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포도 처녀'를 부르던 인정 많은 '용태 형'

2014. 3. 1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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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 김용태 민예총 前이사장 추억 책·전시·경매 마련

투병 김용태 민예총 前이사장 추억 책·전시·경매 마련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산포도 익어가는 고향 산길에 산포도 따다 주던 산포도 처녀/ 떠날 때 소매 잡고 뒤따라 서던 흙 묻은 그 가슴에 순정을 남긴 산포도 첫사랑을 내 못 잊겠네∼♬ (후략)"

작은 키에 "혁대를 배꼽까지 올려 입은" 채 두 주먹을 쥐고 목청껏 '산포도 처녀'를 부르던 '용태 형'.

김용태(68)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전 이사장과 오랜 세월 인연을 맺어 온 문화예술인들이 기억하는 김 전 이사장의 모습이다.

1980년대 민중미술 운동을 이끌었던 미술동인 '현실과 발언'의 창립 동인으로 사회 참여를 시작한 김 전 이사장은 민족미술협의회 초대 사무국장, 민예총 초대 사무처장 등을 지내며 주로 '일꾼' 역할을 도맡았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아니 권력의 중심에서도 그는 늘 무관에다 빈 주머니였다. 물론 관(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상임이사)을 쓴 적도 있으나, 모든 직이 다 심부름 즉 따까리, 설거지직이었다."(작가 임옥상)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에는 백기완 대통령 후보 비서실장을 지냈고, 1993년 북한 정영만 조선미술가동맹 위원장과 최계근 중앙미술심의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코리아통일미술'전을 성공리에 치르며 남북 문화 교류의 물꼬를 트기도 했다.

"민중 미술의 일꾼"(박재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이었던 김 전 이사장의 지인들이 최근 한데 모였다. 간암 투병 중인 '용태 형'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김윤수 민예총 초대 공동의장,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신경림 시인, 구중서 문학평론가 등 김 전 이사장과 40여 년 연을 맺어 온 문화예술인 46명이 쓴 글을 엮은 책 '산포도 사랑, 용태 형'(현실문화)이 나왔다.

2011년 위암으로 수술을 받은 김 전 이사장은 작년 여름 간암 판정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1년을 못 넘기겠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지인들이 부랴부랴 '김용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용사모)을 꾸리고 그의 여정을 책에 담기로 했다.

당초 김 전 이사장과의 구술 인터뷰로 책을 만들 계획이었지만 생각보다 김 전 이사장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이때 유홍준 석좌교수가 "글을 나눠서 쓰자"고 제안했다.

기획을 맡은 독립 큐레이터 전승보 씨는 17일 종로구 경운동 한식당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모두 원고료도 받지 않고 원고 청탁을 한 지 2주 만에 글을 보내왔다"고 말했다.

"김윤수, 신경림, 염무웅 등 글을 늦게 주기로 유명한 글쟁이들"(유홍준 교수)도 다 원고를 보냈다.

각자의 기억을 토대로 쓴 글이라 조금씩 다른 기록도 있지만, 글에는 한결같이 '산포도 처녀'를 열창하고 늦은 밤 술 취한 지인에게 "니 차비 있나"를 묻던 '용태 형'의 인간됨이 담겼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절친' 작가 임옥상은 "용태 형은 우리가 나름 화가라고 겉멋이 들었을 때 그런 것 없이 일종의 일꾼 같았다"며 "그런 모습 때문에 모두가 격의 없이 친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임옥상은 이어 "성질 더러운 것도 있어서 한번 잘못 보이면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면서 "아주 담백하고 결백한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유홍준 교수도 "주둥이로만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은 용태 형 앞에서 맥을 못 췄고 먹물 냄새가 나면 막걸리 주전자가 날아갔다"며 "그래도 될 정도로 인간적인 신뢰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산포도 처녀'를 부르던 '용태 형'을 그린 민중화가 강요배는 책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거울이라면 다면경을 가진 사람"이라며 "인정 따라 낮고 넓게 흐르던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김정헌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은 "오로지 '산포도 처녀' 하나만으로 좌중을 압도했다"며 "작은 키에 바지춤을 들어 올리며 챔피언벨트를 찬 권투선수처럼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며 열창할 때는 다들 박수치기보다 배꼽을 잡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유홍준 교수는 "민주화 운동, 민족예술운동의 심부름꾼으로 살았는데 이런 서정성, 인간미가 깃들어 있어서 민예총 등에서 큰 역할을 할 수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백기완 소장은 발간사에서 "김용태 선생은 마땅히 들풀임을 살아왔다"며 "그의 삶, 그의 투쟁, 그의 역사가 곧 거대한 예술이 아니던가"라고 회고했다.

용사모는 오는 26일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책 출판 기념회와 함께 작가 43명의 작품 100여 점을 모은 '함께 가는 길'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 강요배, 권순철, 김인순, 김정헌, 민정기, 신학철, 임옥상 등 '용태 형'을 기억하는 작가들이 흔쾌히 작품을 내놨다.

특히 오는 30일 평창동 서울옥션 스페이스에서 '사랑의 힘' 경매를 열어 전시회에 나온 작품 중 35점을 출품한다.

전시회와 경매 장소는 모두 가나아트 이호재 회장이 무료로 제공했다. 김 전 이사장이 지금은 폐간된 격월간 '가나아트'의 초대 편집주간을 맡았던 인연에서다. 이 회장은 경매 수수료도 받지 않기로 했다.

수익금은 김 전 이사장의 치료비 등에 사용될 예정이다.

전시는 30일까지.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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