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공무원이 피아노 반주법 책으로 써낸 사연은..

김효정 기자 2014. 4. 5.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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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국장급(현재 새누리당 파견) 고위 공무원이 피아노 교습서를 냈다. 송수근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이 쓴 책은 '매력을 부르는 피아노'. 영문학 전공에, 공무원 생활 25년, 중년 남성인 그가 피아노 반주법에 대한 책을 썼고, 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송수근 수석전문위원은 하나뿐인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피아노 학원에 데려다 주면서 피아노를 처음 배웠다. 20년 전이다. "아이가 피아노를 배우기 싫어하더라고요. 늘 비슷한 멜로디를 수십 번 반복하는 일이 싫었던 거겠지요. 시간 날 때마다 피아노 학원에 데려다 주고, 교습 마칠 때까지 기다렸어요. 기다리다 보니 지루하잖아요. 피아노를 배워 볼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국방대학원 교육 파견 때 1년 정도 여유가 생겨 피아노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체르니 100번' '30번' 떼는 식으로 배우기는 싫었어요."

송 수석전문위원은 피아노 학원에서 가르치는 기술적 연주법을 익혀야 하는 사람은 일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피아노 전공을 할 사람들, 피아노로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정도를 쳐보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은 체계적으로 테크닉을 익혀야 하지요. 그러나 저처럼 아내와 아이가 부르는 노래에 맞춰 반주하고 싶다는 사람에게는 그런 교습법이 필요 없습니다." 송 수석전문위원은 나름의 반주법을 고안해내기 시작했다. 힌트는 평소 켜던 기타 연주에서 찾았다.

"피아노는 페달을 밟아 소리를 이어나갈 수 있잖아요. 화음을 내는 것이 매우 쉽습니다. 기타 코드를 연주한다고 생각하고, 왼손으로 화음을 만들어봤어요. 제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가지고 이런저런 화음을 만들어 반주를 해봤어요. 처음에는 좀 어색하던 소리가 나중에는 자연스러워지더군요. 아내가 놀라더군요."

'매력을 부르는 피아노'에서 소개되는 반주법은 두 가지에 불과하다. "글로 써놓으니 어렵게 보이는데 간단합니다. 왼손으로 쿵, 오른손으로 짝, 짝. 이게 3박자 반주예요." 송 수석전문위원은 '아리랑'을 맨손으로 연주하는 시범을 보였다. "베토벤, 모차르트를 연주하진 못 해요. 하지만 '아리랑'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는 반주할 수 있죠."

'매력을 부르는 피아노'에 실린 아리랑 악보는 8분의 6 박자다. "우리나라 악보는 8분의 9 박자로 돼 있어요. 이 악보로 연주하면 평소에 우리가 듣던 노래랑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 들 거예요. 제가 8분의 6 박자로 편곡했죠." 책 속에 실린 모든 악보들이 일상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노래들이다. "일상 생활에서 쓸 수 없는 피아노는 안 배우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해요."

이야기는 영어 교육으로 흘러갔다. "우리나라 피아노 교육이 영어 교육처럼 잘못되고 있다고 봐요. 누구나 유려한 문법으로 글을 읽고 쓸 필요가 없잖아요. 일상에서 영어로 대화할 수만 있어도 충분한 사람들이 대다수예요. 피아노 교육도 누구나 베토벤, 모차르트를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을 거라는 목표를 세우면 안 되지요. 가족이 모여 부르는 노래에 반주 역할만 해도 충분해요."

송 수석위원이 뉴욕 한국문화원장으로 일한 2007년의 일이다. "사무실 1층에 은행이 있었어요. 하루는 1달러짜리 지폐가 없길래 교환을 하려고 했지요." 송 수석위원이 한국에서 배우기를, 교환해달라는 영어 숙어는 'break into'였다. "'Will you break this into one dollar bills?'라고 말을 걸었더니 은행원이 묘하게 웃으며 쳐다보는 거예요. 뭔가 잘못됐나 싶어 'Will you'를 좀 더 공손한 'Would you'로 바꿨지요."

그런데도 웃기만 하는 은행원의 대응이 이상해 송 수석위원은 사무실로 올라와 직원들에게 방금 쓴 문장이 이상한지 물어봤다고 한다. "다들 정확한 문장이래요. 그런데 뭐가 잘못되었을까 궁금했어요." 송 수석위원은 다음날 다른 고객들은 어떻게 돈을 교환하는지 유심히 지켜봤다. "앞에 서 있던 흑인 아이는 돈을 턱 내밀더니 'Single.' 이러더라고요.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에서도 돈을 바꿀 때 '1천원짜리 지폐로 바꿔 주시겠습니까?'라고 안 하잖아요. 은행원이 신기하게 봤을 수밖에요."

이 일상적인 경험은 송 수석위원이 혼자서 터득한 피아노 반주법을 책으로까지 써낸 계기가 됐다. "어렸을 때 피아노를 잠깐 배웠던 사람들도 어렵다고, 복잡하다고 배우는 걸 포기해버리잖아요. 어려운 연주를 목표로 삼아서 그런 거예요." 송 수석위원은 가벼운 마음으로 배운 피아노를 가족들과 즐겨 쳤다.

"아내를 위해, 아들을 위해 피아노를 쳐 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더라고요. 다른 사람들도 이런 마음을 느꼈으면 했습니다." 피아노에 대한 선입견을 바꾸는 것, 그래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악기를 접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풍경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송 수석전문위원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기자 역시 오래전 그만둔 피아노 연주 연습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사람은 어릴 적 피아노를 배웠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치는지 잊어버린 사람들, 악기 하나 연주하고 싶은데 부담이 돼서 차마 시작 못 하는 사람들이에요."

송 수석전문위원은 "'손이 굳어 더 이상 피아노를 못 친다'고 말하는 나이 든 사람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임평용 성남시립교향악단 상임 지휘자의 추천사도 송 수석전문위원의 그런 생각을 지지해주고 있었다. "가끔 '피아노로 반주도 하고 즐기려면 어느 정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 나에게 질문했던 분들에게 '아주 쉽게 피아노를 접하고 즐길 수 있는 책이 드디어 나왔다'고 말할 수 있게 되어 대단히 기쁘다."

- 더 많은 기사는 3월 31일 발매된 주간조선 2300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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