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0] 우리에게 90년대는..

2014. 1. 2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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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 열광하고, 영화에 등장한 카페를 찾고...10~20대에서부터 40~50대까지, 2014년을 살고 있는 우리 사회 많은 사람들이 90년대의 향수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군사정권 시절 포크음악으로 자유를 갈구했던 7,80년대가 지나고 90년대엔 서태지와 김광석이 한 세대 안에서 노래했고 힙합과 발라드, 아이돌과 트로트가수가 공존하며 백만장 앨범을 내놓던 문화의 황금기였습니다.

영화 <접속>은 '국산방화'를 '한국영화'로 부르는 계기가 됐습니다. 처음으로 문화를 삶의 주요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문화에 돈을 썼던 세대는 장년이 됐고, 이 때 형성된 90년대 문화는 2000년대 문화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토양이 됐습니다.

대체 90년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길래 20년의 세월을 돌아 다시 우리 삶에 들어온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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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 세종문화회관 대공연장에 관객들이 가득 들어찹니다.

뮤지컬 '디셈버'.

고인이 된 가수 김광석의 노래들로 이뤄진 이른바 주크박스 뮤지컬입니다.

관객들은 배경이 된 1992년의 이야기와 노래, 그 시대의 가객 김광석을 추억합니다.

◀INT▶ 박수미

"김광석 씨를 워낙에 좋아하기도 했었고 딸 아이하고 같이 왔거든요. 딸아이하고 같이 제가 그때 딸아이 때의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비교적 어린 관객도 꽤 있습니다.

아이돌 그룹 출신의 주연 배우 탓도 있지만.

◀INT▶ 송주아

"저는 김준수 씨 팬이라 뮤지컬 봤는데, 김광석 씨 노래도 원래 그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김광석의 노래 자체에 이끌려 온 10대도 있습니다.

◀INT▶ 정서림

"맨 처음에 좋아하게 된 노래는 '서른 즈음에'였고요, 제 나이는 그렇게 그런 게 아니지만…. 그 노래가 좋았고, '사랑했지만' 좋아했어요."

연출자는 90년대 문화엔 사람을 끌어당기는 공감의 힘이 있다고 말합니다.

◀INT▶ 장진/뮤지컬 '디셈버' 연출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음악가들이 다시 그의 노래를 어디에선가 들려주기 때문에 그의 음악을 그 시대를 모르는 사람들도 만나서 굉장히 세대가 공유하는 옥타브가 되게 넓은 것 같아요"

세월을 거슬러 김광석은 또다시 우리 문화의 한 축으로 등장했습니다.

김광석의 노래뿐만 아니라, 최근 몇 년 우리 문화 곳곳은 90년대의 추억으로 짙게 물들었습니다.

90년대가 20년을 돌아 우리에게 온 건 무엇 때문일까요?

지난해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했던 드라마.

90년대 소품과 유행을 꼼꼼하게 복원해 내면서 배경이 된 1990년대에 대학시절을 보낸 3,40대는 물론 10대와 20대들도 열광했습니다.

이보다 앞서 90년대의 귀환을 알린 건 재작년 개봉한 한 영화였습니다.

1994년. 20살. 대학 신입생.

그 시절 첫사랑의 풋풋함과 아련함을 담은 영화 '건축학개론'.

제주도 낡은 집을 새로 지으며 서로 첫사랑인 두 사람은 옛 기억 속으로 빠져듭니다.

◀EFFECT▶

"왜 날 찾아온거야.."

"니가 내 첫사랑이니까..."

영화 속 세트였던 여주인공 서연이의 집은 카로 꾸며져, 제주 올레꾼들이 빼놓지 않고 들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INT▶ 황지영

"밖에 보면 발자국 찍혀있는 거 있잖아요. 이 집에 대한 기억들이 되게 많아요. 워낙 집이 예뻐서. 배경도 너무 예뻤거든요."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이른 시간.

40대 주부들이 서울에서 이곳을 찾았습니다.

◀EFFECT▶

"이게 엄태웅이다. 이게 한가인이다. 한가인은 나보다 좀 작네."

커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이은 무엇을 떠올릴까요.

◀INT▶ 류선희

"90년도에 졸업을 하면서 직장생활을 했거든요. 그때가 제가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고, 여기도 가고 싶고 저기도 가고 싶고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때로 돌아가면 좋죠. 돌아가고 싶네요. 가고 싶네요..정말로.."

◀INT▶ 최은희

"CD플레이어를 듣는...워맨 같은 것. 그런 게 기억이 나더라고요. 저런 거 썼었어. 그런 생각이 났고 보면서 동물원 노래 많이 듣고 싶고."

영화 속 주인공들을 이어주던 CD플레이어.

7,80년대에 바늘로 긁어 소리를 내는 아로그 LP가 있었다면, 90년대엔 빛으로 정보를 읽어내는 디지털 CD가 있었습니다.

이전 세대와 90년대 사이에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만큼 뚜한 선이 있었습니다.

◀EFFECT▶

"독재타도! 호헌철폐!"

독재와 군사정권 속의 암울한 시대상.

억눌려있던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가난.

