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기행]알프스의 자연이 빚은 사부아

2014. 2. 12.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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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아 대표 품종으로 화이트 와인은 자케르와 알테스가 있고, 레드 와인은 토착 품종인 몽되즈가 유명하다.

와인과 음식의 천국, 빛의 축제, 생텍쥐페리의 고향,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빛나는 리옹(Lyon). 프랑스에서 파리 다음으로 큰 제2의 도시권이며 론 알프스 지방의 중심도시이다. 손 강과 론 강의 합류 지역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로 기원전 43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갈리아의 요새로 건설됐다.

로마제국 시대에는 속주의 수도 역할을 했다. 중세에는 이탈리아 상인들의 활동으로, 르네상스 시대엔 비단무역을 통해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다. 지금도 그때의 영광과 번영의 흔적이 손 강과 푸르비에르 언덕 사이에 있는 구시가지(Vieux Lyon)에 남아 있다.

필자는 르네상스 시대의 학교 건물을 개축하여 만든 역사적인 라 쿠르 드 로게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비록 좁은 방이어서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살아 있는 중세의 건축물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해질 무렵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구시가지에 있는 12세기 건축물 생장 대성당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고딕식 양식의 저택과 분홍색의 벽과 회랑으로 연결된 좁은 골목을 걸으면서 마치 르네상스 시대의 한복판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사부아 지방 샹베리 남쪽 근교에 있는 청정호수 생안드레 호수와 가을 포도원 풍경. 멀리 알프스의 연봉이 보인다.

다음날 아침 기원전 1세기에 건설된 푸르비에르 언덕의 루그두눔 로마대극장과 리옹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19세기 비잔틴 양식의 푸르비에르 사원을 방문하였다.

이곳 테라스에서 리옹의 구시가지, 손 강과 론 강 사이에 있는 프레스킬 시가지, 론 강 너머 펼쳐진 도시의 장관을 한눈에 볼 수 있었는데, 왜 이곳이 로마시대부터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스위스·이탈리아 국경에 위치한 변방

리옹을 떠나 A43번 고속도로를 타고 프랑스 와인의 변방 사부아의 수도 샹베리로 향했다. 와인 대국 프랑스는 전국에 걸쳐 다양한 스타일의 와인이 생산되고 있지만 사부아나 쥐라는 항상 와인의 변방으로 통한다.

사부아 지방은 정치적으로 프랑스라기보다는 오랫동안 독립된 사부아공국이었으며, 지리적으로는 도저히 와인을 생산할 수 없을 것 같은 알프스 산맥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에 위치하고 있는 사부아는 알프스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는 달리 알자스 지방처럼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기원전 로마가 사부아를 정복한 후 부르고뉴왕국 영토가 되었다. 11세기 신성로마제국의 일원으로 움베르토 1세에 의해 사부아공국으로 탄생했다. 이후 동쪽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의 피에몬테까지 진출했지만, 16~17세기 프랑스에 점령당한 후 1792년 프랑스에 합병됐다가 1815년 다시 독립했다.

1860년 나폴레옹 3세에 의해 사부아 가문이 이탈리아 중북부에 나라를 세우는 대가로 사부아는 니스와 함께 현재까지 프랑스의 영토가 되었다. 이탈리아 북부에 세운 사부아 왕국은 1946년까지 가리발디 장군과 함께 이탈리아 통일운동의 중심이 되어 이탈리아 왕국을 건국하였으나 군주제의 폐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리옹의 랜드마크인 푸르비에르 사원. 19세기에 비잔틴 양식으로 건설됐다.

사부아 지방에는 아직도 프랑스와는 확연히 다른 로마·갈리아·게르만이 혼합된 독특한 문화가 살아 있다. 음식이나 생활양식은 스위스에 가깝다. 국기 역시 스위스 국기와 유사한데, 와인 레이블도 대부분 이 국기를 사용한다. 현재 소수지만 프랑스로부터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운동이 계속되고 있다.

