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 공직 마감 조유행 하동군수, 작별인사 때 주민들 큰절 받은 이유는..

김대현 기자 2014. 6. 2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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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이제 (하동)군청을 떠나 집으로 돌아갑니다. 12년간 열심히 일했지만, 미흡했던 점은 너그러이 용서하세요."

지난 6월 17일 오전 10시30분, 대한노인회 하동읍 분회(중앙경로당). 오는 6월 30일 퇴임하는 조유행(68) 하동군수가 어르신들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자 그 자리에 있던 20여명의 노인회 관계자들은 모두 조 군수의 노고에 감사하는 뜻으로 큰절을 했다. 당황한 조 군수가 "어르신들, 왜 이러십니까"라며 급히 만류했으나 이미 노인들은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조 군수에 대한 아쉬움과 존경의 표시였다. 조 군수도 서둘러 맞절로 예의를 갖췄으나 쑥스러운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이남섭 분회장은 이 자리에서 "조 군수가 명예로운 퇴임을 앞두고 석별의 정을 나누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면서 "비록 나이는 우리보다 적지만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는 의미로 큰절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부슬부슬 내리는 가랑비를 맞아가며 경로당을 찾았던 조 군수는 "내가 큰절을 드려도 시원찮은 상황인데, 어르신들이 갑작스레 그런 행동을 하셔서 어리둥절하다. 정말 고맙고 또 죄송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경로당을 나서는 그의 눈시울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1995년 지방자치시대가 시작된 이후 시장이나 군수 등 기초단체장은 지역사회에서 존경의 대상이기보다는 오히려 부패나 비난의 대상으로 얼룩진 경우가 종종 있어왔다.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이미지는 '청백리'와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인지 이날 퇴임인사차 읍내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는 조 군수의 모습이 낯설기도 했고 그를 향한 하동 군민들의 애정 어린 격려와 감사 표시는 좀처럼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조 군수는 2002년 민선 3기 하동군수에 당선된 뒤 내리 3차례 연임에 성공했다. 그는 지방자치단체장의 3선 이상 연임 제한 규정에 따라 6월 말 퇴임한다.

조 군수는 12년간 군정을 이끌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군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지난 6월 11일부터 17일까지 5일(주말 제외)간 하동군 전체 읍면의 곳곳을 돌았다. 그가 지난 5일 동안 감사인사차 들른 하동군 내 13개 읍면의 각종 기관과 단체는 80곳이 넘는다. 퇴임인사 마지막 날인 6월 17일 아침 기자는 조 군수를 만나러 하동읍에 내려갔다. 이날은 마침 하동읍에 장이 섰다. 읍내 곳곳에는 면 단위에서 장을 보러 나온 사람과 차량이 인도와 차도를 빼곡히 메우고 있었다.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의 조 군수는 시골 장터에서 쉽게 눈에 띄었다. 그는 가랑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우산을 들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하며 주민들과 일일이 악수를 했다.

"어머니,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덕분에 군수 임기를 잘 마쳤습니다. 일일이 찾아뵙고 인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는 연방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조 군수는 이날 하동 읍내의 경로당, 우체국, 시장, 농협, 수협, 파출소, 소방서, 산림조합, 읍사무소 등을 돌며 주민들과 퇴임인사를 나눴다. 오전에만 총 23곳을 방문하는 강행군이다.

읍내에서 만난 박학규 하동축협 조합장은 "조 군수는 군민들이 잘살 수 있게 하려고 일을 많이 했다. 축협도 그렇고 지역 내 살림을 살찌우는 데 공을 세웠다. 정말 일 하나만큼은 끝내주게 잘했다"고 칭찬했다.

