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르포 | 세이셸 <상>]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인도양 '에덴의 섬' 거기도 등산할 산이 있다

글·사진 박정원 부장대우 2014. 4. 22.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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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개로 이뤄진 군도.. 오바마·윌리엄 등이 다녀간 세계적 휴양지

↑ [월간산]세이셸의 세계적인 휴양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아름다운 해변. 사진 세이셸 관광청 제공

내셔널 지오그래픽 선정 '세계 최고의 해변 1위', 영국 BBC 방송이 선정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세계 50선' 중 12번째,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휴양지, 영국 윌리엄 왕세손 휴양지, 해리포터로 유명한 JK 롤링의 휴양지 및 집필지, 007시리즈 원작자인 이안 플레밍이 'For Your Eyes Only' 집필지 및 영화 촬영지, 비틀스의 멤버 폴 매카트니의 허니문 장소 등.

이만하면 세계적인 휴양지로서 전혀 손색없다. 아니,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휴양지로 꼽힐 만하다. 115개의 섬으로 둘러싸인 섬 국가. 영토는 한반도의 500분의 1밖에 안 되는 455㎢이지만 영해는 한반도의 20배에 이르는 140만㎢ 면적에 엄청난 해상자원을 가진 군도 세이셸 공화국.

유네스코(UNESCO) 지정 세계자연유산 구역인 발레 드 메(Vallee de Mai)국립공원에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숲과 남녀 인체를 닮은 코코 드 메르(Coco de Mer) 열매,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 최장수 거북이 사는 유일한 지역, 지구상에 남은 검은 앵무새(Black Parrot)의 마지막 서식지, 그 외에 진귀한 동식물들이 수없이 서식하는 인도양 서쪽이자 아프리카 케냐 동쪽 마다가스카르섬 북쪽에 위치한 공화국 세이셸군도.

세이셸의 115개 섬 중에서 가장 큰 마헤섬(Mahe Island)의 국제공항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우뚝 솟은 해발 920m의 바위산, 세이셸에서 최고 높은 몬 세이셸로이스(Morne Seychellois)이다. 대양 한가운데에 있는 섬이라곤 믿기질 않을 만큼 주변에 비해 높은 이 산은 끝없는 수평선과 어울려 묘한 조화를 이룬다. 마헤섬은 인구 약 6만 명으로 세이셸군도 전체인구(8만5,000명)의 약 80%가 밀집해 거주하고 있다. 산 중간 곳곳에 집들이 들어서 있고, 해변가에는 수많은 리조트들이 휴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선정 세계 최고의 해변 꼽혀

세이셸 국제공항에서 마헤섬의 유일한 고속도로로 빠져 나온다. 전체 도로 중에 유일한 왕복 4차선이다. 한국의 현대와 기아차 마크를 붙인 차들이 많이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괜히 뿌듯해진다. 가이드는 정부 관용차 중에서도 현대·기아차가 가장 많다고 귀띔한다. 섬 외부로는 무한히 뻗어 있는 인도양 수평선은 끝이 없이 보인다.

세이셸 정상을 등산하기로 했다. 출발 전날부터 이전에 다녀온 세이셸관광청 사람들은 긴팔과 긴 바지 등 옷을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가 올라갈 때는 가이드가 나무를 자르는 밀림용 칼을 가지고 앞장서서 가더라고 엄포를 놓았다. 여하튼 예사롭지 않은 산인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하긴 이 좁은 섬에 해발이 900m 이상 되면 상당히 높은 것이다.

다음날 이른 아침, 현지 운전사는 기자와 사진작가 둘을 세이셸로이스국립공원(Seychellois National Park) 사무소 앞에 세워놓고 다짜고짜 말도 없이 떠나버린다. 운전할 때는 "한국의 디젤 현대차가 연비도 좋고 일본차보다 훨씬 성능이 좋더라"며 실컷 혼자 떠들어놓고선…. 어안이 벙벙하다. 마침 중년 여성 한 사람이 나온다. 흑인이라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그녀에게 "가이드는 언제 오냐"고 물었다. 어설프게 20분 뒤에 올 예정이라고 한다. 주변을 살피며 둘러본다. 숲이 정말 우거져 있다. 밀림 못지않을 것 같다.

