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 기술 권하는 사회

변진경 기자 2014. 6. 18.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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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16일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바다에서 침몰해 304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5월2일 서울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열차가 추돌해 238명이 다쳤다. 5월25일에는 경기도 고양시 시외버스종합터미널에서 화재가 발생해 6명이 죽고 42명이 다쳤다. 사흘 뒤인 5월28일 전남 장성군 요양병원에서 난 불은 사망 21명, 부상 8명의 피해를 낳았다. 끊이지 않는 대형 사고들을 보면서 모두들 한 번씩 자신에게 물었다. '만약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다면…?'

헌법 제34조6항은 말한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하지만 위험에 처한 국민을 구하기 위한 국가의 손길이 그리 구석구석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최근 여러 사례에서 드러났다. 침몰 후 구조자 수 '0명'을 기록한 해양경찰청은 초동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한 죄로 대통령으로부터 '해체' 명령을 받았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제일 먼저 뛰어오는 119 소방대원들이 속한 소방방재청은 그간 가장 심각한 문제였던 현장 인력난이 해결되기는커녕 행정기관 조직 개편으로 지위가 격하됐다( 소방관 마음의 '화'는 누가 꺼주나 참조).

ⓒ양천소방서 제공 법령은 유치원·학교에서 재난 대피 교육(위) 등 안전교육을 연간 44시간 이상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민은 이제 자신을 스스로 구할 생각을 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지난 5월12일 직장인 진 아무개씨는 4박5일 직무교육 연수를 시작하는 날 대피훈련을 받았다. 진씨는 "본사에서 대피훈련을 한 적은 있지만 며칠 머무는 교육원에서 훈련을 받은 적은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삼성그룹이 5월29일 신입사원 하계수련회에서 처음으로 안전 대피훈련을 실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주부 박 아무개씨는 5월29일 영화관에 들어서면서 비상구부터 확인했다. 박씨는 영화관과 연결된 지하철역의 외부 출입구까지 동선을 익히고 나서야 상영관에 들어갔다.

전문가들은 이런 기본적인 안전 대비책을 포함한 다양한 서바이벌 기술 습득이 사고 발생 시 개인의 생존 확률을 꽤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SBS < 생존의 달인 > 등에서 '생존 전문가'로 이름을 알린 전직 전투 헬기 조종사 김종도씨는 "사고·재난 대응의 국가적 시스템 마련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설사 그것이 잘 갖추어져 있다 해도 그 시스템이 사고 현장에 발동될 때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때까지 개인이 스스로 생존할 수 있도록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재난·사고의 1차적 대비책이다"라고 말했다.

생존·서바이벌 관련 정보와 기술을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 '생존21'의 카페지기 우승엽씨는 5월28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 기후변화방재산업전 > 한쪽에 사비를 털어 재난 시 안전 및 생존과 관련된 전시 부스를 차렸다. 우씨는 비상식량, 미니 방독면, 응급 정수기, 간이 태양열 조리기 등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들로 만들 수 있는 서바이벌 용품과 작동 원리 등을 관람객들에게 설명했다. 우씨는 "이렇게 재난 상황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마니아들만의 취미 활동이나 종말론자들의 극단적 미래 예측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은데,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나 이번 세월호 참사 등에서 알 수 있듯 대형 사고와 재난은 누구에게나 불시에 찾아올 수 있기에 평소 조금씩이라도 대비해놓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특히 강조되는 것이 학교 교육 등을 통한 사고·재난 대응 교육이다. 안전교육 필요성에 대한 여론이 높아지자 5월23일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학생 안전교육을 독립 교과목으로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학교에서 안전교육을 하기 위한 토대와 교육과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동복지법 시행령은 이미 유치원·초·중·고교에서 재난 대비 교육 6시간을 포함한 안전교육을 연간 44시간 이상 실시할 것을 규정해놓았다. 2007년 신설된 보건 교과의 교육과정에도 안전에 관한 내용이 상당 부분 담겨 있다. 초·중·고등학교 보건 교과서에는 재난 예방과 사고 발생 시 행동 요령은 물론 심폐소생술 같은 응급처치 방법도 제법 상세히 소개돼 있다.

실태조사 결과, 12.9%만 안전교육 시간 지켜

하지만 문제는 '실행'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육부와 안전행정부 등이 지난해 '어린이 안전교육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초등학교 교사 12.9%만 의무교육 시간을 지키고 있다고 답했다. 이미 갖춰진 보건 교과와 교과서도 입시 위주의 학교 현장에서는 찬밥 신세다. 보건교사 등이 모인 보건교육포럼의 우옥영 이사장은 "꼭 필요한 보건 교과인데도 선택과목으로 지정해 소수의 학교에서만 배울 뿐 아니라, 수업 시수와 교사 인력을 충분히 확보해주지 않아 교과서 내용 열 가지 중 한두 개만 선택해서 가르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라고 말했다. 우 이사장은 "기존에 있던 안전교육도 사실상 방치해서 이 지경이 됐는데 새로 교과를 신설한들 얼마나 내실 있게 가르칠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변진경 기자 /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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