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 조선인 사후 70년 만에..

2014. 2. 1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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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홋카이도 탄광서 폐렴으로 사망

일본인 주지가 시민단체에 연락

'강제연행 사망자' 명단으로 확인

외손자 "유골 보관 꿈도 못꿔"

홋카이도에만 유골 100위 넘어

"제 손으로 이렇게 (유골을) 품에 안고, 한국인 유족들한테 전달해 드리고 싶어요."

15일 오후 삿포로를 출발한 차는 눈으로 뒤덮인 홋카이도의 고속도로를 북상해 세시간을 달렸다. 14일부터 일본 열도를 강타한 기록적인 폭설로 홋카이도는 온통 눈 천지였다. 총인구가 3400명뿐인 홋카이도 북서부의 마을 누마타초의 작은 절 에이토쿠사에 이르자 주지 스님의 부인인 나가사와 교코(65)가 따뜻한 얼굴로 일행을 맞았다. "멀리서 오셨군요. 이것입니다. 손님이 오셨으니 촛불을 켜야겠군요." 나가사와는 햐안 보자기에 싸인 납골함 앞에서 합장을 하고는 조심스레 불을 붙였다. 추운 날씨 탓인지 말을 이어갈 때마다 입 주변에 하얀 입김이 어렸다.

'쇼와 19년(1944년) 5월16일(사망일). 속명 야마모토 이치소(山本一相). 향년 39세.'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면 출신 조선인 오일상의 유골이다. 재일조선인인 채홍철 홋카이도포럼(조선인 유골 반환사업을 하는 홋카이도의 시민단체) 공동대표는 "유골함에서 일본인한테는 드문 이치소(일상)란 이름을 보고 동포라고 직감했다"고 말했다.

나가사와 가문이 주지를 맡고 있는 에이토쿠사는 1930년 누마타초 인근에서 탄광사업을 시작한 쇼와 탄광과 아사노 탄광에서 사고나 질병 등으로 사망하는 이가 나오면 이들의 장례식을 치러주는 절이었다. 1969년 탄광이 폐쇄되자 아사노 탄광 주변에서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나가사와는 "시어머니를 통해 탄광에서 일하던 조선인이 있었다는 얘길 들었다. 절의 납골당에 안치된 무연고 유골 가운데 혹시 조선인 유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홋카이도포럼 공동대표인 도노히라 요시히코(홋카이도 다도시초 이치조사의 주지)한테 연락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락을 받은 도노히라 공동대표는 지난해 7월 채씨 등과 함께 절을 방문했다. 이 유골이 창씨개명당한 조선인의 유골임을 직감한 채씨는 도노히라 대표와 함께 일본 연구자 다케우치 야스토가 작성한 '강제연행기 조선인 사망자' 명단을 뒤지기 시작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유골의 주인은 아사노 탄광에서 1944년 '급성폐렴'으로 사망한 조선인이었다.

홋카이도포럼 관계자들은 유골 주인의 본적지인 경상북도 칠곡군과 한국의 대일항쟁기강제동원조사지원위원회(이하 위원회)에 한국의 유족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채씨는 최근 위원회에서 "유골 주인의 본명이 오일상이며, 그의 막내딸이 부산에 생존해 있다"는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오일상의 외손자인 정경종(47)씨는 1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할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아 외갓집이 풍비박산됐다는 얘길 외할머니한테서 들은 기억이 난다"며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리려고 2011년 할아버지가 끌려갔다는 홋카이도를 방문해 삿포로 시내와 바다를 둘러보고 왔는데 이렇게 유골이 보관돼 있으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홋카이도포럼과 상의해 올가을께 할어버지의 유골을 고국에 모셔올 예정이다. 예정대로 봉환이 이뤄지면 70년 만의 귀향이 된다.

한편, 도노히라 대표가 지난해 펴낸 책 <유골>을 보면, 조선인임이 확인됐는데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유골은 홋카이도에만 절과 납골당 19곳에 100여위나 되는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한·일 양국의 유골 봉환사업은 2010년 도쿄도 소재 유텐사에 보관된 군인·군속의 유골 219위를 봉환한 것을 끝으로 중단돼 있다. 정씨는 "우리 같은 사람이 여전히 많을 텐데 국가가 조금 더 성의를 보여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누마타(홋카이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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