마침 가이드가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했다. 역시 현지인이다. 레게 스타일로 머리를 땋아 허리까지 내려올 정도다. 잠시 등산할 복장으로 바꿔 입고 머리도 우리식 빵모자 비슷한 데 집어넣어 출발한다. 키가 20cm 정도는 더 커 보인다. 여태 처음 본 등산스타일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먼저 물었다. 걷기에 따라 다르지만 올라갔던 길로 그대로 내려오는 데 보통 7~9시간 걸린다고 한다. 아침 일찍 서둔 관계로 당시 시각 8시40분. 최소한 오후 4시는 돼야 하산하는 셈이다. 더 빨리 내려올 수 없냐고 물었다. 자기는 가능하지만 처음 등산하는 사람들은 7시간이 가장 빠른 편이라고 말한다. 내가 조금 빠른 편이라고 말해도 그는 7시간가량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의 등산과 하산 속도는 최고 수준이었다. 그가 자주 다닌 길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체력에 엄청 강했다.

↑ [월간산]세이셸군도의 최정상 봉우리인 몬 세이셸로이스를 향해 올라가는 가파른 길은 밀림을 헤쳐 나가는 것 같았으며, 가이드 테렌스가 앞장서서 가고 있다.

도로를 따라 조금 가다 숲속으로 들어가는 그곳이 출발지점이라고 가리킨다. GPS로 측정해 보니 해발 258m. 해발 700m가량을 높여야 한다. 쳐다만 봐도 등산로는 매우 가파르다. 현지 가이드는 다행히 나무를 자르며 가는 날카로운 칼은 들고 있지 않다. 그의 이름은 테렌스 발렌틴(Terence Valentin). 나이가 38세밖에 안 된 친구가 아들이 22세라고 한다. 자신도 겸연쩍은지 묘한 웃음을 터트리며 말한다. 반면 막내아들은 이제 12개월 됐다고 한다. 무척 귀여운가보다. 사탕이나 먹을 걸 주니 막내아들 갖다 주겠다고 배낭에 그대로 챙겨 넣는다.

독일·영국·이탈리아·아프리카·호주·중국 관광객들의 등산가이드는 여러 번 했지만 한국인은 처음이라 말하며 활짝 웃는다. 숲 초입부터 밀림에서나 볼 수 있는 나무들이 눈에 많이 띈다. 뿌리가 땅 위 1m까지 올라온 나무도 있다. 뿌리는 상관없지만 줄기를 잡으면 영락없이 가시에 찔린다. 줄기에 미세하게 솜털 같은 가시가 엄청 솟아 있다. 라타니 호반(Latanier Hauban)이라는 나무다. 등산로가 험할수록 옆에 있는 나무를 잡는 횟수가 많아졌다. 라타니 호반을 이날 3번이나 잡아 손바닥 어딘가에 가시가 꽂혀 있었다. 뭘 잡을 때마다 찌르는 느낌이 들어 상당히 곤혹스러웠다. 테렌스는 나중 숙소에 돌아가서 비누로 거품을 내면 손바닥에 있는 가시가 보이며, 그때 뽑으라고 알려 줬다.

곤충 잡아먹는 식물도 등산로 주변에 있어

좁은 섬에 우뚝 솟은 산이니 평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계속 오르막이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마헤섬의 위치가 남위 4도38분 정도 된다. 가만히 있어도 더운 열대지방이다. 그런 곳에서 등산을 하고 있다니…. 다른 사람은 세계적인 휴양지의 해변가 산호초 모래밭에서 비키니 입고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데, 긴팔과 긴바지 등산복을 입고 배낭을 메고 등산을 하고 있다. 등산잡지 기자의 운명인가. 숲은 밀림같이 우거져 햇빛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다.

처음으로 전망이 확 트였다. 빅토리아항구가 보인다. 한국인이 세운 풍차는 바닷가에서 쉬지 않고 돌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수도 중 하나인 빅토리아의 시가지 풍경과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의 황홀한 파노라마가 발아래로 보인다. 승용차, 봉고차, 풍차 등 세이셸에는 한국인들의 흔적이 많다. 뿌듯한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성싶다. 하지만 시내에서는 아직 한국 음식점이 보이질 않는다. 중국 음식점은 몇 곳 보인다. 하긴 애초 중국과 인도의 상인이 유럽인과 같이 합류했으니 그럴 법도 하다.

