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석 장편소설 | 강철무지개] 112회

2014. 3. 2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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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최인석 소설 < 112화 >

케빈은 샴페인 잔을 휘두르며 떠벌렸다. 중요한 일입니다. 북한을 위해서도, 우리나라의 재통일을 위해서도. 언제까지 갈가리 찢겨 이 나라 저 나라 놈들이 말아먹는 꼴을 지켜봐야 하는 건지······. 저야 장사꾼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요한 일은 의원님 같은 분들이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런 말씀 마세요. 에너지돔이나 집합거주지구는 이미 기업이나 국가의 경계로부터 라이즈 어바우브한, 트랜샌드한 영역이라고 난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십여 년 공부를 하고 귀국한 창수에게는 이런 식의 영어가 낯간지러웠다. 익숙해질 수도 없었다. 아, 그런가요? 노력하겠습니다. 그는 케빈 의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뒷걸음질했다. 그에게 말 한 마디라도 건넬 기회를 엿보는 기업가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똥물을 뒤집어쓴 공직자에게 새로운 똥물을 끼얹을 기회를 얻기를 고대하는 것 같아 보기가 편하지 않았다. 케빈은 그런 똥물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그런 그를 여전히 믿음직한 파트너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눈을 번들거리며 때를 엿보고 있었다. 필요한 일 생기면 언제라도 연락 주십시오. 만사 제치고 도와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케빈의 혓바닥은 기름칠이라도 한 듯 매끄러웠다. 고맙습니다. 그가 사람들에 에워싸여 멀어지자 창수는 태기에게 말했다. 메모해둬요, 저 사람. 관리해야겠네요. 저게 무슨 소리겠습니까. 주고받을 거 없냐는 소리지. 에너지돔이 걸려 있는데 주고받을 게 왜 없겠습니까. 우리 입장이야 뻔하고, 그러니 저 사람 말뜻은 더 뻔하고. 강 사장은 휴대전화를 꺼내 일단 음성으로 메모를 남겼다.

창수는 와인 셀러 옆으로 그를 데려갔다. 바텐더가 건네주는 적포도주를 받아 들고 그는 물었다.

"하산으로 간 차는······?"

하산, 머나먼 북녘의 공업지대였다. 두만강 하류, 한국과 중국, 러시아의 접경 지역이었다. 세 나라가 출자하여 자유공업지대를 설치한 것이 삼십 년 전의 일이었다. 이십여 년 전부터 세 나라 기업들만이 아니라 독일과 일본, 캐나다와 인도, 베트남의 기업들까지 몰려들고, 더불어 노동자들이 밀려들어 러시아는 대대적인 확장을 계획 중이었다. 트럭 6869의 최종적 목적지가 그곳이었다. 마침내 오늘, 그들이 멕시코에서 귀국하면서 닫을 수 없었던 문을 닫게 될 것이다.

"아직은 칠 번 국도에 있는 모양입니다. 곧 고속도로에 오르면 기상이변이 벌어지지 않는 한 늦어도 0200시 무렵에는 닿을 예정입니다."

태기 역시 때때로 휴대전화를 꺼내 떠오르는 지도와 문자를 들여다보며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창수는 과학기술부 장관과 함께 무리를 지은 기업가들 쪽으로 멀어져갔다. 태기는 포도주를 단숨에 마시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어째서 아직 칠 번 국도인가? 그는 휴대전화에 한반도의 지도를 띄우고 기상청의 정보를 내려받았다. 눈. 예상 강우량은 오십 밀리. 기온은 섭씨 영하 오 도. 크게 추운 날씨는 아니었다. 도로가 얼어붙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산은······ 영하 십 도였다. 역시 크게 추운 날씨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가 전화를 주머니에 넣으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더스틴이었다. 그는 밑도 끝도 없이 대뜸 말했다.

"사장님, 여자랍니다."

여자라니?

"테러리스트 말입니다."

무슨 테러리스트?

"그, 그······ 아이리스를 찾는 테러리스트. 그 여자 남자친구를 자처하는."

여자? 그것이 여자라고? 여자가 남자친구라고? 태기는 혼란스러웠다.

"확실한 정본가요?"

"네. 프라이 형사로부터 이제 막 연락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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