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후지와라 켄타로 "여성에게 화장은 삶을 향한 힘, 日 대지진 때 느꼈죠"

김선주 / 임현우 2014. 6. 13.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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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와라 켄타로 한국시세이도 사장 화장은 상처 어루만지는 '위로' 지진으로 삶의 터전 잃은 여성에게 메이크업 해줬더니 표정 밝아져 매년 삼성의료원 찾아 화장 봉사도 한국 여성화장, 세계가 벤치마킹 밤 피부관리 일본 8분·한국 18분 "한국 여성들은 연구원 앉혀놓고 자신의 화장법 상세히 가르쳐줘"

[ 김선주 / 임현우 기자 ]

일본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상품이 몇 가지 있다. 조지루시의 코끼리표 밥솥, 소니의 워크맨, 도요타의 자동차…. 여성들에겐 시세이도 화장품도 빼놓을 수 없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화장대에 있던 고급 화장품'으로 기억되는 브랜드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이 장악하고 있는 한국 화장품 시장에서 시세이도가 만만찮은 충성고객을 등에 업고 선전하는 이유다.

후지와라 켄타로 한국시세이도 사장(48)은 '레옹족'(외모에 신경 쓰는 일본 중년 남성)을 연상시키는 '꽃중년'이었다. 그가 선택한 장소는 서울 한남동의 퓨전 한식당 '모이'. 한남동 골목 레스토랑이나 카페 특유의 한적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모든 음식을 신선한 재료로 만드는 데다 딱 맛있게 먹을 수 있을 만큼만 주는 적당한 음식량도 마음에 듭니다."

영업맨으로 변신한 공학도

직원들과 함께 나온 후지와라 사장이 '모이 코스'를 주문하자 성게알 가리비 숙회, 완도 돌문어 숙회, 산취나물전, 수제 오징어 어묵과 제주 쑥갓, 닭모래집볶음, 삼겹살 석쇠구이와 꽃액젓, 콩나물 아귀찜, 열무김치 청국장, 뼈째 먹는 가자미 튀김 등이 연이어 나왔다. 인터뷰 초반 사진 촬영을 어색해하던 그는 거품이 찰랑거리는 생맥주가 도착하자 긴장이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간빠이(건배)! 맛있게 드세요."

후지와라 사장은 대학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했지만 1991년 시세이도에 입사한 이후 세일즈·마케팅 분야에서 일해온 '영업통'이다.

"처음엔 연구소에 배정됐는데 상품을 들고 이곳저곳 누비며 누군가를 설득하는 세일즈맨에 매력을 느꼈어요. 입사 한 달 만에 인사부장을 찾아갔죠. '화학을 잘 아는 영업사원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1994년부터 10여년 동안 유럽 일대에서 일했고 일본 본사로 복귀했다가 2년8개월 전 한국지사장을 맡았다. 2011년 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화장품에 대한 한국 소비자의 막연한 우려가 확산될 무렵이었다.

그는 한국시장 공략이 만만치 않다고 털어놨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이 절반을 차지하고, 나머지 절반을 놓고 외국계들이 경쟁합니다. 로컬 브랜드가 이렇게 강한 나라는 처음 봤어요. 어떤 게 유행하기 시작하는구나 느끼면 이미 아모레에선 신제품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보다 한국인을 더 잘 알아서이기도 하지만, 리스크를 감수하고라도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것이죠. 이런 부분은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 여성의 화장기술은 세계 최고

글로벌 화장품 업체들이 늘 벤치마킹하는 '한국 여성들의 화장법'은 시세이도에도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시세이도연구소는 세계 주요 국가 여성들의 화장법을 꾸준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밤마다 피부관리에 들이는 시간이 일본 여성은 8분 정도지만 한국 여성은 18분이었어요." 한국 여성들과 인터뷰를 한 연구원들은 '스킨케어의 단계가 이렇게도 많을 수 있구나'라며 놀라워했다는 설명이다. "한국 여성들은 인터뷰하러 온 연구원들 앞에서 오히려 자신의 화장법을 상세히 가르쳐준대요.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랍니다."

후지와라 사장은 화장품이 단순히 외모를 가꾸는 도구가 아니라 여성들의 상처받은 내면을 어루만져 주는 '힐링' 도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시세이도는 2011년 일본 대지진 직후 여성 피해자들에게 메이크업과 마사지를 해 주는 사회공헌 활동을 벌였다. "삶의 터전을 잃고 절망에 빠져 있던 분들이 메이크업을 받자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지금도 그 얼굴들이 눈에 선합니다. 화장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살아가기 위한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시세이도 입사 이후 가장 큰 보람을 느낀 순간이었다.