테렌스가 꽃인지 잎인지 둥그런 식물을 가리킨다. 곤충을 잡아먹는 식물이라고 말한다. 피처 플랜트(Picher Plant)이며 네펜테스 퍼베리(Nephentes Pervelii)라고 부른단다. 또 결혼할 때 가슴에 매다는 식물인 웨딩 페른(Wedding Fern)도 가리키며 설명해 준다.

숲은 전부 활엽수다. 침엽수라곤 찾아볼 수조차 없다. 등산로는 전부 잎으로 덮여 푹신푹신하다. 우리의 참나무와 비슷한 나무도 눈에 많이 띈다. 단풍이 많이 드는지 물었다. 순간 우문이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날씨의 변화, 특히 하루 일교차가 10℃ 이상 있어야 나뭇잎에 엽록소 작용이 중단되고 색깔이 변하면서 잎이 떨어지는데, 사철 여름인 이곳에서 무슨 낙엽이 있겠는가. 이는 마치 남반구에서 북두칠성을 찾는 것과 같은 질문이었다. 가이드 테렌스는 "사철 내내 잎이 떨어지고 다시 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 여긴 그런 곳이었다. 잎이 떨어지는 것도 엽록소 작용의 중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냥 바람이 불어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그런 잎이었다. 등산로는 나무뿌리로 된 길도 있다. 뿌리가 험한 길을 대신 이어줘 무사히 건널 수 있는 그런 길이다.

↑ [월간산]1 테렌스가 새 둥지 같은 '버드네스트(Birds Nest)'를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2 적도새와 새끼의 아름다운 모습. 3 가이드 테렌스가 곤충을 잡아먹은 식물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가이드 테렌스가 돌과 흙으로 쌓은 저장고 비슷한 곳을 가리켰다. 그는 에이션트 오븐(Ancient Oven)이라고 말한다. 마헤섬에 처음 도착한 사람들이 음식을 저장하기 위해서 만든 저장고 같았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가디너 개구리' 손 위에 올려

밀림은 끝이 없다. 이끼류도 엄청나다. 나무와 땅에 온통 이끼류다. 길은 점점 습기가 많아져 미끄럽다. 습지식물이 더욱 많아졌다. 테렌스가 나무 위 벌레를 가리켰다. 스틱 인섹트(Stick Insect)라고 한다. 우리의 사마귀는 아니지만 사마귀 비슷하게 생긴 곤충이다.

테렌스는 세이셸에서만 서식하는 작은 개구리가 있다고 자랑삼아 말했다. 이름은 '소글루셔서'. 정확한 이름은 '가디너 개구리(Gardiner's frog)'다. 1cm도 안 되는 작은 체구로 세상에서 가장 작은 개구리다. 2013년 9월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던 그 개구리다. 프랑스국립과학연구센터(CNRS) 공동연구팀이 발견했다고 영국 BBC, 데일리메일 등이 보도했다. 이 개구리는 통상 양서류들이 가진 고막 등의 청각기관이 없다. 하지만 귀 없이도 소리는 듣는다. 이 개구리는 머리로 소리를 받아들여 큰 입으로 공명을 증폭시킨 후 두개골의 뼈와 조직을 통해 소리를 전달한다고 한다. 가디너 개구리의 뼈가 소리를 듣는 데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앞으로 청각장애 극복을 위한 연구 자료로 쓰이게 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소글루셔서를 안다고 하자, 이번엔 나뭇잎에서 뭘 하나 줍더니 손바닥에 얹으며 보라고 한다. '베치 누더스 나이저(Batch Nudus Niger)'라고 부르는 매우 작은 달팽이였다. 조금 전 말했던 소글루셔서 같은 작은 종이다. 이번엔 숲 속 한쪽을 가리킨다. 이 친구는 끊임없이 뭔가를 보여 주려고 애쓴다. 나뭇잎과 풀잎 사이 뭔가 시꺼멓게 보인다. 뱀이다. 전혀 해롭지 않다면서 다만 잠자고 있는 뱀을 깨우지 말라고 했다. 이름은 울프 스네이크(Wolf snaker). 왜 울프란 이름이 붙였는지 물어도 잘 모른다. 농담 삼아 "저 뱀이 도망갈 때 늑대 울음소리 같이 내지 않을까" 라고 하니 크게 웃는다.

