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하고 잔인하다.. 때묻지 않은 이 쓸쓸한 풍경

교동도 2014. 1. 2. 04: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섬마을에 겨울바람이 불어왔다. 갯벌에 모여 있던 새들은 뺨을 깃털에 박고 움츠러들었다. 해안도로 옆 갈대밭은 미친 듯이 바람에 맞춰 춤을 췄다. 고깃배들은 포구에 닻을 내리고 잠시 출어를 멈췄다. 주민들은 보이지 않고, 가끔 원색 나들이옷을 입은 외지인들이 출몰했다.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별반 달라진 풍경은 없다. 교동도는 그랬다. 지난해 8월 3㎞ 북쪽 황해도 연백 땅 주민이 헤엄쳐서 넘어와 민가 문을 두드렸을 정도로 북한과 가까운 섬. 그래서 긴 세월 동안 교동도는 바깥세상과 절연해 살아왔다. 다음 달이면 그 바깥세상을 잇는 연륙교가 임시 개통되는, 그래서 역사상 최초로 뭍과 하나가 되는 섬마을 교동도 여행.

교동도는 인천 강화도 창후리선착장에서 배로 15분이면 닿는 섬이다. 한국에서 열네 번째로 큰 섬이지만 교동도는 민통선 안쪽 지역이라 최근까지도 출입이 어려운 지역이었다. 개발도 더뎠고, 바깥바람도 덜 탔다. 그런 열악한 조건이 지금은 도시 사람들에게 교동도를 찾게 하는 매력이 되었으니 세상사는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교동도는 역사 속에 여러 번 등장한다. 광개토대왕이 백제를 공격했을 때 7개 방향에서 공격해 함락시킨 관미성이 교동도 화개산성이라는 주장이 하나다. 파주라는 주장도 있지만 섬 주민들은 믿지 않는다. 또 고려시대 유학자 안향이 원나라에서 가져온 공자상을 모신 교동향교가 있다.

제일 유명한 인물은 연산군이다. 온갖 악행과 패륜을 다 실천에 옮긴 용감하고 젊은 부도덕자 연산군은 서른한 살에 중종반정으로 쫓겨나 이곳 교동도로 유배를 당했다가 두 달 만에 죽었다. 그리 자랑할 위인이 못 되는 인물인지라 그 유배지 또한 섬 안에 세 군데나 될 정도로 설이 분분하다. 그중 한 군데가 읍내리에 있는 '연산군 잠저지(潛邸地)'다. 교동도 여행은 대개 이곳에서 시작한다.

선착장에서 좌회전해 외길을 10여분 달리면 오른편으로 교동향교 이정표가 나온다. 앞서 말한 이 땅 최초의 향교다. 향교 관리사무소에 부탁하면 문을 열어주고 안내를 해준다. 향교 왼편 공터에 있는 약수로 목을 축이고 다시 나와 큰길에서 200m만 더 가면 왼편으로 교동읍성 이정표가 나온다.

읍성은 사라지고 성문 잔해가 마을 한복판에 서 있다. 규모가 지극히 작아서, 그리고 남은 잔해 앞뒤로 주택들이 조밀하게 붙어 있어서 풍경은 애잔하다. 성문 앞에는 '강화나들길'이라는 작은 표지가 서 있다. 성문 안으로 들어가 오른쪽 골목으로 가면 풍경은 더 애잔해진다. 시멘트로 포장한 어느 집 앞마당 한쪽에 화강암 석물들이 장식석으로 서 있다. 한때 성곽으로 쓰였음이 분명한 돌들이다. 그 집 오른편 텃밭 뒤로 큼직한 돌기둥 두 개가 서 있다. 그게 관아 터다. 연산군 잠저지는 그 옆집 밭이다.

한때 만인지상이었던 사내가 바다를 바라보는 이 낮은 언덕 위 집에 갇혀 두 달을 살다 병사했다. 백성은 물론 나라에서도 그 터를 돌보지 않아 지금은 이렇게 밭으로 변해버렸고, 2009년에야 겨우 비석 하나 생겨나 호기심 많은 사람을 부른다. 그나마 '잠저(潛邸)'는 '임금이 왕실에 들기 전 살던 곳'이라는 뜻이니 비석 내용 또한 무식하다. 여행객들은 읍내리에서 역사를 읽고 허망함을 읽는다.

그리고 해안길로 간다. 바닷바람은 매섭다. 햇살이 부서뜨리는 은빛 파도는 아름답다.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 날아가는 새들은 더 아름답다. 광포하게 춤추는 갈대밭도 아름답다. 낭만을 바라보다가 대륭시장으로 간다.

대륭시장. 황해도 연백에서 장날 장 보러 나왔다가 돌아가지 못한 실향민들이 사는 장터다. 이발소, 정육점, 구멍가게, 비좁은 골목…. 모든 사물이 과거 시간대에 멎어 있다. 200m 정도 되는 이 골목이 주말이면 주민보다 더 많은 외지인으로 시끌벅적하다.

장터에서 시간을 보내다 북쪽으로 가본다. 사방팔방 직선으로 뚫린 시멘트 농로를 헤매다 해안에 닿으면 자세히 보시라. 철책이다. 북한과 거리가 10리도 되지 않는다. 늙은 연백 출신 사람들이 와서 한참 바다 건너편을 바라보다 등을 돌리는 곳이다. 철책을 손으로 만지며 산책할 수도 있으니 연륙교가 완성되고 꽃피는 봄이 오면 수많은 관광객이 때때옷 입고 와서 기념사진도 찍는 '기이한' 관광지가 되지 않을까. 그래서 교동도 여행은 정체불명이다. 권력의 허망함과 과거에 대한 향수와 분단이라는 잔인한 현실이 이 섬마을에 범벅되어서 겨울바람에 날아다닌다.

☞ 가는 길 강화도 창후리선착장에서 수시로 페리호가 뜬다. 차량 1만6000원, 1인당 2300원. 연륙교 다리 공사로 뱃길에 모래가 쌓이면서 출항 시간이 불규칙하니 사전확인 필수. 화개해운 (032)933-4268, 교동면사무소 (032)930-4310. 서울 강북 쪽에서 가려면 자유로에서 일산대교(유료)→김포→초지대교→창후리 코스 추천.

강화나들길 강화군에서 조성한 산책로. 이 가운데 교동도 구간은 9구간이다. 선착장에서 해안을 따라 읍내리를 거쳐 교동향교, 화개산, 대륭시장을 도는 13㎞ 코스.

먹을 곳 대륭시장에 한식, 중식당 등이 몰려 있다. 걷기 위해서 간다면 도시락과 물을 준비할 것.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