하동 읍내에서 오찬을 마친 조 군수는 다시 하동군청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동군이 역점사업으로 추진해온 하동경제자유구역 해양플랜트 클러스터 조성사업 전반에 대한 최종 용역 보고를 받기 위해서였다. 퇴임을 불과 2주 앞두고도 하루 종일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조 군수를 기자는 오후 3시가 다 돼서야 집무실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조 군수는 지난 12년간 하동군 발전을 위해 자신이 펼쳐온 여러 정책 중 업무평가와 응모사업 실적을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았다. 하동군이 지난 12년간 각종 응모사업에 선정되거나 군정 평가 우수사례로 뽑혀 받은 이른바 '시상금'은 무려 3000억원에 육박한다. 안전행정부 등의 중앙부처나 경남도청 같은 상급기관에서 실시한 응모사업에 대부분 참여한 결과 12년간 572건의 수상 실적을 거뒀고 총 2975억원의 사업비와 상금을 받아냈다. 이 액수는 하동군의 현 1년 예산(약 3300억원)과 맞먹는 수준이다. 경상남도 18개 시·군 가운데 하동군 소속 공무원들의 경쟁력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도 이런 실적 때문이다.

조 군수는 "민선 3기 때 하동군 1년 예산이 1500억원가량이었다. 그때 기준으로 하면 2년치 예산에 해당하는 응모 사업비를 벌어들인 셈이다. 군말 없이 따라준 동료 직원들의 노력에 감사할 따름이다. 외판원 취급을 받으며 중앙부처 입구에서 출입제지를 당했을 때 당황하던 직원들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하동군은 이렇게 벌어들인 일종의 추가 예산을 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주로 썼다. 전국 최초로 하동군 내 모든 경로당에 에어컨을 설치했고 초중고교 무상급식과 고교 무상교육도 7~8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다. 2010년 민선 5기 지방선거 때 불거진 무상급식 논란의 경우 진보 대 보수라는 이념대결로 비화했고, 지난 6·4지방선거에서는 진보진영에서 무상보육 공약을 들고나와 보수진영과 신경전을 벌였지만 하동군에서는 이런 정책들을 시행하면서 정치적 대결이나 이념 논쟁이 벌어지지 않았다. 현재 조 군수는 새누리당 당적을 갖고 있다.

"시골 인구는 계속 줄어드는데, 이를 막을 방법을 찾다가 교육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정책을 마련하게 됐다. 선심성 예산을 줄이니까 교육에 지원할 예산을 마련할 수 있었다. 만약 하동군이 뒤늦게 이 정책을 내놨다면 서울에서처럼 논쟁에 휘말려 추진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행정가인 내게 이념은 의미가 없다. 군의 발전과 주민복지를 챙기는 게 우선이다. 주민의 동의를 구하고 그에 맞는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하동군은 군비 등에서 100억원을 출연, 장학재단도 만들었다. 하동군에 주민등록을 한 고교생이 서울 등지의 유명 대학에 입학할 경우 등록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지급하는 파격적인 정책도 시행하고 있다. 이때부터 하동군 내 중학교 학생들이 도시로 나가지 않고 군내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요즘에는 진주시 등 인근 도시에서 학생들이 유입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조 군수의 대표적인 정책은 '천부농(千富農), 만부촌(萬富村)'이다. 농가가 많은 하동군의 특성을 고려해 이른바 부농 프로젝트를 마련한 것. 천부농 만부촌 정책은 1억원 이상의 농가소득을 올리는 1000가구의 농가를 만들고 하동군 내 총 1만가구에 이르는 농가의 평균 소득을 4500만원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게 핵심이다.

조 군수는 "내가 재임할 때 천부농은 달성이 됐다. 만부촌의 경우 군내 농가의 평균 매출액이 4200만원까지 올랐지만 아직 4500만원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하동군 농가가 다른 시·군에 비해 소득이 월등히 높아졌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 다른 지역 농가의 평균 매출은 2000만원을 밑도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조 군수는 또 하동군의 향후 100년을 내다본 갈사만산업단지 조성사업의 첫 삽을 뜨고 이제 결실을 맺을 단계에 와 있다고도 했다. 하동은 전통적인 시골로 분류된다. 농가 소득은 대체로 밭농사와 논농사, 그리고 관광수입에 의존하는 곳이었다. 당초 중앙정부에서는 하동 지역에 산업단지를 조성할 공간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조 군수는 하동군 역사를 바꿀 산업단지 조성에 임기 마지막을 걸었다.