정상에 거의 다 온 듯하다. 바로 위에 정상 봉우리가 보이는 듯한데 테렌스는 2시간쯤 더 가야 한다고 한다. 갸우뚱거리면서 올라갔지만 곧 정상이다. 이 친구는 시간을 최대한 늘려서 잡는 성향이 있는 듯했다.

낮 12시10분쯤 정상에 도착했다. 출발한 지 3시간30분쯤 걸렸다. 매우 빠른 페이스다. 테렌스도 매우 빨리 왔다고 말했다. 예상대로라면 오후 1시가 넘어야 하는데 1시간 정도를 앞당겼다. 정상 주변은 안개가 자욱 끼여 주변을 조망할 수 없다. 이런 섬나라의 최고봉은 항상 안개가 낀다. 구름이 높은 봉우리에 걸려 더 이상 지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구름이 종종 비를 뿌리기도 한다. 그래서 정상 주변은 항상 축축하고 습기가 많다. 등산로도 매우 미끄러워 조심해야 한다.

↑ [월간산]가이드 테렌스가 뿌리가 지면 위에 올라와 있고, 줄기엔 잔가시가 촘촘히 솟아 있는 라타니 호반(Latanier Hauban)의 뿌리를 들어 보이고 있다.

구름 때문에 눈에 뵈는 게 없다. 산 아래의 아름다운 해변도 전혀 볼 수 없다. 바로 옆 나무만 보인다. 열매를 맺은 나무가 많다. 그 열매가 땅에 떨어져 향긋한 냄새를 낸다. 우리 참나무 비슷한 잎인데 전혀 다른 열매를 맺고 있다. 테렌스는 '구야바'라고 한다. 식용이라며 하나를 집어먹으며 먹어보라고 권한다. 맛있다고 한다. 하나 따서 먹는데, 이상한 맛이어서 그대로 내뱉었다. 테렌스가 웃으며 "속았지"라며 놀린다. 10여 분 쉬는데 비가 조금씩 내릴 조짐이다. 아마 구름이 이 봉우리를 넘지 못해 머금은 수증기를 뿌리려는 심산인 듯했다. 비를 맞기 전에 다시 하산이다.

정상까지 왕복 7.4km, 7시간 잡아야

테렌스는 새 둥지 같은 풀을 가리키며 '버드네스트(Birds Nest)'라고 했다. 배드민턴의 셔틀콕같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숲 속에서 새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불불'이라고 한다. 이 새는 매우 공격적이라고 했다. 같이 있는 다른 새를 마구 공격한다고 설명했다. "나한테도 공격하나"고 농담 삼아 물었다. 그도 하하 웃으며 "설마 그럴 리가 있겠냐"고 답했다.

하산길은 미끄럽긴 하지만 올라가는 것보다 훨씬 빨랐다. 가파른 정글을 헤쳐 나가는 등산길은 찔리고 미끄러지고 했지만 내려가는 길은 줄기에 가시가 있는 라타니호반 같은 나무만 잡지 않는다면 별로 어려울 건 없다.

하산길에 잠시 쉬면서 테렌스는 국립공원 가이드만 18년째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다음에 오면 꼭 자기를 찾으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세이셸은 관광수입 등 서비스업이 거의 70%를 차지한다. 아직 자원은 많이 개발되지 않은 상태다. 특히 영해에 있는 석유와 천연가스 같은 부존자원은 쿠웨이트의 몇 배에 달해 개발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이셸을 단순히 휴양지로만 여기기엔 조금 아까운 생각이 든다. 좁은 섬이지만 밀림을 헤쳐 나가는 듯한 등산과 바다 속을 유유히 누비는, 도전과 모험을 즐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볼 만한 곳이다.

1,000m가 채 되지 않은 높지 않은 세이셸의 최고봉이지만 여느 밀림을 방불케 하는 숲, 아직 개발되지 않은 등산코스, 그 숲속에 사는 희귀하고 다양한 곤충과 나무는, 방문하는 사람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할 정도였다. 고도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나무군락과 습도 등의 차이도 뚜렷했다. 휴양지로서의 세이셸로 끝날 게 아니라 도전과 모험이 가득 찬 세이셸로 개발할 여지가 충분했다.

