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민의 문화의 발견]아 어렵도다, 한글 맞춤법이여~

2014. 8. 20.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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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편집자들은 '이번에 내가 만든 책에 오탈자가 있으면 어쩌나, 띄어쓰기가 틀렸으면 어쩌나'를 항상 걱정하며 전전긍긍 살아가고 있다.

다음 예문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① 온갖 나쁜 놈, 치사한 놈, 못된 놈들도 '사실 알고 보면 불쌍해'라는 < 서울의 달 > 비슷한 풍미를 물씬 풍길 뿐더러 ② '암, 이런 게 세상 사는 이야기지' 하고 감탄하게 만든 < 유나의 거리 > 를 뒤늦게 몰아서 시청하느라 이틀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어요. ③ 저는 이 드라마를 마저 보고 나갈 테니 두 시간 후에 뵈요. ④ 굉장히 재미있으니까 이번 마감 끝나면 박송이 기자님도 속는 셈 치고 한 번 보시길.

문제) 위 문장에서 띄어쓰기가 틀린 부분을 모두 고르시오. ①에서 '들'은 '나쁜 놈, 치사한 놈, 못된 놈'을 전부 가리키기 때문에 의존명사로 보고 '못된 놈 들'처럼 띄어 써야 한다. 한편 '~ㄹ뿐더러'는 그 자체가 어미이므로 '풍길뿐더러'처럼 붙여 쓴다. ②에서 '게'는 '것이'의 줄임말이므로 '이런 게'로 띄어 쓴다. '것, 것이, 것을'로 바꾸어 써도 무방한 '거, 게, 걸'의 띄어쓰기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③에서 '뵈요'는 '뵈+어+요'이므로 '봬요'라고 쓴다. '썸'을 타던 이성(혹은 동성)에게 만나자고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는 '뵈요' 말고 '봬요'를 쓰도록 하자. ④에서 '번'은, 차례나 일의 횟수를 나타내는 경우 '한 번', '두 번', '세 번'과 같이 띄어 쓴다. 즉 '한번'을 '두 번', '세 번'으로 바꾸어 뜻이 통하면 '한 번'으로 띄어 쓰고, '어떤 일을 시험 삼아 시도함' 또는 '기회 있는 어떤 때'의 뜻으로 사용하려면, '한번'으로 붙여 쓰는 것이 적절하다.

뜬금없지만 이 글을 마주할 독자들도 좀 알아주었으면 하는 띄어쓰기에 대해 몇 자 적어 보았다. 십여년을 공부해 온 나도 늘 헛갈리는데('헷갈리다/헛갈리다'는 복수 표준어로 둘 다 맞다) 독자들은 오죽하랴. 더구나 다들 바쁘다 보니 맞춤법에 관한 공부를 따로 할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겠고. 그렇더라도 요즘에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순간적으로 올바른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요구되는 경우가 있으니까 이런 식으로 막간을 이용하여 자잘한 용례를 알아두면 다소나마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와 필기된 공책들 | 레이디경향 자료사진

잘해야 본전인 교정·교열

내가 책을 팔아 먹고살기 전, 일반 독자였을 때 어느 큰 출판사에서 펴낸 신작 소설을 읽다가 꽤 많은 오탈자(와 틀린 띄어쓰기)를 발견한 경험이 있다. 원고지로 6000장이 넘는 소설이었는데, 처음에는 그러려니 넘어갔지만 자꾸 눈에 거슬려서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눈에 띄는 부분을 표시해 보았다. 비전문가가 보기에도 대략 열다섯 군데 정도는 치명적이었다. 이를 알려주기 위해 해당 출판사의 게시판에 들어갔더니 어느새 거기에는 독자들의 항의성 글이 빼곡하게 게시되어 있었다. 그에 대한 담당 편집자의 사과 댓글도 드문드문 눈에 띄었고.

