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중독' 김대우 감독 "섹스 탐닉?..내 삶의 2순위"

2014. 5. 20.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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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인터뷰] "무시당하면서도 남 원망 않는 강한 자아 발견..삶의 동력"

[CBS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 김대우 감독

영화 '인간중독'으로 돌아온 '19금 멜로 마스터' 김대우(53) 감독에게 허심탄회하게 물었다. '삶의 우선순위에서 성 탐닉은 어디께 자리하고 있냐'고. 19일 서울 역삼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김 감독은 "성 탐닉은 2순위"라고 답했다. '그러면 1순위는 뭐냐'고 되묻자 "세상에 태어났으니 이왕이면 보탬이 되는 인간이 되려 애쓰는 것"이란다.

"개인적으로 광장의 거창한 슬로건보다 밀실의 작은 정의를 더 중요하게 여겨요. 이 둘이 일치하는 경우는 아직 못 봤는데, 그게 사회의 퇴보가 아닐까요. 광장의 슬로건을 잘 믿지 않는 이유죠. 어두운 골방에 저와 한 후임이 있다고 치죠. 제가 무슨 일을 하든지 저와 그 후임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제 이득만 취하면 그 후임도 똑같은 짓을 하겠죠. 그래서 제게는 한 사람으로서 그 후임 앞에서 정정당당하고, 후임이 잘못을 했다면 그것을 감싸 주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그 후임도 자기 후임에게 그렇게 할 테니까요."

밀실에서의 작은 정의를 통해 '신용'을 지켜가는 선배가 되고 싶다는 것이 김 감독의 바람이다. 흥미롭게도 그는 신용과 '진보' '진화'를 동의어로 사용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 감독이 성 탐닉에 유독 애정을 보이는 데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남들에게 관대하려 노력하는 것과 달리 자신에게는 혹독하려는 사람. 세 시간 넘게 이어진 대화를 통해 얻은 김 감독의 인상은 그랬다.

- 신작 제목, 왜 '인간중독'인가.

"보통 '중독'이라는 말은 나쁜 데 쓰이지 않나. 반면 인간이란 단어는 무척이나 평범하다 이 두 단어가 만났는데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순간이 연상되더라. 사람이 사람에게 중독돼 헤어나지 못한다면 얼마나 고통스럽고 자신의 운명이 원망스럽겠나. 하지만 되돌아보면 그 때만큼 휘황찬란한 순간이 또 올까 싶을 거다. 그러한 날것의 느낌을 직접적으로 써보자는 마음이었다. 이 이야기를 준비한지는 10년 정도 됐는데, 2년 전 제목을 정하고 본격적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 19금 멜로 마스터라는 수식어는 어떤지.

"부끄러움이나 거부감이 없지는 않다. 단어를 하나 하나 뜯어보면, '19금'이라는 말은 부끄럽지 않다. 성인이 어떤 목적을 두고 15세 관람가나 어린이 영화를 하는 게 오히려 부끄러운 일 아닐까. '멜로'도 19금과 비슷한 느낌에서 거부감이 없다. 문제는 '마스터'라는 호칭이다. 그러한 마스터는 나오면 안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웃음) 그리고 내 영화는 그리 야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 야하지 않다는 발언을 순순히 받아들일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한데.

"솔직히 섹스신이 들어간다고 무조건 야한 것은 아니잖나. 정말로 야한 영화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도 든다. 영화에서 야한 것은 육체와 렌즈의 거리로 규정되는 듯하다. 너무 가깝거나 멀어도 야하지 않을 때가 있다. 제가 숙달된 거장 감독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못해서 하나 하나 해보면서 야한 지점을 찾아가려 노력한다."

- 관객들에게 야한 자극을 주고 데는 상업적인 계산도 깔려 있나.

"그런 자극은 좋은 것이라고 본다. 제게 영화는 상차림이다.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돈을 보고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주고, 투자자들에게 이윤을 남겨 주는 것이 저에게는 중요하다. 그래야 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진보의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진보는 정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으니 진화라 해 두자."

- 어릴 때부터 성인들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는지.

"성적 감수성이 기형적으로 발달해 있다는 생각은 했다. 20대 때는 프로이트 등의 서적을 읽으면서 기원을 알아보려고도 했지만, 엉덩이가 진득하지 못해서 학문적 성취를 이루지는 못했다. 프로이트의 이론을 이해할 만한 독서량도 안 됐다. 오히려 옛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한시, 일본의 하이쿠(적은 단어로 많은 함의를 담는 일본 고유의 짧은 시) 같은 한문의 함축미에서 더 많은 에로틱한 감성을 얻은 듯하다. 운 좋게도 영화 일을 하면서 예민한 감수성을 사용할 길을 찾은 셈이다."

