객을 불러들이는 아이콘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빈(오스트리아)/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 여행 정보대한항공이 인천공항에서 빈공항까지 주 3회(수·금·일) 직항편(261석 규모 B777)을 운항한다. 비행시간은 갈 때 10시간30분, 올 때 9시간30분. 10월26일부터 내년 3월28일까지는 인천~빈~취리히~인천 노선으로 병합 운항(화·목·토)한다. 한국과의 시차는 7시간. 오스트리아 빈의 가을 날씨는 한국과 비슷하거나 약간 더 서늘한 수준이다. 빈 인구는 약 180만명. 전원은 220볼트로 한국과 같다. 물가는 한국보다 다소 비싼 편이다. 대표적인 전통음식은 돈가스·비프가스와 비슷한 슈니첼(사진)이다. 소·돼지·닭고기 등을 얇게 썰고 다져 밀가루·빵가루를 입혀 바삭하게 튀겨 낸다. 노점에서 파는 구운 소시지를 겨자에 찍어 맥주를 곁들여 점심을 때우는 이들도 많다. 체인 호텔인 오스트리아 트렌드 호텔은 깔끔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준특급호텔이다. 벨베데레궁전 부근의 사보옌 호텔 등 10여개의 체인호텔이 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별장이던 쇤브룬궁전의 건물 일부를 개축해 선보인 '황제 체험 숙박 패키지'도 있다. 호텔까지 마차 사용, 허니문 나이트, 미니 바, 조식이 제공되는 신혼여행 패키지 1박 2700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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