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새 소설집 '다른 모든 눈송이..'

은희경(55)이 다섯 번째 소설집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문학동네)로 돌아왔다. 한 뭉치 소설이 쌓이면 순서를 이리저리 섞고 제목을 다는 소설집과 이 책은 다른 점이 있다. 2009년 여름 발표된 '다른 모든 눈송이와…'부터 2013년 가을 발표된 '금성녀'까지 쓰인 순서대로 실렸다.
여섯 편 이야기는 인물과 공간을 공유하며 씨실과 날실처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남쪽 해안가 마을에서 상경해 좁고 누추한 하숙방에서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안나의 이야기 '다른 모든 눈송이와…'부터 안나 시이모인 마리 할머니 목소리를 담은 마지막 단편 '금성녀'까지 안나와 마리의 가족 이야기를 넉넉하게 품는다. 말하자면 또 다른 이야기를 탄생시키는 단 하나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올린 정교한 퍼즐처럼 읽힌다.
'눈송이 연작'이라 할 만한 이 책 인물들이 공유하는 감정은 낯선 곳으로 떠밀려간 인물들이 겪는 소외와 녹록지 않은 적응의 기억. '프랑스어 교습'에는 소설가가 된 이후 20여 년을 일산 신도시에 살아온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아스라히 녹아 있다.
결혼을 위해 아버지와 의절하고 신도시로 흘러들어간 주인공 이야기다. 그녀의 삶은 평온하되 지루하다. 남편의 귀가가 늦어진 밤이면 뜨개질을 하다 잠이 드는 자신이 반쯤 언 채로 안치소 냉동고에서 깨어난 시체처럼 느껴지곤 한다. 이동도서관에서 이따금 빌리는 요리책과 뜨개질 교본과 여성잡지로는 우울함을 달랠 수 없다. 만삭의 몸으로 생맥주를 먹으며 가벼운 일탈을 하지만, 뱃속 아이의 발길질에 쓰러지며 그녀는 말한다. "프랑스어 공부를 해야 해요." 결코 뿌리내릴 수 없는 신도시의 삶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인 프랑스를 떠올린 것이다. 그녀가 만난 낯선 남자의 입을 통해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매순간 예상치 않았던 낯선 곳에 당도하는 것이 삶이고, 그곳이 어디든 뿌리를 내려야만 닥쳐오는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어." 은희경은 작가의 말에 "떠밀려간 것도 아니고 스침과 흩어짐이 나를 거기로 데려갔다. 이런 생각을 하던 시간들이 이 책 속 이야기가 되었다"고 썼다. 그 시간들이 은희경의 위악과 냉소도 함께 가져가버린 것처럼 그간의 소설과 제법 온도가 다르다. 이제는 글 속에 온기를 품게 된 작가의 변신이 반가웠다.
[김슬기 기자 / 사진 제공 = 이천희]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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