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1박2일로 '오감 충전'

강릉 | 이혜인 기자 2014. 1. 22.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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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1박2일' 코스 따라 떠난 강릉

"여행은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의 본질을 가장 빠르게 드러내줍니다. 그래서 여행을 함께하면 짧은 시간에도 좌충우돌하고 직관적으로 반응하는 그 사람의 본모습을 뽑아낼 수 있어요."

나영석 PD는 KBS < 1박2일 > 을 거쳐 tvN의 < 꽃보다 할배 > < 꽃보다 누나 > 까지 올해로 8년째 여행 예능 프로그램만 만들고 있다. 사람의 본모습을 드러내주는 매력을 쉽사리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 그가 인터뷰를 통해 여러 차례 밝혔던 제작 이유다.

새해 들어 문득 그의 말이 생각났다. 익숙함을 벗어날 수 있는 곳, 여자 혼자 가더라도 부담없는 곳, 자신을 돌아보며 새해를 새롭게 계획하고 마음가짐을 다져볼 수 있는 곳. 그에게 전화를 걸어 이같은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짧은 여행지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나 PD는 " < 1박2일 > 은 겨울에 주로 혹한기 특집 찍으러 남도 쪽에 있는 섬에 들어갔는데…"라며 뜸을 들였다. 그러다가 그는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강릉이 좋겠네요. 겨울에 떠나는 도시 여행 콘셉트로 갔었는데 당시에 < 1박2일 > 멤버들도 아주 좋아했거든요. 도시도 예쁘고 먹을 것도 많은데 < 1박2일 > 찾아보고 그 코스 따라갔다 오세요."

강릉 경포대에서 바라본 일출. 해가 뜨자 주변 하늘이 금세 빨갛게 물들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 짬뽕 먹고 커피 마시고… 일단 먹는다

여행지로 떠나기 전 2011년 방송된 < 1박2일 > 강원도 강릉 편을 찾아봤다. < 1박2일 > 에서는 강릉을 '오감을 만족시키는 여행지'로 소개했다. 당시 멤버들은 강릉 중앙시장 먹자골목에서 주전부리 음식 30개 맛보기(미각), 안목해변 커피거리에서 10가지 커피 맛보기(후각), 참소리 박물관에서 에디슨 축음기 소리 듣고 녹음하기(청각) 등의 미션을 수행하며 강릉의 '오감'을 체험했다. 여행 첫날, 일단 '미각'부터 만족시키기로 했다.

강릉의 '첫 맛'으로 전국 5대 짬뽕으로 꼽힌다는 '교동짬뽕'을 선택했다. < 1박2일 > 에서는 강릉의 먹을거리로 '못밥' '감자옹심이' '대구머리찜'을 소개했지만, 강릉에는 사람들이 한 시간씩 줄을 서서 먹는 '교동짬뽕'도 있다. 30분 넘게 기다려 맛본 교동짬뽕은 보통 중국집의 짬뽕과 확실히 달랐다. 커다란 스테인리스 그릇에 한가득 담겨나온 짬뽕에는 큼직한 굴과 홍합 10여개가 보란 듯이 올라와 있었다. 국물을 떠 먹으니 톡 쏘는 후추향과 진한 해산물의 풍미가 느껴졌다.

짬뽕을 먹은 뒤 커피를 마시기 위해 강릉 안목해변의 커피거리로 향했다. 100m가 넘는 해변을 따라 2~3층짜리 커피 전문점이 20여개 들어서 있었다. 커피전문점 사이사이에는 저녁 술손님들을 유혹하는 조개구이집들이 박혀 있었다. 커피거리 카페들은 바다를 볼 수 있도록 한쪽 벽면을 전부 창으로 해놨다. < 1박2일 > 에서 이승기가 혼자 카푸치노를 마시면서 SBS 드라마 < 시크릿가든 > 의 거품키스신을 따라하던 카페로 들어갔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3층이 아닌, 바다가 밀려들어오는 것처럼 가깝게 느껴지는 2층에서 커피를 마셨다. 창 한가득 햇살이 들어왔다.

전국 5대 짬뽕 중 하나인 강릉 교동짬뽕을 먹는 즐거움도 잊을 수 없는 식도락이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 게스트하우스, 솔로들의 '술파티'

잠은 < 1박2일 > 에서 소개한 강릉 게스트하우스에서 자기로 했다. < 1박2일 > 에서는 산장과 같은 콘셉트의 게스트하우스가 소개됐다. 그런데 방송 이후 홀로 여행을 오는 여성 여행객들이 늘어나면서 2호점이 생겼다. 2호점 위치는 커피거리라 1호점에 비해 여성들이 찾아가기에 더 적합했다. 배낭여행만 4년 넘게 다닌 34세의 젊은 사장이 운영하는 2호점은 여성들의 취향을 충족해주는 곳이었다. 건물 외관과 로비는 카페처럼 꾸며져 있었다. 2층 침대가 들어찬 18인실 방에서는 아침에 바다에서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일어날 수 있다.

쭈뼛거리며 들어간 게스트하우스에는 혼자 온 여행자들이 많았다. 20대 대학생 커플을 제외하고는 모두 혼자라고 했다. 밤이 깊어지면서 낯선 여행객들은 한자리에 모여 들었고 자연스럽게 맥주파티로 이어졌다. 편의점에서 사온 맥주와 마른 오징어, 과자를 펼쳐놓고 맥주캔이 오갔고 10여명의 사람들은 어느새 몇년지기 친구들처럼 수다보따리를 풀어냈다.