↑ [월간산]

오후 2시 45분 원점에 다시 돌아왔다. 출발지점에서 정상을 밟고 다시 원점에 돌아오기까지 거리는 7.4km. 이를 정확히 휴식시간 포함해서 6시간 5분 걸렸다. 한국의 등산기준으로 치자면 무지 느린 것이지만 현지 가이드 테렌스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만큼 빠른 속도였다. 테렌스는 예상시간보다 너무 빨리 돌아왔다며 "다른 곳에 한 곳 들렀다 갈까" 물었다. 바로 "No"라고 답하고 돌아왔다. 정말 힘들었지만 죽기 전에 한 번쯤 가볼 만한 그런 산이었다.

인도양 세이셸은 어떤 나라?

115개 섬으로 이뤄진 영연방공화국… 희귀곤충과 동식물·영해 부존자원 많아

세이셸의 역사는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로부터 시작된다. 기록이 그때부터 나온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1498년 동아프리카에 왔을 때 인근의 섬인 세이셸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다. 1503년 바스코 다 가마가 세이셸 남부의 아미란테제도 발견 후 아랍인과 포르투갈인이 찾아왔다. 그러나 사람이 이주한 흔적은 없다.

영국인들은 1609년 어센션 굿홉(Ascension and Good Hope)호가 동인도회사로 동양을 개척하기 위해 탐험하는 중 세이셸군도에서 제일 큰 마헤(Mahe)섬에 도착했다. 식량을 보충하고 신선한 물을 공급하는 장소로 활용했다.

이어 1742년 프랑스의 지배자 버트란트 프란세스 마헤 디 라보르도니스(Bertrand Francois Mahe de Labourdonnais)가 선박을 세이셸에 파견했다. 14년 후 프랑스는 마헤 군도의 7개 섬을 소유했다. 지금의 마헤란 명칭은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그 이후 코로네일 니콜라스 모페히(Corneille Nicholas Morphey) 선장에 의해 처음으로 세이셸(Sechelles)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전한다. 그가 당시 존경했고 프랑스의 실제 장관이었던 비콤트 모류 드 세셜(Vicomte Moreau de Sechelles)에 경의를 표하며 '세이셸'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다. 몇 년 뒤 사람들이 이주하기 시작했다.

↑ [월간산]테렌스가 세이셸에서만 서식하는 작은 개구리인 '가디너 개구리(Gardiner's frog)'를 손 위에 올려 보이고 있다. 2013년 프랑스 과학자에 의해 발견된 개구리는 당시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1768년 프랑스는 프라린(Praslin)을 차지했고, 1785년 마헤섬에 7명의 프랑스인과 123명의 노예가 이주하면서 본격 시작됐다. 프랑스와 영국인 사이에 쟁탈전이 벌어졌지만 1814년 파리조약으로 영국의 영유권이 인정됐다. 19세기에는 모리셔스의 속국이었다가 1903년 아미란테제도와 코스몰레도 제도 등을 전부 합쳐 세이셸제도라 명명하고, 영국의 직할 식민지가 됐다. 1976년 6월 영국으로 독립하면서 영연방공화국(Republic of Seychelles)을 건국했다.

영국과 프랑스 선원, 해방된 아프리카 노예, 그리고 인도와 중국 상인들로 구성된 세이셸군도는 이후 수백 년이 흐르면서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인종을 형성했다. 그것을 크레올(Creole)이라 부른다. 전형적인 멜팅포트(Melting Pot : 여러 인종이나 문화, 민족 등이 융합한 도시나 지역)이면서 융화가 잘 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수도인 빅토리아에는 힌두사원과 가톨릭교회 등이 혼재해 있다. 영국 성공회교회도 있다.

연간소득은 2만5,000달러로, 주변국 중에서 가장 높은 소득을 자랑한다. 연간 평균 기온이 24~30℃이며, 우기와 건기는 따로 없는 편이다. 언어는 영어, 프랑스어, 크레올어 3가지를 사용한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첫 학년엔 크레올어를 배우고, 그 후엔 영어, 그 다음엔 프랑스어를 배운다. 경제와 법률상에서 쓰이는 언어는 영어다. 공식 언어는 1981년부터 크레올어다.