남해로 뻗은 갈사만은 농업과 축산업에 의존해온 하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공장이 생기고 사람이 유입되는 하동 지역 최초의 산업단지가 건설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대우조선해양이 66만㎡(20만평) 규모의 조선단지 조성 계약을 체결하고 매립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곳은 세계 조선산업의 메카인 영국 애버딘시와 미국 휴스턴시와 견줄 만한 해양플랜트산업 거점도시로 변모하는 중이다. 부산대학교 선박해양플랜트기술연구원(원장 백점기)이 주관하는 갈사만 해양플랜트산업 육성책은 이미 가시적 성과물을 내놓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해양플랜트종합시험연구원이 오는 10월 준공되고 해양플랜트 기술의 본산인 영국 애버딘대학교의 분교가 유치된다. 국내외 유관 기업과 연구기관이 이곳에 속속 자리 잡을 것을 대비해 항만 개발도 진행되고 있다.

"갈사만에는 원래 현대제철이 들어설 예정이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불발됐다. (현대제철이 들어선) 당진에 가봤는데 그 지역이 천지개벽을 한 걸 보고 놀랐다. 비록 시행착오를 거치긴 했지만 갈사만산업단지 조성사업이 본궤도에 진입함으로써 하동은 10년 뒤 시로서 승격이 가능한 토대를 마련하게 됐다."

1967년 5월 하동군 횡천면사무소 9급 직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조 군수는 2002년 민선 3기 하동군수로 출마하기 위해 일을 그만둔 4개월간의 선거기간을 제외하면 꼬박 47년을 공직에 몸담았다. 그의 선친은 면서기를 하다가 그만두고 하동군 횡천면에서 이발소를 운영했다고 한다. 하동고교를 졸업한 조 군수는 몇 개월 동안 공사현장에서 돈벌이를 하다가 9급 공무원 시험을 치러 합격했다. 공직생활 중 군(軍)에 입대한 조 군수는 베트남전에도 참전했었다. 또 한국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하고 창원대학교 행정대학원을 나왔다.

말단 공무원이었지만 그는 특유의 성실함을 바탕으로 28년 만에 지방 서기관으로 승진했고 1999년 하동군 부군수로 부임, 민선 군수로의 발판을 마련했다. 안전행정부에 관련자료가 없어 확인이 안 됐지만, 그는 국내에서 최장 기간 공직생활을 한 공무원 중 한 명임에는 틀림이 없다.

조 군수는 1999년 하동군 부군수로 임명된 뒤부터 매일 새벽 4시30분에 일어난다. 1시간가량 하동읍 주변에서 걷기 등의 운동을 하고 목욕탕을 찾는다. 읍내에는 용운탕, 삼성탕, 덕천사우나 등 5개의 목욕탕이 있어서 주중 5곳을 번갈아가며 찾는다. 그곳에서 매일 지역주민과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그의 평일 출근시간은 오전 7시40분. 주말에도 틈만 나면 군청에 나와 밀린 서류를 챙겨 보는 게 그의 취미이자 보람이라고 했다.

조 군수는 "그걸 못하게 된다고 생각하니까 벌써부터 몸이 쑤신다. 집에 있는 연습을 위해 지난 주말에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집에서 세 끼를 먹었는데, 다음 날 출근하려니까 몸이 욱신거려 혼났다. 퇴임 이후 몸을 굴릴 계획을 짜야 하는데, 하동을 떠나 어딘가로 여행이라도 떠날 생각을 하면 실감이 나질 않는다"고 말했다.

조 군수는 재임 시절 그의 자택을 한 번도 외부인에게 공개한 적이 없다. 사업가는 물론이고 하동군 소속의 공무원조차 그의 집을 방문한 사람이 거의 없다. 그는 15년 전 부군수로 하동군청에 오면서 마련한 전용면적 89㎡(27평형) 규모의 빌라에 살고 있다. 그는 2남1녀의 자식을 모두 출가시키는 과정에서 퇴직연금을 일시불로 당겨 썼기 때문에 군수에서 물러나도 연금이 없다.

"누군가 집을 방문하면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친인척의 방문도 차단하고 살았다. 집에 외부인이 온 적이 없어서 차를 내줄 응접세트조차 변변치 않다. 가족에게 늘 미안하다. 군수를 그만두고 나면 집에 찾아오는 손님을 더 이상 문전박대하지 말자고 아내와 합의를 봤는데, 내가 현직에서 물러나면 날 찾아올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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