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까지 개로 꽉 찬 집..서로 싸우다 죽기도

2014. 7. 20.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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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생명 / 애니멀 호딩

[한겨레]

애니멀 호더가 20평도 안 되는 집에서 키우던 100여마리의 개가 동물사랑실천협회에 의해 경기도 광주시의 시유지에 마련된 비닐하우스로 옮겨졌다. 지난 14일 한 여성이 개들의 배설물을 치우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사람이 돌볼 수 있는 수준을 넘어 과도하게 많은 동물을 키우는 것을 ‘애니멀 호딩’(animal hoarding)이라고 합니다. 서구권 국가에선 십수년 전부터 사회문제로 부각됐던 문제죠. 문득 의문이 생깁니다. 왜 자신이 돌보기도 어려운 많은 동물을 좁은 공간에 데려오는 걸까요. 인간과 동물의 삶 모두를 황폐화시키는 애니멀 호딩은 왜 발생하는 걸까요.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최근 발생한 애니멀 호딩 사례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처음엔 50마리 정도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끊임없이 나오더니, 결국 그 집에서 나온 개가 100마리 정도 됩니다. 사실 정확한 숫자는 몰라요. 워낙 많은 개들을 한번에 옮겼고, 지금도 한곳에 모여 있다 보니 숫자를 정확히 세는 데에 무리가 있습니다. 90마리 이상인 것은 확실합니다.”

지난 14일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의 동물사랑실천협회(이하 동사실) 사무실에서 만난 손선원 간사는 하루 전 경기도 광주시 탄벌동의 한 주택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2층에 있는 그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부터 악취가 진동했습니다. 현관문을 여니 암모니아 냄새가 확 올라왔고, 금세 눈이 따가워졌습니다. 집 안에는 거실과 방마다, 심지어 화장실에까지 개들이 꽉 차 있었고, 바닥에는 개들의 배설물과 옷가지, 가재도구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창가에는 짐들이 잔뜩 쌓여 있어 대낮인데도 빛이 잘 들어오지 않았고, 창문은 꽁꽁 닫힌 채 어둠 속에서 개들의 눈빛만이 빛나고 있었죠.”

손 간사를 비롯한 동사실 회원 10여명은 13일 오전 광주시 탄벌동의 이 집을 찾았다. 이날 이들이 맡은 일은 길게는 10여년간 한번도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한 개 100여마리를 꺼내는 것이었다.

20평에 개 100마리
거동 불편한 70대 노인이
국민연금 털어 사료 사서
부대끼며 살고 있었다
곳곳 배설물에 악취 진동 돌볼 능력 안 되면서도
너무 많은 동물 키우는
사례가 국내에서도 늘어나
일종의 강박성 수집 장애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

하룻밤 사이 서로 싸우다 죽기까지

이 집의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보면, 실내 면적은 63.85㎡(19.3평)다. 어떻게 이 집에서 개가 100여마리나 살게 됐을까. 놀랍게도 이런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는 것이 박소연 대표의 설명이다.

“우리 단체가 다룬 사례만 해도 10여건 되고, 점점 늘고 있습니다. 관련 법규가 없어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이 문제를 외면하고, 우리 단체로 신고가 몰리고 있어요. 사실 좀 난감합니다. 한번에 수십마리나 되는 동물을 구조하면, 머물 곳을 마련하기도 어렵고, 사료비와 치료비 등도 시민단체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거든요.”

동사실은 5월 말 광주시 노인종합복지관의 사회복지사 김미광 주임에게서 제보를 받고, 6월2일 현장조사를 벌였다. 김 주임은 “3월 말 집주인과 세입자를 처음 만났고, 집 안에 수십마리의 개들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경제적 상황이나 건강 등을 고려해 개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여러 곳에 문의를 했으나 도움을 받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현장조사를 담당한 동사실의 활동가들도 집 안의 상태를 보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 위생상태가 워낙 안 좋아 동물뿐 아니라 사람의 건강마저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동사실은 동물을 사람과 분리시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으나 비용이 문제였다. 지난 6월12일 박 대표는 인터넷 누리집에 ‘동물 구조를 위한 모금을 하겠다’고 글을 올렸고, 한달간 1000만원에 가까운 금액이 모였다. 박 대표는 “아직 치료비, 사료값을 감당하기에 부족하지만, 날씨가 더워지고 있어 더 지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지난 13일 100여마리의 개들은 집 밖으로 나와 광주시가 시유지에 마련한 도척면 유정리의 한 비닐하우스로 옮겨졌다.