한국전쟁 직후인 5,60년대에 태어나 7,80년대 20대를 보낸, 이른바 7080 세대에게 청춘은 투쟁과 저항이었습니다.

민주와 산업화라는 거대 담론 속에서 문를 누릴 사회 경제적 여유는 없었고, 정부도 대중문화를 엄격히 통제했기 때문에 다양성이 꽃피기도 어려웠습니다.

◀INT▶ 박학기/가수

"80년대 70년대는 음악적 장르가 다양하지는 못했어요. 한국에 토착화되어 왔던 포크면 포크, 통기타 음악. 7080 세대의 음악은 약간 박물관 속에 있는, 유리관 속 안에 있는 것들을 보는 것 같다는..."

◀EFFECT▶ (서태지 난 알아요)

이같은 흐름은 92년 완전히 달라집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기존엔 볼 수 없었던 댄스 음악의 등장에 사회는 문화적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여기에 3당 합당에 의한 군사정권 종식과 소련의 붕괴에 따른 사회주의의 몰락, 경제 호황이 겹치면서 젊은이들의 생활방식은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INT▶ 황진미/문화평론가

"아! 바로 저거다! 저렇게 살아야 한다. 아! 우리가 그동안 너무 억압되어져 살아왔고 개인의 삶을 찾아야 된다. 특히나 서태지 같은 경우는 기존 세대가 설정해 놓은, 좋은 대학을 가야 된다 라든가, 이런 식의 어떤 루트를 거부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거기에 더 큰 호응이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도대체 무슨 세대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엑스'라고 했던, 'X세대', 압구정에서 향락과 소비를 즐기는 이들을 당시 사치품이던 수입과일에 빗댄 '오렌지족'.

모두 이때 등장했습니다.

가요계에선 김건모의 레게, 듀스의 힙합 같은 신흥 장르부터 팝 발라드와 포크, 트로트까지 하나의 시대에 공존했고, 음반이 100만 장 이상 팔리는 밀리언셀러도 심찮게 등장했습니다.

◀SYN▶ 김형섭/가수 '자전거 탄 풍경'

"90년대는 정말 시쳇말로, 누가 해도 공연이 매진됐어요. 정말 우리나라의 르네상스였던 것 같아요. 문화 르네상스."

◀EFFECT▶ 드라마 "질투"

청춘 드라마의 전성시대, '쉬리' 같은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의 등장, HOT를 필두로 한 거대한 아이돌 팬덤의 형성.

2000년대 문화는 90년대 문화 전성시대의 영향력 안에서 조금씩 형태를 달리하며 자났습니다.

◀INT▶ 이문원/문화평론가

"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90년대 문화는 지금하고. 어떤 아이템들, 문화적 아이콘이라든가 이런 것들만 차이가 있을 뿐이지 사실 시대 정서에 있어서 지금하고 큰 차이는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의 90년대 복고는 당시를 누렸던 세대뿐만 아니라 90년대에 태어난 지금의 10대, 20대에까지 전혀 낯설지 않게 다가왔습니다.

◀INT▶ 하재근/문화평론가

"간단하게 얘기해서 7080 주점에는 20대들이 잘 안 갑니다. 주로 그 시절에 추억 향수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이 가시죠. 그런데 90년대 복고 클럽에는 20대들이 가서 줄을 섭니다."

하지만 1997년 IMF와 함께 90년대의 화려함은 사그러들기 시작했습니다.

청춘은 안정된 직장과 먹고사는 문제에 매달렸고, 이런 현실은 반복된 경제 위기 속에 지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추억하는 90년대는 아마도 92년에서 97년까지 그짧은 시간의 풍요일 겁니다.

좁은 골목길 입구에 기타를 든 김광석 동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의 곁에서 사진을 찍는 동안 그 무슨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요.

◀INT▶ 손영복 /김광석동상 작가

"제목이 있어요. '사랑했지만' 제목인데요. 클라이맥스 부분이 있어요. '사랑했지만~' 이렇게 올라가는 그때 어떤 표정을.."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80년대에 태어난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96년 세상을 등진 그를 곳곳에 그렸습니다.

이곳에선 아직도 그 이름만으로도 눈짓는 팬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INT▶ 최원정

"아쉽죠, 아쉬운 생각도 많이 나고. 이제 20대를 같이한 가수인데 없어졌다는 것도 되게 슬프기도 하고..."

김광석 다시 그리기 프로젝트의 원래 목적은 근처에 있는 방천시장을 되살리자는 것.

시장 상인들도, 지역 공무원들도 김광석을 잘 몰랐지만, 시장으로 발길을 이기 위해선 어떤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김광석과 함께 1~20대를 보낸 사람들이 이 사회의 주요 소비계층이 되었다는 것에도 주목했습니다.

◀INT▶ 이창원/'김광석 다시 그리기' 기획

"김광석을 기리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이렇게 많은 것에 대한 구심점들이 아직 없다, 그래서 이 길을 만들어 놓으면 굉장히 많은 관광객들, 특히 어떤 시장을 주로 이용할 수 있는 주 소비계층들이 여기 와서 소비로도 이어지지 않을까라고.."

