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1월 25일] 차마고도(茶馬古道)를 다녀오다

김경주 시인ㆍ극작가 2014. 1. 2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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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차마고도(茶馬古道)를 다녀왔다. 차마고도를 따라가다 보면 계곡아래 흐르는 물줄기가 아찔하다. 벼랑 끝에 서서 등에 소금과 차를 실은 말들이 아래를 보고 잠시 휘청거린다. 멀리서 어린 말의 목에 매달린 방울소리가 연하게 흔들린다. 그 풍경은 이름붙이지 못하는 어떤 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도 불러일으킨다. 멀리 산그늘이 밀려와서 그대로 풍경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입속을 맴도는 허기가 생길 때 까지 길을 걷다가 잠시 앉아 계곡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자들의 수첩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의 새순이 싹텄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수첩 속에 알 수 없는 계곡을 그려넣었다.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 마음처럼 티벳에서 운남까지 차마고도를 오르내리던 수백년의 침묵은 서툰 삶의 비의를 감추게 한다. 사람들은 차마고도의 아슬아슬하게 이어진 길 위에서 내적 질서를 고요히 응시했을 것이다. 시라는 것이 자신이 고안한 시어의 고유성을 통해서 삼라만상의 탄생을 돕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있다면, 시는 분명 역사 속에서 어떤 인간성의 회복에 참여 해 왔다고도 말하고 싶어진다. 그것은 세계관의 어떤 열림에 해당할 것이다. 험준하고 가파른 산을 오르기도 했고, 멀리 높은 산정에 쌓여 있는 빛나는 얼음과 희뿌연 눈들의 결정들을 보기도 했다. 내려오는 길에는 산 비탈을 따라 흘러내리는 작은 눈사태를 목격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나는 한 마부를 만났다. 마부는 몇 대에 걸쳐 이어져 오고 있는 그의 가업이었다. 마부는 새벽 일찍 산 아래까지 내려와 말이 필요한 사람들을 말에 태우고 산정을 오르내리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일과였다. 마부가 데리고 다니는 몇 마리의 말은 살이 없어 말랐지만 내쉬는 숨은 맑고 생기가 가득했다. 나는 가장 살이 없는 말의 등에 매달려 계곡을 내려갔다. 그것은 연민에 가득 찬 고통이기도 했으며, 자칫하면 저 아래로 굴러 떨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득찬 경험이었다. 어린 말의 말밥굽에 온 몸을 그냥 맡긴 채로 나는 말갈귀를 꼭 붙들고 있었다. 그런 내 심사를 아는지 말은 이따금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려 내게 뜨거운 입김을 뱉어내곤 했다. 마부는 자주 말의 잔등을 쓸어주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곤 했다. 나는 마부가 자신의 말에게 해주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마부는 자신은 몽골계 사람이며 알타이어라고 했다. 마부는 말의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인다고 했다. " 아가야 가까운 곳에 바람이 있단다. 조금만 힘내렴." 비쩍 마른 말은 말굽이 닳고 등뼈가 솟을 만큼 힘든 산정을 오르내리면서도 마부의 그 말로 인해 정말 힘을 내는 건지, 콧구멍으로 숨을 내쉬며 앞으로 나가곤 했다. 나는 그 말의 등에 타면서 산정을 내려왔다.

가까운 곳에 바람이 있다. 바람은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을 한번도 우리에게 보여주지는 않지만 우리는 바람의 길을 금방 알아챈다. 수없이 가파르고 험한 산정의 길이 처음엔 모두 사람들이 잘못 든 길이었듯이, 잘못 든 그 길이 지도를 만들어 왔듯이, 바람의 숨 냄새를 따라 걸으면 그곳에 기진맥진하던 우리들의 삶이 호흡을 다시 찾듯이.

물기를 머금은 새들이 처마위로 날아오르고 꽃망울이 봄물을 품은 채 떨고 있었다. 멀리 붉은 산 허리가 묽게 번져있다. 저녁이 오고 있는 것이다. 쓸쓸한 구름의 뒤편이 궁금해지는 시간에 차마고도를 내려왔다. 사람이 길을 왜 버리기도 하는지, 왜 길이 사람의 편에서 항상 가장 늦은 시간까지 제 속을 환하게 울렁이고 기다리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차마고도를 내려온 말들은 시야를 잃고 다시 시선을 찾는지 발 아래 마른 풀들을 뜯기 시작했다. 멀리 암자의 내부에서 가장 애연하게 목탁의 멍울을 타고 흘러나오는 것은 인간의 독경만은 아닐 것이다. 말과 마부의 눈동자가 산수유열매보다 붉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전 계곡 아래 발을 헛 딛었던 말 한마리가 고스란히 뼈를 드러내놓은 채 쉬고 있었다.

김경주 시인ㆍ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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