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지상주의 사회의 그늘..소설 '어떤 소송'

2014. 1. 3.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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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서적상 수상작가 율리 체 작품

독일 서적상 수상작가 율리 체 작품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이제는 먼 이야기가 됐지만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흡연자들은 거칠 게 없었다.

실내에서의 흡연은 물론이고 고속버스나 기차에서도 마음껏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 오죽했으면 고속버스 좌석 등받이에 조그마한 재떨이가 달렸겠는가.

그러나 오늘날에는 강력한 금연정책으로 흡연자들이 설 땅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실내는 물론이고 버스 정류장, 심지어 대로에서도 자유롭게 담배를 피우기는 불가능해졌다.

정부에서는 국민 건강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주장하지만, 개인의 사적인 영역에 국가가 너무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기업들까지 가세했다. 전 사업장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고 흡연자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국민 건강을 위해서라면, 그게 절대적인 선(善)이므로 처벌과 규제를 남용해도 될까? 과연 그런 사회가 행복할까? 신간 '어떤 소송'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독일 서적상(2002), 토마스 만 상(2013) 수상 작가인 율리 체(Juli Zeh)가 쓴 이 책은 21세기 중엽의 건강 지상주의 사회를 배경으로 남동생의 비극적인 죽음에 얽힌 진실을 찾아 거대한 체제와 맞선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주인공인 생물학 전공자 미아 홀이 사는 체제는 인간의 건강과 안전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회다. 모든 질병이 퇴치된 사회, 위생과 청결이 지배하는 사회, 사람들이 매일 규정대로 운동하고 매달 건강을 진단받는 사회다.

언뜻 보기엔 유토피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유토피아의 반대말인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세상이다. 이 체제에서는 담배 피우는 것은 물론 온갖 불결한 세균들이 있을지 모를 강에서 맨발로 물장구치는 것도 금지한다.

캡슐이나 튜브에 든 음식이 아닌, 직접 잡은 물고기나 직접 뜯은 풀 먹는 것을 금지한다. 심지어 서로 면역 체계가 다른 사람들끼리 사랑하고 결혼하는 것도 금지한다.

"사랑이란 특정 면역 체계들이 서로 잘 맞는다는 말과 동의어일 뿐이라는 점을 누구나 안다. 다른 모든 결합은 질병이다. 로젠트레터의 사랑은 사회를 위험에 빠뜨리는 바이러스다. 그는 진짜 외로움이 뭔지 배울 수밖에 없었다. 진짜 외로움이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떨어져 지낸다는 게 아니라 채워질 수 없는 그리움을 꼭꼭 숨겨야만 한다는 것이다."(119쪽)

'어떤 소송'은 미아가 체제에 맞서 벌이는 법정 투쟁을 그린다. 대부분 사람처럼 법과 국가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따르던 미아는 반항적이며 자유를 사랑하던 남동생 모리츠의 자살 뒤에 숨은 진실을 통해 체제의 모순을 깨닫고 새로이 태어난다.

소송 과정에서 그녀는 체제의 신봉자인 언론인 크라머와 개인과 자유, 국가와 건강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한다. 진정 인간적인 것, 진정 인간을 위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통해 작가는 진실과 개인 자유보다 권력과 체제 유지를 중시하는 독단적 국가 체제를 비판한다.

번역가와 통역가로 활동 중인 장수미 씨가 우리말로 옮겼다. 민음사가 펴내는 '모던 클래식' 시리즈 65번째 책이다.

민음사. 268쪽. 1만3천원.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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