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추석, 양력으로 바꾸면 어떨까

2014. 7. 26.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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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추석은 9월8일이다. 1976년 이후 38년 만에 가장 이른 날짜다. '추석의 여름화'가 되풀이되면서 추석 날짜를 추수가 끝나는 시기의 양력으로 고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온난화 현상으로 100년 전 가을 시작일은 평균 9월11일께였지만 2000년대 들어 9월28일로 늦춰졌다. 내년부터 2029년까지 15년간의 추석 중 11번은 사실상 여름 추석이다. 여름 추석에는 농수산물 가격이 뛰고 성장촉진제가 과도하게 사용되는 등 부작용이 크기 때문에 날짜를 추수 후의 양력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 이용우 전경련 사회본부장의 주장이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오랜 기간 내려온 풍속을 자의적으로 바꿔선 안 된다는 것이다. 추석은 '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종합 축제이기 때문에 달을 가장 크게 볼 수 있는 음력 8월15일을 추석으로 지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치억 성균관대 교수는 농산물 가격 상승 등 경제적 문제가 있다면 추석 날짜는 현행대로 유지하되 제사와 성묘는 각자의 집안 사정에 맞게 자율적으로 하는 문화를 보급하자고 제안했다.

찬성설익은 과일 먹고 물가 '부채질' '늦여름 추석' 민생경제에 부담

시장 가격 급등락…농가 소득 안정성 해쳐

무더운 여름이다. 직장인들은 다가오는 여름휴가 준비에 즐겁겠지만, 유통업계나 농가에서는 추석 대목을 앞두고 비상이 걸렸다. 휴가철이 끝나자마자 추석이기 때문이다. 올해 추석은 양력으로 9월8일, 38년 만에 가장 이른 '여름 추석'이다.

추석은 중추절(仲秋節)이라고도 불리는데, '가을의 한가운데' '가을 중의 가을'을 뜻한다.

그러나 근래 들어 추석은 가을의 한가운데라기보다 곡물이 막 익기 시작하는 늦여름에 가깝다. 기후 온난화의 영향으로 여름이 길어지고, 겨울이 짧아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가을 시작일이 100년 전만 하더라도 9월11일께였으나, 2000년대 들어 9월28일께로 나타났다. 여름이 17일 길어진 것이다. 올해 추석만 문제가 아니다. 내년부터 2029년까지 향후 15년을 보면, 10월에 추석이 있는 경우는 2017년(10월4일), 2020년(10월1일), 2025년(10월6일), 2028년(10월3일)으로 네 번에 불과하다. 나머지 11번은 사실상 여름 추석이다.

여름 추석은 부작용이 크다. 우선 민생 경제에 부담이 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부터 14년간 여름 추석이었던 해의 9월에는 농수산물 물가가 전달보다 평균 2.5% 상승했다고 한다. 반면 가을 추석이었던 해의 물가상승률은 전월 대비 1.4%였다. 기상이변으로 물가가 폭등하는 경우도 있다. 2010년에는 태풍 곤파스, 2012년은 태풍 볼라벤으로 과일 가격이 급등했다. 국가태풍센터에 따르면 9월에도 태풍이 20% 가까이 분포하고 있다. 이른 추석의 경우 태풍으로 인해 농산물 가격 상승폭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둘째, 이른 추석으로 차례상에 화학약품 처리를 한 과일이 올라오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될 리가 없다. 사과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대표품종 후지의 숙기는 10월 하순으로, 추석이 이른 경우 수급불균형이 발생한다. 농가에서는 불가피하게 성장촉진제 같은 약품을 통해 출하시기를 앞당길 수밖에 없다. 배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신고배도 숙기가 10월 초순이라 마찬가지 상황이다.

셋째, 농가 소득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추석이 끝나고 양력 10월이 되면 맛과 영양이 뛰어난 곡식과 과일이 본격적으로 출하되는데, 정작 이때는 추석이 끝나 수요가 줄어 시장에서의 가격은 폭락한다.

또한 자연 숙성기간 이전에 상품을 출하하기 위한 여러 노력은 농가에 추가 비용도 들게 한다. 이는 결국 농가소득 안정을 저해하게 된다.

이제 우리 사회가 양력 추석을 검토해볼 때다. 기후변화로 달라진 환경을 반영하면서 국가 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다. 역사적으로 우리 조상들도 농사를 지을 때는 계절적 요인을 고려해 양력 24절기에 따랐다는 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제사, 생일 등은 음력을 따랐지만, 경제활동만큼은 예측이 가능하고 정확한 양력을 썼던 것이다.

