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된 이슬람 여성의 저항..쉬린 네샤트 회고전

2014. 4. 1. 17: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누구도 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도 물고기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도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정원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정원의 심장이 태양 아래 부어올랐다는 사실을/ 푸름의 기억이 정원에서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을'(시 '나는 정원이 가볍다'에서)

이란의 공용어 파르시어(페르시아어)로 쓰인 시가 한 여성의 손가락을 타고 올라와 입술에 닿는다. 이란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여성의 목소리를 낸 여류 시인 포르흐 파로허저드의 시다.

얼굴이 거의 보이지 않는 사진 속 여성의 입술은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살짝 벌어져 있지만 아랫입술에 닿은 손가락은 미처 입 밖으로 내뱉지도 않은 말을 멈추게 하려는 듯하다.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이란 출신 여성 작가 쉬린 네샤트(57)의 작품이다.

이란 역사상 비교적 진보적이었던 시대에 자란 작가는 17살 때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한동안 귀국하지 못하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아픔을 겪었다. 그 뒤로 17년 만에 고국을 찾은 작가는 보수집권체제 하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고 모국의 정치·사회적 상황과 이슬람 여성의 억압된 삶 등을 소재로 작업하고 있다.

작가는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한 사람의 이란인으로서,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마주하는 이슈들 사이를 항해하는 것, 그것이 내 작업의 본령이다. 그리고 그 이슈는 나라는 인간보다 훨씬 거대하다"고 말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쉬린 네샤트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지난 20년간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하는 전시로, 사진과 영상 50여 점을 선보인다.

사진 작품 속 이미지는 이중적이다. 작가 자신의 자화상을 비롯해 사진 속 인물의 얼굴과 몸에 파르시어를 써 넣어 침묵과 저항을 동시에 보여주는 식이다. 히잡을 쓴 채 총을 든 여성의 모습은 무력에 의한 억압을 나타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성의 자유를 옹호하는 저항의 목소리를 상징하기도 한다.

한국인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의 사진도 등장한다. 온몸을 베일로 가린 어머니의 손을 잡은 아이의 모습은 "동시대의 사회적 코드를 아직 익히지 못한 순수함"을 강조하고 있다.

쉬린 네샤트는 "나는 이란 여성작가들의 시를 텍스트로 삼았다. 나에게 그것은 침묵하는 듯 보이지만 할 말이 너무도 많았던 여성의 지적이면서도 감정적인 표현"이라고 말한다.

사진 속 인물의 몸에 적힌 파르시어는 그 자체만으로도 강렬하고 아름답다.

작가가 2009년 이란의 녹색 운동과 2010년 아랍의 봄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한 '왕서'(The book of Kings) 시리즈도 만나볼 수 있다. 엄숙한 표정의 노인의 몸에 황제의 군대를 묘사한 삽화를 그리기도 하고(악당) 결연한 표정으로 왼쪽 가슴에 한 손을 올린 청년들의 얼굴(애국자)이나 다양한 연령대의 인물들(군중)에 현대 시인과 반체제 인사들이 쓴 시를 써 넣은 작품이다.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격동'), 2009년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여자들만의 세상') 등을 안기며 작가를 세계무대에 알린 영상 작업도 함께 선보인다.

2채널 흑백 영상작업 '격동'은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노래를 부를 수 없는 이란의 현실 때문에 텅 빈 객석을 향해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부르는 여성과 관객이 가득 들어찬 객석을 등지고 노래하는 남성의 모습을 대비했다.

초기 필름인 '황홀'(1999년작)과 '열정'(2000년작) 역시 반대편에 놓인 스크린에 대조적인 남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베니스영화제 수상작인 '여자들만의 세상'은 샤누쉬 파시푸르가 쓴 소설을 개작한 작품이다. 정치 활동가가 되기를 열망하는 여성 '뮤니스', 어머니가 되고 싶은 여성 '마도흐트', 창녀 '자린' 등 세 여성의 얘기가 1950년대 이란의 사회정치적 배경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내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두 저항적이다. 그들은 억압받지만 늘 행동에 나선다. 나 역시 그런 여성이라고 생각한다."(쉬린 네샤트)

개인적인 사정으로 방한하지 못한 작가는 1일 열린 간담회에서 화상전화를 통해 "이란의 정체성을 작품으로 구현하고 싶었다"며 "정치와 시를 어떻게 연결할지 고민하면서 형식의 변화를 계속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 지역 근·현대 미술을 주도하기 위한 국립현대미술관 아시아 프로젝트(MAP·MMCA Asia Project)의 첫 기획전이다.

전시는 7월 13일까지. ☎ 02-3701-9500.

hanajjang@yna.co.kr

'국적불명' 무인항공기 1대 어제 백령도서 추락
군 당국, 北 도발시 '3배 이상 대응' 개념 정립
이병헌 '터미네이터:제네시스' 출연…"역할 협의중"
<가짜 엄마까지 동원한 40대 이혼녀의 혼인빙자 사기>
만 7세 소녀 홀인원…국내 최연소 확인중

▶이슈에 투표하고 토론하기 '궁금한배틀Y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