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민우 소설 | 원피스] 8회

2014. 7. 17.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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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민우 소설 < 8화 >

크리스마스가 낀 주에 나는 잠시 짬을 내 상담원에 들렀다. 내가 남겨두고 온 짐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상담원 대부분이 통화에 매달려 있었다. 나는 그들과 가볍게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내 자리는 이미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책상 위에 놓인 마분지 상자를 열어보았다. 보온병과 양장노트, 안경집, 옥편, 만년필 따위가 그 속에 들어 있었다. 나는 외투를 입은 채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전화선은 뽑혀 있었다. 나는 전화선의 이음매 부분을 아무런 의미도 없이 매만져보았다.

"장난전화라도 하시려고요?"

직원 하나가 나에게 녹차를 가져다주며 말했다. 하긴. 나는 생각했다. 줄곧 이 자리에서 못된 장난전화나 상대해왔는지도 모르지. 나는 녹차를 마시며 노트를 펼쳐보았다. 상담을 하며 받아 적은 메모들이 거기에 빼곡했다. 그러다 나는 갈피에 끼인 특별한 메모 한 장을 발견했다. 발코니에 관한 상담접수. XXX 각하께.

나는 전화선을 연결했다. 헤드셋을 착용하자 신호음이 울렸다. 그러나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인사를 남기건 남기지 않건 나는 후회할 것이다. 그렇다면 보다 후회를 덜할 쪽으로 선택을 내리면 되었다.

나는 전화 버튼을 눌렀다. 길게 이어지던 연결음 끝에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아가씨, 잘 지내고 계십니까?"

"이 녀석! 얌전히 있어!"

"틀림없이 잘 지내고 있는 거 같군요."

"어머, 아저씨 아니세요? 안 그래도 연락을 드리려고 했는데. 연말이고, 그동안 통 연락 못 드려서요."

"아가씨한테는 그편이 좋은 거 아닙니까."

"아저씬, 여전하시네요."

그녀에게는 애인이 생겨 있었다. 그녀는 어째서 자신에게 백수들만 꼬이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렸다. 나는 그 점에 대해선 무어라 조언을 해줄지 모르겠다고 그녀에게 솔직히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애인의 단점을 나에게 증명하기 위해 애를 썼다. 머리숱이 모자란다는 둥, 배가 나왔다는 둥, 양말을 이틀씩 신는다는 둥.

"덩치는 산만 해갖고 겁은 또 얼마나 많은데요.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남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그만 그녀의 애인을 구제해주고 싶었다. 화제를 돌리기 위해 나는 고양이의 안부를 물었다.

"얘는 너무 많이 먹어서 탈이에요. 사료는 거들떠도 안 봐요. 닭고기라면 사족을 못 쓰죠. 글쎄, 뼈까지 삼켜버리는 거 있죠."

"비만에 걸릴지도 모르겠군요."

"요즘은 무거워서 안아 들지도 못하겠어요. 다이어트를 시켜야 할까 봐요."

그때 수화기 너머로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그녀가 재빠르게 이동하는 발소리가 울렸다.

"그 사람이 왔나 봐요. 아저씨, 잠시만 기다리세요."

휴대전화를 어디에다 내려둔 것인지 감이 멀어졌다. 그러나 현관문의 잠금쇠가 돌아가는 소리, 그들이 서로를 다정하게 부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나는 안심이 되었다. 그들을 조금도 방해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나는 슬며시 전화선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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