경제적 효과를 고려할 때 추석을 주요 농산물의 수확이 끝나는 10월 셋째주 또는 넷째주 양력으로 옮기는 것은 어떨까. 제철 햇과일을 추석에 먹게 되니 국민 건강에 좋다. 소비자는 맛있는 농산물을 적정 가격으로 살 수 있고, 생산자는 출하시기를 예상한 계획 영농으로 안정된 소득을 올릴 수 있다. 이를 통해 온 국민이 풍요롭고 넉넉한 추석을 즐기면서, 전통 추석 본래의 의미도 계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반대경제 제일주의 논리 사로잡혀 전통명절 날짜 흔들어선 안돼

'음력 추석' 지키고 제사는 다른날 모실 수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 남짓, 아직도 10명의 희생자가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사태는 마무리되지 않았고 세월호가 남긴 상처는 여전히 아프다. 새삼 참사의 근본 원인을 말하자면 '사람'보다 '이익'을 우선시하는 물질중심주의였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잊지 않을 것이다. 참사가 남긴 교훈은 이 물질중심주의에 대한 자기반성이다.

추석 이야기를 하면서 왜 뜬금없는 세월호 타령이냐고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가 세월호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이유는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는 추석의 양력화도 세월호 사태의 원인이 된 물질중심주의, 경제제일주의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늦여름의 추석 때문에 수확 시기를 앞당기느라 일부 농가에서는 성장촉진제를 쓴다고 한다. 농작물 가격이 상승한 탓에 서민은 서민대로 부담을 안게 되고, 농가와 유통업계도 타격을 입는다. 이런 경제적 문제의 해결방안이 필요한 건 맞다. 그러나 이 경제논리가 과연 천년 동안 자리매김하고 있는 전통명절의 날짜를 바꾸는 명분으로 충분한 것인지 되물어봐야 할 것이다.

문헌에 따르면 추석은 신라시대 부녀자들이 편을 나눠 음력 7월16일부터 한 달간 베 짜기 시합을 한 뒤, 진 팀이 이긴 팀에 술과 음식을 대접하는 '가배(嘉俳)'라는 풍습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여기에 유교적인 조상 숭배 관념이 더해져 우리 조상들은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다녔다. 성묘가 끝나면 씨름이나 투우를 하기도 하고, 밤에는 달구경을 했다. '달떡'이라고도 불리는 송편을 곱게 빚어 나눠 먹었다. 추석은 단지 조상 숭배의 의미만이 있는 것이 아닌 '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종합 축제인 것이다. 1년 열두 달 중 가장 아름다운 보름달이 뜬다고 하는 음력 8월, '돌아보면 헐떡이던 여름이요, 내다보면 웅크릴 겨울이니, 이때를 놀지 않고 어느 때를 기다리랴'고 했던 최남선의 말처럼, 가장 즐기기 좋은 보름날이 바로 추석이다. 가끔 올해처럼 9월 초순에 추석을 맞이해야 하는 해도 있겠지만, 어쩌다 한 번일 뿐이다. 9월에도 여름 날씨가 이어지는 것은 음력의 죄가 아니라, 물질주의·경제제일주의가 만든 지구온난화 현상 때문이 아닌가.

명절의 날짜를 바꾸는 대신 한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싶다. 추석은 추석대로 음력으로 보내고, 조상 제사는 다른 날을 정해 모시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제도는 이미 영남지역의 상당수 문중에서 정착돼 있다. 필자가 속한 진성이씨 상계파 문중은 10여년 전부터 추석에 지내오던 묘사(墓祀)를 10월 셋째주 일요일로 옮겨 지내고 있다. 그렇게 되면 추석은 추석대로 가까운 친척 단위로 즐겁게 보낼 수 있고, 성묘는 적절한 시기에 할 수 있는 것이다. 보통 전통을 지켜오는 유림이나 문중이라고 하면 으레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할 것이라는 이미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전통을 지키는 입장에서, 전통의 본래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더 융통성 있고 합리적으로 운영한다.

추석의 양력화에 물론 도덕적인 문제가 직접적으로 개입돼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털끝만한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로 이어질 수 있다. 경제적인 이유에서 전통 문화를 부정하는 풍조가 생겨나게 된다면, 결국 다시 경제를 도덕의 우위에 놓는 관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는 것일 뿐이다. 세월호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다. 경제제일주의 시각에서 벗어나 종합적이고 중용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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