- '음란서생' '방자전' 등 시대극을 한 이유도 거기에 있나.

"제 경우 선뜻 현대물로 못 넘어오는 게 소위 '할리우드 키드'가 아닌 이유도 있다. 영화판에 들어와서 작가를 먼저 한 입장에서 저는 카메라를 휴대폰 다루듯이 하는 사람이 못 된다. 개인적으로 현대물을 찍기에는 발상 자체가 영화적으로 서툴다고 생각한다. 제 성향이 아직까지는 문예보다는 문학쪽으로 치우쳐 있는 까닭이다. 사극이 현대물보다는 이야기 구조가 자유롭다. 사극은 감독이 되기 위한 수련 과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음란서생, 방자전, 인간중독 세 편을 거치면서 스태프들에게 많이 배웠다. 이제 견습생으로서 세 편을 했는데 마스터라는 수식어가 부끄러운 건 당연하다. (웃음)"

- 본인의 연출작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는 말로도 들린다.

"제가 문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보니 영화적 호흡이 느린 경향이 있다. 인간중독을 하면서 연출에 대한 자습 항목들을 정해 뒀다. '나이가 몇 살인데 이제 수련을 하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손놓고 바라볼 수는 없잖나. 몇 살이 됐든 제 눈에 차는 작품을 해보고 싶다."

↑ 김대우 감독

- 각본을 쓴 '송어' '반칙왕' '로드무비' 등을 보면 장르에 크게 구애 받는 것 같지는 않은데.

"장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액션, 코미디도 많이 썼다. 그래도 에로틱이 가미된 멜로를 주종목으로 해 두자. 관객, 투자자들에게 가장 피해를 덜 줄 수 있는 분야니까. 이제 연출을 조금 알 것 같다. 인간중독을 보고는 '전에는 머리로 만들었는데, 이젠 마음으로 만드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번 영화는 시나리오에서 작가적 역량을 절제하고, 연출쪽에 큰 비중을 뒀다. 모험이었다. 작가인 저로서는 쉬운 게 아니었다. 다음 작품은 이번보다 더 나은 영화가 될 것이다."

- 작가와 감독 사이, 어떤 느낌인가.

"나는 작가다. 훗날 길에서 갑자기 쓰러져 죽거나 객지에서 여행 중에 죽는다면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 만년필 뚜껑에는 '내 사랑'이라고 쓰여 있을 것이다. (웃음) 나이 서른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었다. 인내심도 없고 의지도 없는 미성숙한 상태에서 서른 살을 맞았다. 작가를 하면서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됐고, 감독을 하면서 남을 감싸 안을 줄 아는 책임감을 배웠다. 작가로서 성숙해졌고 감독으로서 인내심과 포용력을 배운 셈이다. 직업이 인간을 교육시킨다는 말을 믿는다."

- 글쓰기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첫 번째, 두 번째 시나리오가 공모에서 당선돼 글쓰기가 쉬운 줄 알았다. 영화 '정사'(1998)를 쓸 때쯤 깨달았는데, 인물에 대해서 성실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갖지 않으면 그 인물을 관객들이 받아들여 주지 않더라. 시나리오 속 인물에 대한 존중을 배우면서 현실의 인간을 존중하는 법도 배웠다. 나에게 종속돼 있는 사람, 내 휘하에 있는 사람,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더 단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 이야기 소재는 어떻게 찾나.

"이야기를 찾는다는 것은 '나'라는 화단에서 꽃을 잘라 파는 것과 같다. 그러려면 화단을 잘 키워야 한다. 남의 화단에서 가져올 수는 없으니 말이다. 나라는 작은 기억 덩어리 안에 있는 욕망, 꿈, 추억을 조합하려 애쓴다. 꽃을 잘라냈으면 다시 키워야 하니 책도 읽고 한다."

- 인간중독 얘기로 돌아가면, 송승헌이 연기한 진평을 이상적 인간상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 같더라.