금단의 열매 '코코 드 메르'

세계에서 가장 크고 무거워… 세계자연유산구역에 있는 희귀종

세이셸군도에 있는 많은 유일한 종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식물은 '코코 드 메르(Coco de Mer Palms)'다. 우리말로는 '코코 야자수' 정도 되겠다. 암수 따로 자라며, 어릴 때는 구분할 수 없다. 열매를 맺는 순간부터 암수를 알 수 있다. 수컷 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고 기다란 몽둥이 같은 게 달린다. 그 뭉둥이 주변에 조그만 노란 꽃이 여러 개 핀다. 일종의 수술의 정핵이다. 수컷 야자수는 30m까지 암컷보다 훨씬 웃자란다.

암컷은 보통 24m 정도 자란다. 수컷의 정핵을 바람을 통해서 받은 암컷 야자수는 열매를 맺는다. 80% 정도는 바람을 통해서 수정이 이뤄지고, 나머지 20%는 벌레를 통해서 수정한다. 이 암컷 야자수 열매가 세계에서 가장 크고 무거워 세계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무려 25kg에 달한다. 그런데 이 열매가 절묘하게 생겼다. 수컷이 기다랗게 남성의 성기같이 생겼다면 암컷의 열매는 여성의 성기를 닮았다. 양쪽으로 갈라진 틈 사이로 털이 난 모습도 영락없는 여성의 상징이다. 그래서 이 열매를 '금단의 열매(Forbidden Fruit)'라고 부른다. 다른 사람은 이 열매를 '사랑의 여신(Love Nut)'이라고도 한다. 세이셸의 특산품일 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관광상품이기도 하다.

↑ [월간산]1 세계자연유산구역인 발레 드 메 국립공원에 있는 암컷 야자수인 코코 드 메르의 모습. 2 발레 드 메국립공원에 있는 수컷 야자수인 코코 드 메르의 모습.

세이셸군도에만 있는 이 야자수는 프라린(Praslin) 섬 '발레 드 메(Vallee de Mai, 일명 5월의 계곡)'에 있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구역이다. 이곳을 흔히 에덴의 동산이라고 부르며, 6,000여 그루의 코코드메르 야자수가 자라고 있다.

15억 년 전 곤드와나 대륙 시기부터 존재해 온 것으로 알려진 이 원시림은 18세기 프랑스가 차지하기 이전까지 해적과 탐험가들의 보물섬이었다. 고든 장군이 맨 처음 프라린섬의 발레 드 메를 발견했을 때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우거진 코코 드 메르 야자수숲을 보고, 성경에 나오는 천국의 에덴동산이 바로 이곳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한다. 발레 드 메국립공원에는 코코 드 메르 외에도 여섯 가지 종류의 세이셸 야자수가 더 자라고 있다.

세계자연유산구역인 이곳에서 야자수 외에도 지구상에서 검은 앵무(Black Parrot)새의 마지막 서식지로도 유명하다. 현지 가이드는 "운이 좋다면 울창한 야자수림 사이로 날아다니는 검은 앵무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색깔을 지녔는지, 어떻게 우는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설명이 없었다. 야자수숲 속에는 많은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발데 드 메국립공원엔 이 외에도 초미니 사이즈의 토종 파충류를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구릿빛을 띤 세이셸 도마뱀인 마부야 세이셸렌시스(Mabuya Sechellensis)와 세이셸 토종 카멜레온 카멜레오 티그리스(Cameleo Tigris) 등이 유명하다.

가는 방법

우리나라에서 갈 때 두바이나 도하, 나이로비, 에티오피아 등을 경유해서 갈 수 있다. 에미리트항공은 두바이↔세이셸을 주 11회, 에티하드항공은 아부다비↔세이셸을 주 7회 운항한다. 인천에서 두바이, 아부다비는 매일 항공편이 있다. 나이로비는 대한항공이 주 3회 운항한다. 세이셸에 갈 때는 13~14시간,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12시간 정도 소요된다. 인천↔두바이 구간은 에미리트항공이 '하늘을 나는 호텔'이라 불리는 A380기를 운행한다. 또한 프랑크푸르트, 로마 등지에서 주 3~7회 운행하는 항공이 있다. 우리나라와는 시차는 5시간. 우리가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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