14일 오후 박소연, 전채은 동사실 대표, 손선원 간사와 함께 개들이 옮겨진 비닐하우스를 찾았다. 개들의 상태는 대부분 좋지 않았다. 상당수의 개들은 제대로 씻지 못해 털이 누렇게 물든 채 군데군데 뭉쳐 있었다. 배설물이 털에 묻은 탓이다. 박 대표는 “대부분 피부병이 있고, 파보바이러스에 감염되는 등 여러 질병을 앓고 있었다. 한 암컷은 옮기자마자 사산을 하는 등 건강이 몹시 안 좋았다”고 말했다.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비닐하우스로 옮겨진 개들이 하룻밤 사이에 서로 싸우다 두 마리가 죽고, 한 마리가 크게 다친 것이다. 박 대표는 “이곳으로 오기 전에도 개들의 몸에 상처가 많았다. 좁은 공간에서 서로 싸우며 죽고 다쳤을 가능성이 높다. 각방에 흩어졌던 개들이 한곳에 모인 것도 싸움의 한 원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은 공격성이 강한 개들을 격리시키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서구권 국가에선 이전부터 애니멀 호딩이 사회문제로 부각됐다. 미국 보스턴에 있는 터프츠대의 게리 패트라넥 교수는 1997년 ‘애니멀 호딩을 연구하는 모임’(HARC·The Hoarding of Animals Research Consortium)을 만들었다. 그가 2007년에 쓴 ‘애니멀 호딩: 활동가들이 알아야 할 내용’이란 보고서는 “애니멀 호딩은 한 가지 이유만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매우 복합적인 성격의 행동인데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 유형은 구조자형(Rescuer hoarder: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어 자신이 구조하지 않으면 동물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유형), 수동형(overwhelmed caregiver: 적극적으로 동물을 모으진 않았으나 번식을 막지 못한 유형), 착취자형(exploiter hoarder: 동물을 적극적으로 학대하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유형)이다. 미국정신의학회는 애니멀 호딩을 ‘강박성 수집 장애’의 하나로 분류했다. 미국의 뉴저지, 일리노이 등 일부 주에선 애니멀 호딩이 적발되면 ‘평생 동물 소유 금지’ 등의 조처와 함께 짧은 기간 구금이나 징역 형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 국제동물보호단체 페타(PETA)는 “애니멀 호딩은 경고나 처벌로 해결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라고 밝혔다. 동물을 모으는 사람들의 사회·경제적인 여건과 심리적 상태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개들 사라진 뒤 슬픔에 잠긴 할아버지

지난 6월2일 동물사랑실천협회 활동가가 애니멀 호더의 집을 현장조사하며 찍은 사진이다. 어두침침한 집안에는 방마다 심지어 화장실에까지 개들이 꽉 차 있었다. 동물사랑실천협회 제공

경기도 광주에서 발생한 애니멀 호딩의 사례는 어떤 유형일까. 15일 오후 개들이 머물렀던 집을 여러 차례 찾아가 문을 두드렸으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집 안에서는 여전히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전날 비닐하우스에서 만난 이 집의 세입자는 “주인집 할아버지가 밤에 와서 개 두 마리를 다시 데려갔다”고 전했다. 이 일로 동사실의 활동가들과 세입자 사이에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박 대표는 “집주인 할아버지가 다시 개를 데려가면 숫자가 늘어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밝혔다. 동네 주민들에게 그 집에서 개를 빼내는 것은 숙원사업이었다. 한 주민은 “개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짖는다. 자정이나 새벽에도 시끄럽게 울어서 못 잔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인근 아파트 주민은 “할아버지가 이웃들과는 말을 섞지 않는다. 화난 주민들이 집 앞에 가서 소리 지르고 욕을 해도 절대 문을 열지 않는다”고 전했다.

16일 전화인터뷰에 응한 광주시 노인종합복지관의 김미광 주임이 집주인 배아무개(73)씨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동물학대 지적에 대해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할아버지가 건강이 나빠지기 전엔 개를 씻기기도 하고, 청소도 하며 지냈다. 최근까지도 국민연금으로 수령받는 40만원 가운데 대부분을 개 사료를 사는 데에 썼다. 다만 건강이 나빠지면서 거동이 불편해졌고, 개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김 주임의 말을 종합하면 배씨는 애니멀 홀더 가운데 ‘수동형’에 가깝다. 배씨가 15년 전 지인에게서 받은 5마리의 개와 일부 유기견들이 번식해 100여마리로 수가 늘었다는 것이 김 주임의 설명이다. 개들과 배씨는 어떤 관계였을까. 김 주임은 “동물보호단체에서 개들을 데려간 이후 할아버지가 슬픔에 잠겼다. 평소에도 사람보단 개들과 더 가까웠다. 아내와는 이혼했고, 자녀들과도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낸다. 빚으로 인해 집은 가압류가 걸렸지만, 갚을 능력도 없다. 집 유리창이 항의하러 온 사람들에 의해 깨지는 등 이웃들과도 사이가 나빴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개들에게 더 의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씨가 다시 데려온 개는 그가 10년 넘게 키우던 시추종이다.

애니멀 호딩은 인간과 동물의 삶, 양쪽을 모두 망가뜨렸다. 하지만 이를 복구하는 주체는 공공이 아닌 민간인 것이 현실이다. 광주시의 위탁을 받아 노인복지관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오로지종합복지원은 배씨의 집을 수리하고, 개들을 다시 보내거나 중성화 수술을 하도록 설득하고 있다. 이를 위해 모금활동도 준비 중이다. 박소연 동사실 대표는 “구조한 개들을 치료해 새 주인을 찾아주려 한다. 애니멀 호딩에 대한 대중의 이해도를 높이는 활동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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