한국시세이도는 매년 삼성의료원에 찾아가 암 환자 자녀를 둔 여성들에게도 화장을 해 준다. "어머니들은 처음엔 '자식이 아픈데 내가 무슨 화장이냐'고 고사합니다. 하지만 설득하고 설득한 끝에 곱게 화장해 드리면 잠시나마 안정과 활기를 느끼는 것이 보여요. 오래 일할수록 단순한 상품 이상의 의미를 가진 '화장품의 힘'을 느끼고 배웁니다."

김치찜 만든 한국인은 천재

대학 입시를 앞둔 고교생 딸 때문에 가족을 일본에 두고 온 그는 "직원들과 틈틈이 삼겹살 구우며 회식도 하고, 집에선 마트에서 재료를 사다가 직접 한국 요리도 해 먹는다"고 했다. "원래 순두부가 제일 좋았는데 요즘은 김치찜입니다. 한국인은 천재예요. 김치와 돼지고기의 조합을 생각해 내다니!"

외로운 이국 생활을 달래준 벗은 음악이다. 대학시절부터 밴드 활동을 한 그는 지인들과 록 밴드를 결성했다. 밴드 이름은 '곤드레만드레'. 그는 베이스 주자다. "5인조 밴드인데 처음엔 저처럼 한국에 파견온 일본인들로만 구성했어요. 올해부터는 한국인 드러머, 키보드 담당 호주 친구가 합류했어요. 1년에 한 번 정도 라이브 공연을 합니다. 지난해 9월에는 코엑스에서 열린 '한일 축제 한마당'에서 공연도 했고요."

멤버들이 함께 만든 '김치블루스'란 곡을 즐겨 부른다. 한국을 상징하는 발효식품인 김치의 시점에서 삶을 노래한 곡이다. 한 달에 두 번 서울 홍익대 인근의 연습실에서 합주를 한다. 밴드 연습이 끝나면 멤버들과 홍익대 인근에서 밥을 먹은 뒤 편의점에서 캔맥주로 입가심하는 게 즐거움 중 하나다.

회식 문화는 기업에 중요

맥주를 너덧 잔째 비웠을 즈음 '소폭(소주+맥주 폭탄주)'을 제안하자 그는 흔쾌히 "OK"했다. "한국에 오니 술 마실 기회가 많은데 회식 또한 중요하다는 걸 배웠습니다."

주종이 폭탄주로 바뀐 뒤 후지와라 사장과 기자의 막바지 대화 주제는 '월급쟁이의 애환'으로 옮겨갔다. 20년 동안 한 회사에 근무하고 지사장까지 올랐으니 '당신의 샐러리맨 인생은 성공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저도 열심히 했지만 노력은 30%이고 나머지는 운인 것 같아요. 젊었을 땐 돈을 버는 일에만 너무 매달렸지만, 나이가 들수록 화장품이 사람들의 삶에 주는 의미에 대해 많이 생각하며 일하게 됩니다."

■ 후지와라 켄타로 한국시세이도 사장은

일본 혼슈 서부에 있는 오카야마현에서 형제 중 맏이로 태어났다.

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화장품 브랜드에 대한 한국 소비자의 우려가 깊어질 즈음인 2011년, 한국 지사장으로 투입됐다. 그에게 한국 시장을 지키기 위한 구원투수 역할이 맡겨진 것이다.

후지와라 사장은 1994년부터 10여년간 해외 근무를 하면서 글로벌 감각을 길렀다.

■ 후지와라 켄타로 사장의 단골집'모이'

제철 식자재 쓰고 매일 메뉴 바꿔…한남동 맛집 '부상'

모이(MOI)는 제철 식재료를 이용한 향토 가정식을 추구하는 음식점이다. 지난해 12월 서울 한남동에 개업했다. 영업한 지 6개월밖에 안 됐지만 한남동 일대의 새로운 맛집으로 떠오르고 있다. '모이'는 새 모이를 뜻하는 것으로, 여러 가지 음식을 조금씩 내놓는 데서 붙인 이름이다.

전통적인 한정식집과 달리 카페나 고급스러운 바를 연상시키는 감각적인 실내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낮에는 한정식집이지만 저녁에는 한식을 기반으로 한 요리주점으로 변신한다. 메뉴가 정해진 일반 한정식집과 달리 매일 최상급 재료를 이용해 8~9가지 코스로 내놓는 '모이 코스'(5만원)의 구성을 바꾼다.

매일 변경되는 메뉴를 노란색 메모지에 꼼꼼하게 적어 매장 한쪽 벽면에 붙여둔다. 생선 요리도 매번 바뀌지만 최근에는 참가자미 옥돔 임연수어 요리가 인기다. 한우 차돌박이 찌개도 모이 코스에 자주 들어가는 메뉴 중 하나다.

평일에는 오전 11시30분부터 다음날 오전 1시까지 영업한다. 주말에는 오후 5시30분에 문을 연다. (02)790-7784

김선주/임현우 기자 sak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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