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일광욕, '중고 빔 프로젝터'

황주성 2014. 1. 11.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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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혼자의 집에서, 나만의 시간을 채울, 혼자 할 만한 '거리'를 조달하는 일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을 무릅쓰고 빔 프로젝터를 선택했던 것은 '내 시간을, 내가 선택한 내용으로 채우겠다'는, 혼자 사는 삶에 대한 애정이자 자존심이었다.

주말에 뭘 했느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혼자 집에만 있었다고 이야기하면 핀잔받기 일쑤였지만, "나 영화 봤어. 빔 프로젝터로" 한마디에 주변의 반응은 180도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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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혼자의 집에서, 나만의 시간을 채울, 혼자 할 만한 ‘거리’를 조달하는 일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책을 읽거나 생산적인 일을 찾을 거야’라던 독립 초기의 다짐은 피곤함 속에서 조금씩 허물어진 상태였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혼자 쉬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가끔 준비 없이 마주한 혼자인 시간은 의외로 당혹스러웠고 외로움의 제물이 되기도 했다. 지금에야 혼자 살지만, 집에서는 가족과, 밖에서는 친구들과 어울려 살던 삶에 익숙해져 있었으니까 말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채우기 위해 여러 방법을 고민했다. 무언가 집중하는 일보다는 휴식을 위해 보거나 듣는 일을 떠올렸다. 선택 사항이 많지는 않았다.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온종일 종알거리는 텔레비전이었다. 그 속에 등장하는, ‘우리나라가 아니었으면’ 하는 풍경을 볼 때마다 마음속이 답답해졌던 탓에 즐기진 않았지만, 가만히 누워 리모컨 버튼만 누르면 영화나 볼만한 예능 프로그램을 즐기며 쉴 수 있어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도 생각했다. 다만 혼자 사는 삶을 기획하며 TV를 구입하지 않았던 건 그간의 삶이 어긋날까 두려웠던 탓이다. TV는 외로운 시간, 하루 종일이라도 내 곁에 있어줄 수 있었지만 그 친절함에 일상을 지배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그리 달갑진 않았다. 사실, 나를 못 믿기도 했다.

ⓒ황주성 제공 인터넷 중고 장터에서 두어 달 잠복한 끝에 구한 중고 빔 프로젝터.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던 어느 날,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단어가 있었다. ‘빔 프로젝터.’ 사실 빔 프로젝터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이다. TV처럼 자동으로 콘텐츠가 공급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에 보고 싶은 영상을 내려받아 연결해야 했고, 밝은 곳에서는 보기 힘들다는 제약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을 무릅쓰고 빔 프로젝터를 선택했던 것은 ‘내 시간을, 내가 선택한 내용으로 채우겠다’는, 혼자 사는 삶에 대한 애정이자 자존심이었다. 농담이지만 생뚱맞아 보이는 이런 선택을 뒷받침해줬던 것 역시, 아무도 말릴 사람이 없었다는, 바로 혼자라는 점이었다.

중고 빔 프로젝터를 들였다. 인터넷 중고 장터에서 두어 달 잠복한 끝에 생각보다 가격이 저렴한 제품을 구할 수 있었다. “오오오!” 첫 만남부터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낮에는 창문을 꼭꼭 막아서 인공적인 어둠을 만든 뒤에야 시청이 가능했지만, 그것 역시 세상과 분리된 듯한 포근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대형 화면에 뿌려지는 영상의 매력은 상당했다. 한 번 본 영화라도 다시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껴졌다. 덕분에 긴 밤, 미리 내려받아놓은 영화 한 편이면 휴식과 외로움을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

주말에 “영화 봤어, 빔 프로젝터로” 하면 반응이 다르다

주말에 뭘 했느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혼자 집에만 있었다고 이야기하면 핀잔받기 일쑤였지만, “나 영화 봤어. 빔 프로젝터로” 한마디에 주변의 반응은 180도 바뀌었다. 지지리 궁상이던 모습이 그럴싸한 싱글로 포장된 데에는 빔 프로젝터의 도움이 컸다. 얼마 전에는 쾌적한 감상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쪼그려 눕기가 가능한 조그마한 소파도 들였다.

늦은 밤, 어두운 방 안에 앉아 빔 프로젝터에서 쏟아지는 빛을 만나는 일은 즐겁다. 혼자의 시간을 채울 거리를 발견했다는 점이 꽤 뿌듯하다.

때때로 혼자 사는 삶이 암울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얼마든지 창조적인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선택의 문제인 것 같다. 현대인들이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혼자 사는 삶을 탐구하며, 무력감과 외로움에 새로운 길을 찾아주는 것은 어떨까. 혼자이지 않은 이들의 ‘이게 좋겠다’는 상상 어린 제안도 환영한다.

황주성 (독거 칼럼니스트)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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