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제 살릴 묘책 또 부동산인가
ㆍ주택거래 활성화로 체감경기 회복… 3월께 다섯 번째 대책 나올 듯
아직도 부동산 프레임인가. 부동산이 살면 내수가 살고 내수가 살면 우리 경제가 성장한다는 '답답한 공식'이 2014년에도 반복된다. 정부는 이런 식으로 2014년 경제성장률을 3.9%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세계 경제성장률 평균(3.6%)보다 높은 수치다. 높은 경제성장률 기대치의 이면에 부동산 프레임이 깔려 있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27일 발표한 '2014년 경제정책방향'을 놓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너무 장밋빛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당장 원·엔 환율이 새해 벽두부터 100엔당 1000원이 무너졌고, 코스피지수는 새해 첫날 2.2%(44포인트) 폭락하며 힘든 신고식을 했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월 2일 시무식 직후 기자실을 찾아 "올해 경제정책방향은 내수 활력, 체감경기 회복, 경제체질 개선 등 세 가지 과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장에서 효과가 나타나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2014년 경제정책방향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지만, 이런 수준으로 내수에 활력을 주고 체감경기를 살릴 수 있다고 보기에는 부족한 게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가 잡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3.9%다. 이는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은행, LG경제연구원 등 타 기관 전망치보다도 소폭 높다. 만약 이를 달성할 경우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 평균(3.6%)보다 높은데, 한국 경제성장률이 세계 평균보다 높은 것은 2010년 이후 4년 만에 처음이 된다.
올해 성장은 연중 고를 것으로 내다봤다. 특별히 상고하저나 상저하고가 보이지 않고 꾸준히 좋다는 얘기다. 경기회복세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확장적 거시정책을 유지하기로 했다. 미국이 돈줄을 묶는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을 했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겠다는 얘기다.
성장률 3.9% 전망, 세계 평균보다 높아
일자리 창출은 45만명으로 잡았다. 지난해(38만명)보다 7만명이 많고 이명박 정부 마지막 때인 44만명보다 많다. 다른 민·관 연구기관과 비교하면 두드러지게 많이 잡았다. LG경제연구원과 비교하면 무려 11만명이나 많다. 일자리가 대폭 늘어나면 15~64세 고용률은 지난해 64.4%에서 올해 65.2%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경기가 회복되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3%에서 올해 2.3%으로 올라가고 경상수지 흑자폭은 지난해 700억 달러에서 올해 490억 달러로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디플레이션 우려에서도 완전히 벗어난다는 얘기다. 경기가 좋으면 인플레이션이 생겨 물가가 올라가고, 내수용으로 쓰이는 수입도 많아서 경상수지 흑자폭은 대개 축소된다. 목표치만 보면 올해는 별 근심걱정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방법이다.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묘책은 뭘까.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2014년 경제정책방향에서 가장 핵심은 부동산 대책"이라고 말했다. 부동산을 지렛대로 내수 군불을 지핀 뒤 체감경기를 회복하겠다는 말이다. 이르면 3월쯤 부동산 종합대책이 나올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번 대책이 "부동산 부양은 아니다. 부동산 정상화"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용은 다를 게 없다. '주택거래정상화' 방안으로 내놓은 것을 보면 1%대 저리 자금을 빌려주는 공유형 모기지 대출을 현행 3000가구에서 1만5000가구로 대폭 늘리고, 저리로 주택구입자금을 지원하는 통합정책모기지를 1월에 출시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집을 사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줘 집을 사도록 해주겠다는 의미다. 이렇게 풀리는 돈이 11조원이다. 지난해와 같은 사상 최대 규모다. 지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정부는 평균 1조6000억원을 대출해줬지만 지난해부터 대출량을 크게 늘렸다.
청약제도도 손본다. 지금은 무주택자들이 주로 청약을 통해 분양을 받을 수 있지만 앞으로는 다주택자, 주택 교체 수요층(현재 집을 갖고 있으나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어하는 사람), 임대사업자, 법인 등에도 1순위 청약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렇게 되면 집 없는 서민들은 분양받기가 어려워진다. 국토부 관계자는 "돈은 있지만 집을 이미 소유해 추가로 주택시장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들이 집을 사도록 해주자는 것"이라며 "주택시장에 추가자금이 들어와 수요가 생기면 매매가격이 상승하고, 그러면 집 수요가 늘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토부는 법인과 임대사업자에게 1순위 청약을 허용하는 것은 주택을 사들인 뒤 임대사업을 하는 경우로 한정하겠다고 밝혔다. 집투기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를 수용한 조치다. 또 인기지역은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기지역'의 기준이 모호하고 결정권을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줄 계획이어서 벌써부터 실효성 논란이 나온다. 임대사업 법인 역시 수익률을 고려하면 인기지역 분양을 원할 것이 뻔해 지자체장을 상대로 로비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또 재건축과 재개발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전월세 대출을 위한 주택금융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정부는 밝혔다.
한국 가계부채 비중 미국보다 높아
정부가 3월쯤 이런 내용을 담은 종합대책을 내면 박근혜 정부의 다섯 번째 부동산 정책이 된다. 정부는 지난해에도 부동산 대책을 정신없이 쏟아냈다. 4·1대책, 7·24대책, 8·28대책, 12·3대책 등 4건이나 된다. 부동산을 살리기 위해 잇달아 세금감면이 이뤄졌다. 증세를 검토할 정도로 국가재정은 빡빡했지만 부동산만큼은 예외였다.
생애최초 주택구입자에 대한 취득세 면제, 양도세 5년간 면제 등이 이뤄졌다. 취득세는 영구인하됐고,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제도도 폐지됐다. 하지만 전월세가는 계속해서 오르고 주택시장 침체는 계속되는 등 정책이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가계부채만 폭등시키면서 소비심리 위축을 가져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계부채는 2009년 말 776조원에서 2013년 3분기 말에는 991조7000억원으로 늘어났다. 4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에 28%인 215조7000억원이 증가한 것이다. 미국의 테이퍼링으로 금리가 오를 경우 곧바로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블룸버그 통신은 1월 3일 "한국의 가계부채는 전체 가처분소득의 150%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의 가계부채 비중 130%보다 높다"며 "1997년 아시아 위기 이후 한국의 가계부채는 연평균 13% 증가했는데 이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의 2배"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정부가 올해 경제성장률과 일자리 창출 숫자를 '낙관적'으로 잡은 이면에는 정권 2년차라는 정치적 배경이 깔려 있다. 정부로서는 본격적으로 경제성장이 필요한 데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제성장 기대심리를 심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3%로 떨어뜨려 논란이 됐다. 2.3%는 당시 민·관 연구기관 통틀어 최저치였다. 그보다 석달 전인 2012년 12월 이명박 정부 때는 2013년 경제성장률 전망을 3.0%으로 봤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부동산이 내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보면 지금처럼 침체가 계속돼서는 경기를 살리기 어렵다"며 "전 세계나 우리 경제상황 등을 고려해볼 때 올해 경제성장 전망치를 특별히 과다하게 잡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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