디셈버를 비롯해 김광석 '주크박스 뮤지컬'만 최근 2년 사이 3편이나 제작된 것도, 90년대 세대의 경제력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이 나옵니다.

71년생으로 90년대에 20대를 보낸 디셈버 연출자 장진 감독은 여기에 자신의 세대가 깨달았던 문화의 가치가 힘을 보태고 있다고 말합니다.

◀INT▶ 장진/뮤지컬 '디셈버' 연출

"산다..라는 건, 계속해서 문화적인 삶 안에 존재해야지 행복하고 좋고 즐겁구나 라는 걸 알기 때문에 (돈을) 쓰는 것 아닐까요. 90년대가 준, 작은 은혜로움이라면 그런 거겠죠."

길게 평행선을 이룬 철길.

경기도 양주시 장흥역은 90년대까지 기차 타고 MT 온 대학생들로 왁자지껄하던 곳입니다.

◀INT▶ 정성수/장흥발전협의회 사무국장

"열차 기다리면서 역 플랫폼에 앉아서 기타 치고 노래도 하고, 막걸리도 한 잔씩 하고 그랬던 게 생각이 많이 납니다."

하지만, 2004년 적자 노선이란 이유로 열차 운행이 중단되면서 모형 기차만 텅빈 역을 지키고 있습니다.

음악 소리를 따라 들어간 '역전 다방'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노래를 하는 장현철 씨가 이 다방의 주인입니다.

서울에 살던 그는 3년 전 이곳으로 왔습니다.

폐쇄된 역 앞이라 하루에 커피 한 두잔 팔기도 힘들지만, 비디오 카메라와 카세트, 이승철, 강수지같은 90년대 가수들의 앨범.

그리고 젊은 날을 생각하며 이따금 찾아오는 손님들이 이곳을 지키게 하는 이유입니다.

◀INT▶ 장현철

"향수를 찾아서 오는 사람들 마음이 어떻겠어요. 다 어린 마음, 옛날의 마음, 그 마음을 가지고 오는 것이죠. 그러니까 너무 순수하시고"

역 근처에 있는 숯가마 찜질방.

몇 해 전까지만 해도 MT온 대학생들이 묵는 민박집으로 유명했던 집입니다.

기차가 끊긴 후 손님도 끊겨 업종을 바꿨지만, 주아저씨 눈엔 대학생들 모습이 선합니다.

◀INT▶ 김기경

"(여학생이) 차가운데 씻잖아? 남자가 와서 도와주는 애는 인기가 있고, 이렇게 서서 폼 잡고 있는 애는 아주 (인기가) 없어. 그때 당시에.."

이곳 주민들은 90년대의 활기와 낭만을 되찾고 싶다며 정부에 기차 운행 재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방학 중인데 대학 캠퍼스가 시끌벅적합니다.

오늘은 새내기 대학생들이 학교에 와서 처음 선배들과 동기들을 만나는 날입니다.

◀EFFECT▶ "새내기 여러분 환영합니다!"

한명 한명 자기소개를 하는 얼굴엔 부끄러움과 어색함이 묻어나지만, 이제 시작될 대학생활의 설렘과 흥분은 감출 수가 없습니다.

지금의 3,40대가 90년대를 추억하듯 1995년 전후에 태어난 이들도 1,20년 뒤엔 지 이 순간을 추억할 겁니다.

◀INT▶ 양정윤/1995년생

"동아리 같은 거 들잖아요. 그런 활동도 열심히 하고 싶고 수업도 듣고 싶고.."

"수업만 듣고 싶어요? 연애는 안 하고 싶어요?"

"아니, 남자친구가 있어서.. 하하하"

그 순간이 오면 이들은 무엇을 떠올릴까요.

◀INT▶ 안혜인/1994년생

"빅뱅이 중학교 시절에 활약을 굉장히 많이 했고, 'Tell me'로 활약했던 원더걸스나 다 따라 부르게 될 것 같아요. 하나도 안 잊어버릴 것 같아요."

요즘 대중문화에 대한 염증이다.

◀INT▶ 이현민

"모든 게 항상 '강, 약, 중강, 약'이 있잖아요. 근데 요즘 노래는 계속 '강, 강, 강'이다보니까 질리는 거죠 점점."

좀 여유로워진 세대가 느끼는 향수이다.

◀INT▶ 최경원

"아이들 커서 이제 학교 가고 학원 가고 늦게 오고, 이러면서 시간이 좀 생기고, 그러다 보니 옛날에 뭐했나? 돌아보고.."

과거를 너무 많이 소비하면 미래를 얻을 수 없다는 우려까지.

◀INT▶ 황진미/문화평론가

"새로운 게 나와줘야 그다음에 완전히 달랐다는 식의 복고도 뭔가가 될 텐데 2020년에 2000년대 복고가 또 온다고 할지라도 90년대 복고랑 뭔 차이가 있어? 라고 하면 차이가 없게 되는 거예요. 새로운 걸 안 만들었으니까..."

90년대를 앓고 있는 2014년.

우리에게 90년대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2014년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돌아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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