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일하는 기사님들 덕에 'DJ처리'는 10년째 선곡 중

정상혁 기자 2014. 8. 2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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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 32번 박○○ 기사님, 운전 잘하고 계시죠." "길 건너편에서 돈다발 들고 있어도 그건 내 손님 아닙니다. 불법 유턴 금지." 발라드·팝송·뽕짝을 넘나드는 '리믹스' 노래와 함께 칼칼한 목소리로 '주말 근무자들'의 안부를 묻는 남자가 있다. "택시, 버스, 포클레인, 화물차, 봉제 공장, 세탁소, 마트, 주유소…. 주말 저녁에 일하시는 분들 신나게 해드려야죠." 주말 생방송 SBS 러브FM 'DJ처리와 함께 아자아자'의 DJ 신철(46·사진)이 말했다. 예전 '철이와 미애'의 그 철이다.

벌써 10년째다. 26일엔 기념 공개방송도 했다. 이날 경기 광주시 분원공설운동장엔 100대 가까운 택시가 운집했다. '시흥·안산 버스 철두철미' '수원 다크호스 KD 운송그룹' 등 26곳 운수회사 팬클럽이 오전부터 운동장에 천막을 쳐놓고 공연을 기다렸다. 하루 일당을 포기하고 모인 사람들이다. 오후 6시 30분 700여명이 객석을 채웠다. 신철이 무대에 올라 납죽 큰절을 하더니 일어나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를 춘다. 수원에서 온 버스기사 박송기(48)씨가 "역시 두목!"이라며 손뼉을 친다. 이들이 DJ를 부르는 방식이다.

기존 라디오 방송과 다르다. 일단 4시간이다. 추석·설 명절엔 12시간, 2005년엔 광복 60주년을 맞아 35시간 생방송을 하기도 했다. 신철의 말대로 '지구상에 없는 라디오'다. 리믹스 노래와 사연 소개엔 직접 성우를 불러다 녹음한 특수 음향이 섞인다. 식당 입구에 들어서면 나오는 기계음 "어서 오세요" 같은 것들이다. 하루 당도하는 50원짜리 유료 문자만 3만여개. 라디오계의 최강자 '2시 탈출 컬투쇼'의 문자 수가 3000개 정도임을 감안하면 그 인기를 짐작하고 남는다.

"하루 16시간 운전하고, 평균 수익이 200만원 조금 넘는 분들이에요. 좁은 공간에서 스트레스 풀 데가 어딨겠어요." 차량 뒤편에 이 방송 홍보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고, 아예 주파수인 103.5㎒를 따 휴대전화 뒷번호를 1035로 바꾼 택시 기사도 있다. 청취자는 보낸 문자 수에 따라 9개의 서열로 분류되는데, 지금까지 총 17만건의 문자를 보낸 '문자의 신(神)'도 있을 정도다. 신철이 김춘수 시인의 '꽃'을 읊기 시작했다. "그분들, 제가 이름 한번 불러 드리면 그 순간만큼은 주인공이 되는 거예요."

원래 방송 타깃은 주말 여행객이었다. "근데 놀러 가는 분들은 잘 안 듣고, 정작 고정 팬은 일하시는 분들이더라고요." 타깃을 바꿨다. 수도권 운수회사와 공장 일대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며 얘길 들었다. 주말 방송이지만 지금도 나머지 5일 중 3일은 노래를 섞는 데 할애하고, 하루를 비워 사람들을 만난다. "경기 부천·성남·수원·오산·시흥·안산 다 다녀요. 가끔 '번개' 모임 하기도 하고요." 은어는 기본이다. "버스 기사분들을 위해 매번 하는 말이 있어요. '앞차는 빼지(서두르지) 말고, 뒤차는 밀지(재촉하지) 말자.' 그분들의 언어를 쓰니 동질감이 생기죠."

그의 목표는 "낙(樂) 없는 분들 곁에 오래 있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박사, DJ DOC 등 초대 가수 20명의 노래 릴레이가 펼쳐졌다. 오후 8시가 되자 조금씩 흩날리던 비가 억수로 퍼붓기 시작했다. "야, 분위기 좋다!" 신철이 외치자 이제 분위기는 이판사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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