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ze] <왕좌의 게임>, 이토록 품격 있는 막장

위근우 기자 2014. 4. 2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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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위근우기자]

/사진제공=HBO

이런 망할. 최근 방영 중인 < 왕좌의 게임 > 시즌4의 가장 최근 에피소드인 'Purple Wedding' 편에서 조프리(잭 글리슨)가 독살당하는 것을 보며 육성으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조프리가 죽은 것이 아쉽거나 슬프다는 뜻은 아니다. 포악하고 변덕스럽고 심지어 멍청하기까지 한 이 어린 왕은 가장 밉상이던 전성기 시절 < 해리포터 > 말포이조차도 발끝에 미치지 못할 만큼 비호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러한 모두의 공적이었기에 아직 끝을 알 수 없는 이 거대한 이야기의 절대적 악역으로 그 누구보다 오래 남아 있을 거라 예상되던 인물이기도 했다. 어떤 캐릭터에 정을 줬다 싶으면 죽음으로 퇴장시키는 이 악명 높은 게임에 어느 정도 적응됐고 마음의 준비도 됐다고 생각한 이들조차도 조프리의 죽음은, 그것도 시즌 초반의 퇴장은 예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때문에 다시 한 번 시청자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의기양양하게 웃는 이 시리즈를 보며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망할.

보는 이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죽음을 선사하는 것은 단지 원작자인 조지 R.R. 마틴의 악취미일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이토록 악랄하고 잔인한 게임에 수많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열광한다는 사실이다. 시즌1부터 이 시리즈를 독점 방영하던 SCREEN 채널은 이번 시즌4부터 미국 현지로부터 단 4일의 홀드백 기간만을 두고 방영하며 이 시리즈의 팬덤을 적극 공략하고 있고, 토렌트 불법 다운로드 1위 시리즈라는 명성에 걸맞게 새 에피소드의 스포일러와 감상평은 그보다 빠르게 블로그나 SNS를 통해 퍼져나간다. 그만큼 한 회에 한 번은 섹스와 죽음, 배신이 일어나는 이 작품은 중독적이다. 초반에는 HBO 시리즈다운 거대한 스케일의 중세풍 판타지로서 인기를 얻었다면, 시즌을 거듭하며 형성된 지금의 팬덤은 마치 막장 드라마의 그것처럼 쉬지 않고 터지는 극단적 사건들이 주는 자극을 즐긴다.

대규모 전투와 용, 마법 등이 혼재하는 판타지 장르로서 방영 초기 < 반지의 제왕 > 과 비교되기도 했지만, 시즌4까지 온 현재 이 작품은 차라리 소포클레스의 비극에 가까워 보인다. 사실 희곡 < 오이디푸스 왕 > 은 돌이켜 보면 부친 살해와 근친상간, 자살과 자해가 난무하는 희대의 막장 드라마다. 중요한 건 이러한 장치와 사건들이 단순한 자극을 넘어 연민과 공감, 공포와 같은 감정들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시즌3 말미에 롭 스타크(리차드 매든)와 캐틀린 스타크(미셸 페어리)를 비롯한 다수 인물을 몰살시킨 '피의 결혼식' 에피소드가 보는 이들을 '멘붕'에 빠뜨리며 두고두고 회자되는 건 단순히 주연급 캐릭터가 죽어서가 아니라 이러한 고전적 비극의 플롯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롭이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프레이 가문과 혼인을 통한 교섭을 시도했다가 프레이가 품은 흑심을 미처 판단하지 못해 최악의 사태를 맞이하는 과정은, 아리스토텔레스가 < 시학 > 에서 훌륭한 플롯에 대해 명시한 '행복에서 불행으로의 변화가 있어야 하며 그 원인은 악한 본성 때문이 아니라 좋은 편인 사람이 저지른 중대한 착오나 실수여야 한다'는 제언과 놀라울 정도로 맞아떨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같은 장에서 이렇게도 말한다. '연민은 부당하게 불행을 겪는 사람에게 향하는 것이고 두려움은 우리와 비슷한 사람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라고.