책을 팔아 먹고살기 시작한 이후에는 위와 같은 풍경을 더 자주 접하게 되었다. 당연히 편집자에게 교정·교열 실력이 중요하지만,(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을 듯한데 교정이란 오탈자를 바로잡는 일이고 교열이란 문장을 바로잡는 일이다) 위와 같은 풍경을 마주하고 있자면 잘해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서글프기도 하다. 가령 아주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다 치자. 제아무리 오탈자 없고 띄어쓰기가 완벽한 책이었다 해도 "와! 이 책은 틀린 대목 하나 없이 깔끔하네"라는 식의 반응이 독자들의 입에서 나오기란 요원하다. 만약 그런 책이 존재한다면 결과물의 몇 퍼센트는 분명히 편집자의 공일 텐데.

확인하고 또 확인해도 나오는 오자

오해는 마시라. 독자들에게 그런 칭찬을 듣자는 마음으로 책을 만드는 것은 절대로 아니니까. 대다수의 편집자들이 칭찬은 그만두고 인쇄 직전까지 교정지에서 맞춤법에 어긋나는 대목이 발견되지 않기를, '이번에 내가 만든 책에 오탈자가 있으면 어쩌나, 띄어쓰기가 틀렸으면 어쩌나'를 항상 걱정하며 전전긍긍 살아가고 있다. 한데 그런 삶을 사는 와중에 틀리지도 않은 대목에 대하여 '항의에 가까운 지적'을 받으면 아무래도 기분이 좋지 않다. 다른 편집자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좋지 않다.

편집자로서의 소양이 부족한 나는, 단어나 띄어쓰기가 틀렸다는 지적을 받으면 언제나 겸손한 자세로 그 지적을 수용할 마음이 충만하다. 지적받은 부분은 곧장 체크하고, 잊기 전에 교정용 책자에 표시해 두고, 늘 신경을 쓰고, 다음 쇄를 인쇄할 때 틀림없이 반영한다. 애당초 완벽한 문장이 될 때까지 교정·교열을 보고 책을 펴내는 것이 마땅한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존재한다.

그런데 간혹 출판사 홈페이지에 무척 불쾌한 언사를 곁들여 맞춤법에 대해 지적하는 분들이 있다. 내가 이렇게 지적해 줬으니 신간을 한 권 보내 달라는 식으로 뭔가 보상을 요구하기도 한다. 기분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잘못은 출판사가 먼저 했으니까. 문제는 그 지적이 타당하지 않을 때다. 가령 ①②③④는, 내가 편집한 책에서 올바르게 사용했음에도 '이건 명백히 틀렸다'며 몇몇 독자가 출판사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는 사례들이다. 확실히 '풍길 뿐만 아니라'에 익숙한 이들에게 '풍길뿐더러'는 띄어쓰기가 틀린 것처럼 보인다.

내 생각은 이렇다. 혹시 책을 읽다가 '풍길뿐더러'의 띄어쓰기가 올바르지 않아 보였다면, 그래서 꼭 출판사에 그걸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먼저 다음과 같은 자세를 가져보자. ① 포털의 국어사전에 들어가 '뿐더러'로 검색해 본다.('뿐더러'와 '뿐만 아니라'의 차이를 알게 된다) ② 한국어 맞춤법 검사기를 이용해 본다.(사이트 주소는 http://speller.cs.pusan.ac.kr) ③ 이런 절차(①, ②)가 귀찮다면 그냥 무시하고 지적하되 동네방네 떠들기보다는 출판사 게시판에 살짝 귀띔해 주시길.('귀뜸'은 틀리고 '귀띔'이 맞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나도 항상 인쇄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번 책에서는 절대로 실수하지 않으리라'는 각오로 눈에 불을 켜고 교정지를 읽고 또 읽지만 어찌 된 일인지 제대로 확인하고 넘어갔다 생각한 대목에서 어이없는 오자가 나오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러고 보면 오자는 하늘이 내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인쇄 과정에서 스멀스멀 자동 생성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짧은 원고에도 아마 맞춤법에 어긋나는 문장, 혹은 오자가 있겠지. < 주간경향 > 의 담당 에디터가 잘 고쳐 주리라 믿는다. 끝으로, '띄어쓰기'는 붙이고, '띄어 쓰다'는 띄어 쓴다. 아아, 어렵도다, 맞춤법의 세계여.

<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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