서울에서 하던 일을 잠시 접고 한 달 동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는 김주연씨(42)에게 "혼자 다니는 것이 외롭지 않냐"고 물었더니 "전혀 외롭지 않다"며 "20대 때는 외로움을 느꼈다면 지금은 여유를 느낀다"고 말했다. 강릉터미널에 내린 뒤 게스트하우스까지 2시간 동안 걸어왔다는 대학생 정현씨(25)는 "원래 여행은 목적없이 하는 것"이라며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켰다.

게스트하우스 사장 박세준씨는 "낯선 사람들끼리 모이면 금세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며 "여행을 다니다 만난 낯선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선입견이 없으니 남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데도 익숙하다"고 말했다.

강릉 여행은 여러 추억을 안겨주었다. 참소리 축음기 박물관에서는 나팔꽃 모양을 한 다양한 옛날 축음기를 볼 수 있었고(위쪽 사진), 안목해변 커피거리에서는 바다를 바라보며 맛있는 커피를 즐기기도 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 경포대 일출은 눈에, 축음기박물관은 귀로

이튿날 오전 7시. 숙취로 머리가 깨질 것 같았지만 가까스로 일어나 경포대로 일출을 보러 갔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여대생 두 명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해가 뜨길 기다렸다. 날씨가 매서웠지만 일출을 보러 나온 사람은 많았다. 바다구름에 가려진 해는 한 시간이 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분홍색 여명만이 한참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해는 8시가 다 돼서야 머리를 삐죽 내밀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참소리축음기박물관에 들렀다. 이 박물관은 아버지가 어렸을 때 선물해 준 축음기 때문에 전자기기에 빠지게 된 손성목 관장의 수집품을 모아놓은 곳이다. 바로 옆에는 에디슨의 발명품들을 모아놓은 에디슨과학박물관이 붙어 있다. 박물관에서 태엽을 돌려 소리를 내는 오르간, 에디슨이 발명했다는 전기 와플기계, 1920~1980년대 사이에 변화해 온 TV들을 둘러본 후 마지막으로 < 1박2일 > 에서 은지원이 초호화 스피커들이 가득 찬 방에서 'Moon river'를 들으며 넋을 놓았던 음악감상실에 들어갔다.

작은 극장 같은 공간에는 한쪽 벽에 커다란 스피커 여러 대가 놓여 있었다. 1920년대에 극장에서 쓰이던 스피커들이라고 한다. 큐레이터가 "1970년대에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인기가 많았던 가수였죠. 사이먼앤가펑클의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들으시겠습니다"라는 말을 마치자 불이 꺼지고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공간을 가득 채우는 사운드를 느끼며 은지원이 그랬던 것처럼 넋을 놓고 음악을 들었다. '항해를 계속하세요. 멈추지 말고 그렇게요. 이제 좋은 날들이 올 거예요. 당신의 꿈들이 점점 다가오고 있어요'라는 가사가 음악감상실 안을 가득 메웠다.

■안목해변 커피거리 = 강릉시 견소동에 있는 안목해변에는 20여개의 커피전문점이 들어선 커피거리가 있다. 커피전문점 사이사이에는 조개구이집이 있어 여러 명과 함께 왔을 때는 커피를 마시다가 조개구이를 먹는 것도 좋다. 강릉시내에 6호점까지 있는 '커피커퍼'는 인근 커피농장에서 생산되는 원두로 커피를 만든다. 커피거리 중앙에는 '커피커퍼 안목2호점'(033-653-0100)이 있다.

■참소리축음기·에디슨과학박물관 = 1900년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생산된 다양한 소리 기기, 전구, 텔레비전 등을 볼 수 있다. 오래된 뮤직박스(오르골)를 손으로 돌려 직접 소리를 듣거나, 장을 여닫아서 볼륨을 조절하는 축음기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본관 3층에 위치한 TV·라디오 전시관에서는 세계 최초의 TV인 베어드 TV를 비롯해 다양한 옛 TV들을 볼 수 있다. 033-655-1130~2

■숙소 = 강릉 게스트하우스 1호점(010-5368-9999)과 2호점(010-2987-6248). 강릉시 안현동에 있는 '강릉 게스트하우스 1호점'은 < 1박2일 > 촬영장소로 유명하다. 앞마당이 넓고 별장과 같은 분위기의 1호점에서는 매일 밤 바비큐 파티를 하며 다른 여행객들과 어울리는 것이 가능하다. 강릉시 견소동 커피거리에 있는 '강릉 게스트하우스 2호점'은 외국의 술집같이 아기자기하고 아늑한 분위기라 여자들이 많이 찾는다.

■맛집 = 강릉시 교동에는 전국 체인인 '강릉 교동짬뽕'의 본점(033-651-3378)이 있다. 일반 짬뽕보다 굴, 대하, 홍합 등 해물을 잔뜩 넣어서 국물에서 시원한 맛이 난다. 바로 튀겨주는 군만두와 함께 먹는 것이 맛있다.

특별한 음식 대신 시골밥상 같은 느낌의 밥 한 끼를 먹고 싶다면 임당동에 있는 '옹달샘'(033-646-8999·사진)을 찾으면 된다. 감자를 섞어 짓는 보리밥에 각종 나물과 된장찌개, 제육볶음 등을 곁들여 먹으면 맛있다. 1인 여행객들에게 맛집을 추천하고 피드백을 받아본 경험이 많은 강릉 게스트하우스 2호점 사장은 고추장을 푼 매운 칼국수가 유명한 금학동의 '금학칼국수'(033-646-0175)와 매콤한 대구머리찜이 유명한 성산면의 '옛카나리아'(033-641-9502)를 추천했다.

< 강릉 |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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