/사진제공=HBO

이것을 극대화한 < 왕좌의 게임 > 의 세계는 'Winter is coming'이라는 스타크 가문의 가훈대로 너무나 삭막한 겨울과도 같다. 포악한 군주 조프리와 냉혹한 야심가 타이윈 라니스터(찰스 댄스)가 강한 악의 축을 담당하고 있지만, 이 세계가 암흑인 건 그들이 < 반지의 제왕 > 의 사우론처럼 절대적으로 강해서는 아니다. 그보다는 비교적 선하되 언제든 악한 유혹에 넘어갈 수 있는 약한 인간들이 잘해보고자 시도한 일들 대부분이 의도와 어긋난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롭은 남부를 공략할 배를 얻기 위해 형제처럼 자란 테온 그레이조이(알피 알렌)를 그의 아버지에게 보내지만 테온은 오히려 그 틈에 롭이 없는 윈터펠을 차지하고, 스타니스 바라테온(스테펀 딜런)은 칠왕국의 모든 사람들이 어둠에 집어삼켜질 수 있다는 신탁을 듣고 사람들을 지키고자 애꿎은 사람들을 인신공양으로 바치는 모순을 저지른다. 심지어 공적 조프리가 독살당하는 순간조차 악에 대한 선의 승리가 아닌 더욱 은밀한 음모의 승리가 되며 결과적으로 올곧은 인물인 티리온 라니스터(피터 딘클리지)가 체포되는 악화로 이어진다.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은 진흙탕으로 빠져드는 세상. 언젠가 세르세이 라니스터(레나 헤디)는 "왕좌의 게임에는 승리 혹은 죽음뿐"이라고 이 살벌한 암투의 세계를 실감 나게 표현했지만,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승리는 착각일 뿐 결과적으로는 오직 죽음만이 남는 게임에 가깝다. 승자와 패자의 합산 점수는 제로섬이 아닌 마이너스로 소급한다. 동시대 또 다른 최고의 이야기꾼 아론 소킨이 그리는 세계가 작은 선의들이 모여 세상을 개선시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 왕좌의 게임 > 은 딱 그 대척점에 있다. "지옥은 하나뿐이랍니다. 바로 이 세상이요"라는 붉은 여인의 말처럼.

이 잔혹한 세상을 빠져나올 수 없는 지옥으로 완성시키는 건 역설적으로 불행이 아닌 희망이다. '피의 결혼식'에서도 오빠 롭을 찾아왔다가 가문의 몰살을 지켜본 아리아(메이지 윌리암스)는 사냥개(로리 맥칸)의 도움으로 자리를 피하고, 테온의 배반으로 윈터펠을 잃은 브랜(아이작 햄스터드 라이트)은 갖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형 존 스노우(키트 해링턴)가 있는 북쪽을 향해 차근차근 올라간다. 실낱같은 희망이 다가올 거대한 절망의 전조가 되는 이 세계에서 이처럼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희망적인 '떡밥'은 보는 이를 커다란 불안감과 작은 기대감 안에 밀어 넣고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 왕좌의 게임 > 이 과연 윤리적인 전망을 남기는 작품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해피엔딩과 정의의 승리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건 확실해 보인다. 그래서 이 게임은 궁극적으로 왕좌를 노리는 영웅들끼리의 게임을 넘어 작품과 시청자가 벌이는 게임이 된다. 이성적인 예측과 도덕적인 바람 사이에서 고뇌하며 벌이는 한 판 게임이. 그리고 조프리의 죽음과 함께 이 드라마는 우리에게 다시 한 번 패배를 선사했다. 과연 누가 그를 죽였는지, 과연 그것은 정의로운 의도였는지, 정의로운 결과로 이어진 것인지에 대한 또 다른 예측의 미로 속에 우릴 가둬놓으며. 클래스 있는 막장극의 힘이란 이토록 강력한 것이다. 이러니 볼 수밖에, 욕하면서도 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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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위근우기자 civil@iz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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