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폭탄 맞은 강릉, 미안해 말고 놀러오세요~

2014. 3. 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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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하늘이 무심할 정도로 내린 폭설이 그친 뒤 열흘이 지났다. 강릉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강원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교통 걱정은 없는지, 무엇보다 주민들에게 미안해하지 않고 놀러가도 되는 건지 궁금증이 일 것이다. 겨울바다와 강원도의 커피를 맛보고 싶지만 이처럼 주저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강원도 춘천에 거주하는 필자가 직접 나섰다.

지난 2월 26일 강릉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영동고속도로는 이미 제설 작업을 마친 상태라서 차량 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대관령 터널을 지나니 오히려 소나무마다 잔뜩 머금은 눈이 한폭의 수채화처럼 멋진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다만, 영동고속도로를 빠져나오면서 점차 폭설의 복구 현장이 시야에 들어왔고 막바지 눈을 나르는 제설 차량들도 보였다.

한산한 강릉 시외버스 터미널 앞. 제설 작업이 끝난 상태지만 관광객들의 발길은 아직까지 뜸한 편이다.

이윽고 도착한 강릉 시외버스터미널은 동해안 최대의 관광도시답지 않게 한적한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눈 때문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더라도 지나치게 인적이 드문 모습이었다. 10여 분가량 도로변을 걸으면서 가장 인상 깊게 본 건 도로 양쪽을 길게 덮고있는 눈이었다. 제설작업을 통해 쌓아둔 눈이 자연스럽게 담벼락을 형성하면서 차와 사람 사이를 갈라놓았다. 그로 인해 길이 좁아져 시민들이 인도로 다니는 것도 쉽지 않았다.

버스나 택시가 손님을 못보고 지나가는 경우도 발생했다. 때문에 행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도로변까지 나오는 아찔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택시기사 신성욱(62) 씨는 "제설은 어느 정도 끝나 도로 통행엔 지장이 없지만 아직 쌓아둔 눈이 녹지 않아 큰일"이라며 "길거리에 원채 사람이 없으니 택시업자끼리의 경쟁도 심하다."라고 말했다.

인도의 절반을 차지한 눈 담벼락. 길이 비좁아 다니기가 힘들다.

점심을 먹기 위해 도착한 음식점에도 인적이 드물긴 마찬가지였다. 강릉시 교동에서 짬뽕 전문점을 운영 중인 최동호 씨는 "대한민국 5대 짬뽕 중 하나라고 소문날 만큼 평소에는 사람들로 붐빈다. 손님들이 30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리는 건 기본이었다. 하지만 폭설이 내린 후로는 파리만 날린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일반 음식점뿐만 아니라 횟집과 숙박업소 등을 운영하는 강릉 내 상인들의 주머니 사정이 폭설 이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어 "아직 산간지방은 제설이 덜 끝났지만, 대부분의 지역은 제설의 아픔을 딛고 관광객을 맞이할 준비가 이미 끝났음에도 관광객들이 오지 않아 걱정"이라고 호소했다.

강릉시 교동에 위치한 짬뽕전문점. 점심시간이지만 손님은 많지 않다.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뒤 향한 곳은 커피거리로 유명한 강릉 안목 해변이었다. 길게 늘어선 백사장을 따라 자리잡은 커피전문점들이 장관을 이뤘다. 커피거리로 유명세를 타면서 매년 이맘때면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이곳 역시 매우 한산한 모습이었다. 눈 덮인 해안가의 운치를 보며 즐기는 커피 한 잔은 강릉 낭만여행의 진수인데, 이 좋은 볼거리를 많은 사람이 함께하지 못하다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곳에서 만난 대학생 윤은비(21) 씨는 "생각보다 제설이 잘 돼있어 오는 데 큰 불편함은 없었다."며 "오히려 사람들이 많지 않아 조용하고 쾌적한 여행을 즐길 수 있어서 좋다. 곳곳에 쌓인 눈이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 겨울여행에 낭만을 더한다."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추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차윤배(33) 씨도 "사내 직원들과 자원봉사를 마친 후 커피를 마시러 안목항에 놀러왔다. 눈이 내려 경치가 아주 수려하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더 녹기 전에 사람들이 많이들 보러왔으면 좋겠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안목해변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 관광객들. 눈 덮인 겨울 해변이 운치를 더한다.

안목항(현 강릉항) 내에 위치한 횟집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횟집으로 들어서자 직원들과 횟감들만 가득할 뿐 관광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횟집을 운영하는 정순옥 씨는 "폭설의 아픔을 겨우 추스르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왔는데, 아직 그 여파가 끝난 것 같지 않다."며 "폭설 이후 횟감은 풍년이지만 사람은 가뭄상태다. 관광객들이 어서 강릉을 찾아와 겨울철 별미인 가자미와 도루묵, 양미리 등을 즐겨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안목해변에서 만난 지역주민 이동민 씨 역시 "강릉 내 제설작업이 거의 끝났는데도 교통난과 주차난이 걱정되서인지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하다. 경기 침체가 오래되면 주민들의 인심마저 사나워질까봐 걱정"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안목항 내에 위치한 횟집. 손님이 없어 한산한 모습이다.

강릉의 경제침체를 걱정하는 지역주민들.

폭설로 인한 피해는 경기 침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문화재와 자연 피해 또한 심각했다. 특히 오죽헌의 상징이었던 천연기념물 제484호인 율곡매(栗谷梅)는 이번 폭설로 2m에 달하는 가지가 부러지는 피해를 입었다. 오죽헌이 들어설 당시인 1400년께 심은 율곡매는 수령이 600년을 넘은 것으로 추정되며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직접 가꿨다고 전해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그 뿐 아니라 수령 200년이 넘은 소나무와 오죽헌 주변 담벼락도 눈으로 인해 말 못할 피해를 입었다. 오죽헌 시립박물관 관계자인 윤현섭 씨는 "매달 1,000여 명이 오던 오죽헌의 관람객이 절반으로 뚝 끊겼다."라며 운을 뗐다. 윤 씨는 "일단 중요 문화재부터 우선적으로 제설을 했고, 추가 피해에 대비해 보수 작업이 한창이다. 현재는 오죽헌을 비롯한 다른 문화재들을 관람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관광객들이 걱정 말고 찾아 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처마위로 눈이 쌓인 오죽헌.

기자가 경험한 강릉은 폭설의 재앙이 끝난 곳이었다. 그러나 걱정과 우려로 인해 강릉을 찾지 않는 관광객들이 많아진다면 강릉의 재앙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교통이 혼잡하고 주차할 곳이 없지는 않을까?'하는 걱정과 '피해지역에 놀러가도 될까?'라는 우려는 이제 접어두자. 강릉은 수많은 자원봉사들의 노력으로 이미 급박한 수술을 마친 상태이다. 강릉이 회복되려면 이제 관광객들이 찾아줘야 한다. 강릉을 즐기는 것. 그것이 강릉을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정책기자 고광석(대학생)

goknee052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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