청정 자연낙원 속 황금빛 포도원

리옹에서 80km 지점을 지나니 안개 속에 듈랑 터널이 위용을 드러냈다. 알프스다. 터널을 빠져나오자 청정한 애그블레트 호수가 오른편에 펼쳐졌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먼저 사부아에서 가장 넓은 포도 재배면적을 가지고 있는 샹베리 남쪽의 아프로몽과 아빔, 부르제 호수 서쪽에 있는 종지유 지역을 방문했다.

사부아의 와인 생산 지역은 넓은 면적에 비해 겨우 2000ha이며 생산량도 12만5000hl(헥타리터)에 불과하다. 포도밭도 알프스 산맥 아래 경사면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겨울이 무척 추운 지방이지만, 호숫가나 알프스 산맥 남쪽 경사지의 온화한 기후대를 중심으로 발달되어 있으며 생산량의 75%가 화이트 와인이다.

레만 호수 남쪽 에비앙 지역에 가까운 토농 레 뱅부터 샹베리 남쪽 그라니에산과 동쪽 콩브 드 사부아 지역의 이제르강 유역까지 뱅 드 사부아(Vin de Savoie)라는 AOC등급체계 하에 14개의 생산지역을 가지고 있다. 사부아 대표 품종으로 화이트 와인은 자케르와 알테스가 있고, 레드 와인은 토착 품종인 몽되즈가 유명하다.

영국의 와인 전문가 잰시스 로빈슨 여사는 "사부아 가문이 이탈리아 북부에 나라를 세우면서 이 몽되즈를 프리울리 레포스코란 이름으로 남겼다"는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한 바 있다.

사부아 지방의 대표적인 고급 화이트 와인인 쉬그냉-베르제롱과 아빔(오른쪽).레이블에 스위스 국기와 같은 주국기가 표시되어 있다.

샹베리를 지나 다시 남쪽으로 20km를 지나니 그동안 사진으로만 봤던 아름다운 생 앙드레 호수가 동화책 속의 그림처럼 나타났다. 백조가 한가로이 노닐고 있는 맑은 호수를 둘러싸고 나지막이 펼쳐진 황금빛 포도원이 꿈결 같았고, 야성의 자연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청정한 자연 속에서 탄생한 와인은 과연 어떤 향기를 품어낼까 궁금하였다. 실제로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자케르 포도알을 살펴보니 지금까지 봐왔던 포도와 달랐다. 선사시대 야생의 포도가 아마도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호수를 지나 해발 1933m의 몽그라니에 산 아래 있는 샹드레 마을로 향했다. 1248년에 발생한 몽그라니에 산의 비극적인 산사태로 마을 대부분이 파괴되기도 했다. 유명한 아빔 크뤼는 바로 이 산사태로 쌓인 잡석 위에서 재배된 자케르로 생산하는 특별한 와인이다.

북쪽으로 약 30km를 달려 프랑스에서 가장 크고 깊은 르 부르제 호반 마을에 도착하였다. 미슐랭가이드 별 두 개로 유명한 스타 셰프 잔 피에르 야곱이 운영하는 호텔 옴브레몽에 여장을 풀었다. 이곳에서 저녁을 할 계획이었지만, 월요일은 문을 닫아 미슐랭가이드가 추천한 레스토랑 르 보리바주에서 식사를 하였다.

이곳 호수에서 직접 잡아 올린 농어 그릴 요리에 오늘 방문했던 아빔 와인 2012년산을 주문하였다. 자케르 포도로 만든 이 화이트 와인은 알프스의 뮈스카데처럼 가벼우면서 부드럽고 드라이하지만 필자에게는 맑고 톡 쏘면서도 백악질의 미네랄과 꽃과일향이 배어나는 풍미가 다른 와인과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개성으로 다가왔다.

알프스의 날씨처럼 신선한 산도에 달콤한 유자와 모과향이 우러나오는 이 와인은 필자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전혀 다른 세계의 와인이었다. 그것은 이마도 야생의 낙원 알프스가 빚어낸 자연의 예술품이어서가 아닐까?

< 글·사진 송점종 우리자산관리 대표·Wine MBA j-j-s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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