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붓 대신 총.. 제천에서 '의리'를 찾았다

송세진 여행 칼럼니스트 2014. 8. 22.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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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세진의 On the Road / 제천 자양영당, 교동 민화마을

요즘 '의리'를 외치는 사람들이 많다. "의리!"로 인사를 대신하고, 모든 말에 '의리'를 넣는다. 그런데 구한말에도 의리(義理)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목숨을 내놓고 '의'를 위해 싸웠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위해 총을 든 사람들과 붓으로 표현된 꿈을 보러 제천으로 간다.

의병전시관

  ◆의로운 싸움이 시작된 서당

하얀 병풍 앞에서 묵념을 한다. 그림도 글씨도 없는 백지 병풍과 조그마한 위패…. 13도 의병의 넋을 기리는 '숭의사'의 모습이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의병의 이름을 확인할 길이 없어 하얗게 비워 두었다고 한다. 이름도 없이 스러져 간 사람들 앞에서 고개는 더 깊이 숙여진다.

숭의사가 있는 '자양영당'은 원래 서당이었다. 조선후기 유학자인 유중교가 고종 26년에 '자양서사'를 세워 후학을 양성했다. 6년 후, 의암 유인석은 이곳에 8도 유림을 모아 비밀결사를 조직 하게 된다. 의병은 상민이 아닌 유학자들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당대의 지식인으로서 수혜자였던 선비들은 나라의 위태로움 앞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그들은 단지 붓대신 총을 들었다.

곧이어 주민도 동참했다. 총을 쏠 줄 모르는 농민은 민병부대에 참여해 포수부대를 지원하고, 집집마다 비용을 모으고, 성 쌓기 작업에 참여했다. 모두가 한 마음이 됐기에 제천이 '의병의 고장'이 된 것이다. 의병은 1895년 장회전투의 승리를 시작으로 충주성 점령, 일본군 병참기지 공격, 제천전투 승리 등 성과를 거둔다.

그러나 일제의 보복은 악랄했다. 1907년 8월 23일, 제천전투의 승리가 있은 후 열흘도 안 되어 일제는 제천을 모조리 초토화 했다. 당시 영국의 멕켄지 기자는 이에 대해 생생히 기록하고 있다.

'나는 말에서 내려 잿더미 위를 걸어서 거리로 들어갔다……(중략)…… 완전한 벽 하나, 기둥 하나, 된장 항아리 하나 남지 않았다. 이제 제천은 지도 위에서 싹 지워져 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잃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의병 해산 후 유인석, 박장호, 황학수 등은 러시아, 만주지역으로 가 독립군의 모태가 된다.

이곳 자양영당은 고종 44년에 주자, 송시열, 이항로, 유중교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후에 의병 유인석, 이직신의 영정을 추봉했다. 매년 춘향제와 추향제로 제향을 지내며 숭의사에서는 매년 10월 제천의병제 때 고유제를 지낸다.

자양영당

숭의사 사당 내부

  ◆의병전시관과 유인석 생가

자양영당 옆에는 의병전시관이 있다. 이곳에서 의병의 역사와 생활, 유물을 볼 수 있다. 제천 의병의 주요 인물은 의암 유인석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커다란 동판 부조물이 있다. 위에 보이는 '의'(義)자는 유인석의 친필을 옮겼고, 아래 의병들의 모습은 멕킨지 기자의 사진을 옮긴 것이다. 상상이 아니라 실사를 바탕으로 했다니 조금 더 자세히 보게 된다. 얼굴은 어린 소년부터 중년 남자까지 다양하고 머리도 상투, 두건, 모자로 갓을 쓴 사람은 없다. 붓 대신 총과 칼을 들고 허리춤에는 총알을 둘렀다. 어쩌면 이들 앞에는 곱절의 일본군이 서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의 표정은 의연하고 당당하다.

한쪽에는 초토화된 제천의 사진이 있다. 일본의 보복으로 제천은 온전한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마치 커다란 쓰레기 더미와 같은 죽음의 마을이 되었다. 참혹한 사진들은 이어진다. 의병들이 잠시 들렀던 주막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일본군에 의해 어린 딸을 잃은 어머니는 가슴을 내 놓은 채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이다. 이 밖에도 의암 유인석 선생의 유물, 의병들의 지도, 칼과 총 등 투쟁에 사용했던 귀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의병전시관 옆에는 유인석 선생의 생가가 있다. 1908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하여 러시아와 만주지역에서 독립전쟁을 이끌었던 선생은 1915년 74세로 사망했다. 이후 자양영당에 배향되었고,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상이 추서됐다.

제천의병기념탑

민화그리기 체험

  ◆서민의 꿈이 담긴 민화 골목

의병전시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민화골목이 있다. 제천에 와서 두가지 오해를 풀고 간다. 의병은 민초의 저항이라 생각했는데 선비들로부터 시작됐다는 점과 민화 역시 왕실의 그림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임금님 자리 뒤편을 장식하는 그림인 '일월곤륜도'가 민화의 일종이라고 한다. 조선후기에 서민층에 유행하며 '속화'라고도 하였는데, 예술성과 의미에 비해 다소 저급한 평가를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우리 문화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상당히 저평가됐다는 점을 여기서도 확인하게 된다.