"뭐랄까. 성격적으로는 여성적이지만 남자로서 굳은 의지를 지닌 인물. 우리가 왜 데이트를 할 때 여자가 팔뚝에 이름 쓰면서 '죽을 때까지 잊지 마요'라고들 하지 않나. 여자 입장에서는 그냥 한 말일지 모르지만, 진평에게는 그게 진짜인 거다. 그 말을 하고 싶었다. 운이 없어서 또는 손해 볼까 못해본 사랑 말이다. 제 영화를 본 관객은 나중에라도 그런 사랑을 만나면 인간중독을 떠올리게 될 거라 믿는다. 그런 사랑을 경험한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울지 않았을까. 낯설고 서툰 영화의 감성에 불편한 관객들도 있었겠지만, 누군가의 가슴에는 가 닿았을 거라 믿는다."

- 김대우표 영화에 베드신은 필수인가.

"베드신은 데이트 장면 중 하나다. 그걸 안 보여 주는 게 오히려 어색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텐션(tension·외적 표현과 내적 함의 사이에 일어나는 긴장감)을 중시한다. 그것을 즐기는 관객은 재밌어 하고, 아니면 지루해 한다. 인간중독에서도 진평과 가흔(임지연)이 첫 섹스 전에 귀걸이, 라이터, 휴지 메모 등으로 텐션을 끌어올린다. 이때 나오는 대사들을 주의깊게 들어보면 보다 재밌을 것이다. (웃음)"

- 정교한 미장센 얘기를 안할 수 없다.

"영화적 진화에 욕심을 낸 결과물이다. 미술적인 것에 대한 결벽증 같은 것이 있다. 눈에 거슬리는 것을 못 견디는 경향이랄까. 스태프 중에 유독 미술감독에게는 혹독하고 지독하게 군다. 미술에 관한한 그렇게 되더라. 제가 감독으로서 아직 숙달되지 않은 탓에 미술적인 완성도만이라도 끌어올리려는 측면이 있다."

- '봐라, 이런 사랑도 있지 않냐'란 말을 하고 싶었나.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다. 사랑은 그 세대의 것이다. 세대마다 사정이 있다. 우리 부모 세대가 우리의 사랑을 이해 못했지만, 우리 사랑에도 이유가 있었듯이 말이다. 종종 서울 신촌 좁은 인도를 걸을 때 앞에서 젊은 연인이 걸어오면 차도로 내려선다. 저야 그 길을 굉장히 많이 걸어봤지만, 그 연인은 데이트로 추억을 쌓는 중이니 소중한 시간이지 않겠나."

- 몹시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듯하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마음을 관찰하는 것에 익숙했다. 단적인 예로 삼촌이 취업을 위해 우리 집에 1년 넘게 머문 적이 있는데, 삼촌의 애인이 한 동네에 살았다. 그분이 일주일에 두세 번 우리 집에 왔는데. 가끔 저도 끼어서 놀고는 했다. 하루는 그분이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있다가 갔는데, 제 마음 속에서 '저 여자분이 오늘 마지막으로 놀러 온 것이구라'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데 정말 그날 이후 삼촌의 애인을 볼 수 없었다."

- 작가가 되기 전에는 어떻게 살았나.

"스스로 세상에 필요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예민한 감수성 탓이었을 것이다. 1988년에 도피성 해외 유학을 떠났는데, 아마도 제가 1호일 것이다. (웃음) 보통 도피성 유학을 가는 이들은 돈 많은 집 자제분들인데 나는 아니었다. 유학 시절에도 쓸모 없는 인간으로 살았지만, 인생의 자양분을 얻었다. 아르바이트를 해 돈이 조금 생기면 아껴 쓰며 놀았는데, 그렇게 무쓸모 인간으로 지내면서 '내가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면서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처음 느꼈다. 타인에게 진정한 무시를 당하면서도 그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 제 모습에서 스스로에게 처음으로 가치를 느낀 것이다. 저는 절대 남을 원망하지 않는,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스태프들이 실수해도 단 한 번도 혼을 내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나이 때 저를 생각하면 누구든 저보다 1000배 나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진심으로 존경해야지 어떻게 감히 혼을 내겠는가."

- 다음 작품은 언제쯤 볼 수 있으려나

"두세 가지 이야기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영상적인 메시지나 뉘앙스가 보다 강화된 것이다. 지금까지 기본 앵글로 이야기를 구성해 왔다면, 이제는 다양한 앵글로 주장을 펼치고 싶다. 다음 작품이 감독으로서는 진짜 데뷔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마스터'라는 수식어는 다음 영화에서 듣고 싶다. 열심히 하면 4년, 방심하면 6년 뒤에 관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 작품을 개봉시키면 놀지 않고 바로 차기작 준비에 들어가는데 왜 항상 긴 시간이 걸리는지 모를 일이다. (웃음)"jinuk@nocu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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