제천 교동은 민화를 보다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낮은 담장과 건물이 자리잡은 이곳에선 담벼락마다 개성있는 민화를 볼 수 있는데, 특유의 친근함과 유머로 자주 발길을 멈추게 된다. 호랑이나 모란 같은 전통적 민화에서 현대의 만화까지 담벼락마다 이야기가 가득하고 마을의 약도까지 민화로 표현했다. 쓰레기 분리수거통 옆에는 민화와 함께 엄중한 경고문을 만난다. 민화의 기능 중 하나인 실용성이 제대로 표현된 셈이다.

이곳에선 민화를 직접 그려볼 수도 있다. 민화연구소에서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 부채나 향낭을 완성해 본다. 부귀영화를 상징한다는 모란 꽃송이를 그리며 선생님이 들려주는 민화이야기를 들어도 좋고, 물고기 도장을 찍고 향주머니를 채우며 출세와 명예를 기원해 봐도 좋다. 우리가 몰랐던 민화 이야기 속에는 선조들의 해학과 민중의 꿈이 있다.

제천 여행은 유난히 사람 냄새가 났다. 의병이 된 선비의 땀과 눈물을 보았고, 꿈을 담은 민화에서는 부드러운 온기를 느꼈다. 그들은 돌아가거나 포장하지 않았고, 자신의 의지를 정직하게 표현했다. 경쟁사회 속의 치열함은 적당한 위선과 세련됨을 요구할 때가 많다. 그렇지만 진실만큼 힘이 센 것이 있을까. 갓을 벗은 선비의 모습에서 '의'에 대한 용기를 얻고 간다.

● 여행 정보

☞ 제천의병전시관 가는 법[승용차]경부고속도로 - 영동고속도로 - 중부내륙고속도로 - 가곡로 - 감곡 IC 교차로에서 '제천' 방면으로 좌회전 - 북부로 - 목계대교 - 하영고가교 - 다릿재터널 - 박달재터널 - 공전입구삼거리에서 '자양영당, 공전리' 방면으로 우측방향 - 공전입구삼거리에서 우회전 - 의암로 ☞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의병전시관, 자양영당: 검색어 '제천의병전시관', '자양영당' / 충청북도 제천시 보양읍 의암로 566-7지은순민화연구소: 검색어 '지은순민화연구소' / 충청북도 제천시 교동 91-7  < 주요 정보 >제천의병전시관http://jcub.okjc.net / 043-641-4811관람시간: 오전 9시30분~오후 5시30분관람료: 무료 지은순민화연구소예약문의: 043-651-3440민화 그리기 체험을 할 수 있는 곳5명 이상 체험 가능체험비: 1만원(1인)  < 주변 여행지 >공전자연학교박달재 아래 폐교를 개조해 만든 체험학교다. 주요 프로그램은 효소체험으로 전문가로부터 효소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도 듣고, 궁금했던 것들을 충분히 질문할 수 있어 주부에게 인기가 많다. 또한 자연 재료를 이용해 효소를 만들면서 잘못 알고 있던 효소 상식도 바로 잡을 수 있다. 식당에서는 효소자연밥상을 맛볼 수 있는데 직접 담은 효소를 이용해 만든 건강 밥상이다. 건강차를 마시는 카페와 단체 MT가 가능한 시설도 갖추고 있어 숙박과 식사가 모두 가능하다.효소자연밥상 8000원 / 효소자연밥상(수육, 차 포함) 1만5000원효소담그기 체험: 5인 이상 예약 / 1만~3만원 (1인)예약문의: 043-645-6758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의암로길 345 우드트레인폐역인 공전역이 예쁜 나무공방으로 바뀌었다. 이곳에서 재미있는 나무 작품을 구입할 수 있고, 주문제작 하거나 직접 목수가 되어 만들어 볼 수도 있다. 공전역은 선로가 바뀐 것이 아니라 기차가 서지 않아 폐역이 됐다. 그래서 기차도 자주 지나가고, 달리는 기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커피나 차를 마실 수도 있고 아기자기하게 볼 거리가 많아 시간을 잊고 공간을 즐기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나무공예체험비: 5000~3만원 (1인)개별 체험 가능, 단체는 예약필수예약문의: 070-4418-5120http://cafe.daum.net/wood1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의암로 698 공전역  < 음식 >빨간오뎅: 전국 '빨간오뎅'의 원조다. 이제 제천의 명물이 되어 택배 주문까지 해서 먹는다고 한다.빨간오뎅 (4개) 1000원 / 튀김 (3개) 1000원011-459-0605 / 충청북도 제천시 남천동 1155 두꺼비식당: 양푼이등갈비와 곤드레밥이 유명하다. 버섯을 푸짐하게 올린 매운 갈비국물에 어묵과 콩나물을 넣어 졸인 후 밥을 비벼 먹는다.등갈비(300g) 9000원 / 곤드레밥 4000원043-647-8847 / 충청북도 제천시 의림동 51-12  < 숙소 >제천관광호텔: 온돌과 침대방의 다양한 객실로 무난하게 지낼만한 숙소이다.객실가격: 5만~14만4000원예약문의: 043-643-4111충청북도 제천시 의림대로 11길 31

☞ 본 기사는 < 머니위크 > (

www.moneyweek.co.kr

) 제34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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