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목민관의 참뜻을 기리며

조현철 2013. 12. 31.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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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뉴시스】12월 초 청렴사적지 탐방이라는 타이틀로 회사 동료들과 함께 전라도 장성을 향해 출발하였다. 첫날은 금요일 늦은 시간 출발로 여행의 설레임을 간직하며 잠이 들었고. 다음날 본격적인 필암서원, 아곡 박수량 백비, 홍길동테마파크 관람 등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울산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눈이 내려 한적한 시골 풍경을 더욱 신비롭고 평온하게 만들었다.

처음 방문한 필암서원은 선조 23년(1590)에 하서 김인후(1510∼1560)를 추모하기 위해서 황룡강변 산리에 세워진 서원으로, 1597년 정유재란으로 불타 없어졌으나 인조 24년(1624)에 다시 지었고 효종 10년(1659)에 '필암서원'이라고 쓴 현판을 직접 내려보내 1672년에 지금의 자리(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 377)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서원을 나와 한적한 시골길을 한참을 달려 차를 세운 뒤 나무로 만들어진 계단을 올라 나지막한 산중턱에 도착하였다. 둘레석도 상석도 없는 무덤 하나와 그 앞에 놓여진 비석이 눈에 들어왔다. 추운 날씨와 짧은 산행(?)으로 인하여 거칠어진 숨을 고르는 사이에 동행했던 해설사 선생님이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우리의 시선을 어떤 글자도 새겨져 있지 않은 비석으로 집중시키며 백비에 관한 내용을 소개했다."조선 중기 때의 문신 박수량(1491~1554) 선생의 비석엔 아무런 글자도 없다. 전남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에 있는 그의 묘 앞 비석은 그래서 '백비'(白碑)라고 불린다. 형조판서, 한성판윤, 우참찬, 중추부사 등 38년 동안 조정의 고위 관직을 두루 거쳤던 그는 서울에서 변변한 집 한 칸 갖지 못했을 만큼 청렴했다. 암행어사 탐문에서도 시골집에서도 끼니 때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는다는 보고가 올라왔을 정도였다. 박수량 선생은 64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나면서 묘를 크게 하지 말고 비도 세우지 말라고 유언했다. 하지만 명종이 청백리의 죽음을 슬퍼해 서해 바다에서 빗돌을 골라 하사했다. 청백했던 삶을 비문으로 쓰면 오히려 그의 청렴을 잘못 알려 누를 끼칠 수 있다며 백비를 세웠다"고 한다.

450여년 전 선배 공무원의 청렴한 삶에 대하여 들으며 그의 묘 앞에 서있는 나는 앞으로 공직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며 잠시 묵념을 올렸다.

박수량 선생은 수차례 높은 관직에 임용됐었고 현재의 서울시장에 해당되는 자리에도 3차례 올랐던 인정받는 공직자였다. 그럼에도 장성에 있는 본가는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했다고 한다. 재력을 가질 수 있는 충분한 권력이 있는데도 재력을 탐하지 않고 검소하게 사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일텐데 그 때문에 후대에까지 칭송을 받는 게 아닐까 싶다. 높은 권력과 욕심 앞에 흔들림 없이 깨끗한 삶을 살다 간 그 분을 내가 닮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공무원 윤리 헌장에 "우리는 영광스러운 대한민국의 공무원이다. 이 생명은 오직 나라를 위하여 있고 이 몸은 영원히 겨레를 위해 봉사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국가유공자와 그 유가족을 위해 일하는 보훈공직자로서 단순한 직업관을 떠나 그 분들을 존경하고 예우해야 할 임무를 추진함에 있어 투철한 봉사정신을 실천하고 성직자적 자세로 임해야겠다. 공무원으로 첫발을 내딛었던 그날부터 오늘의 나 자신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청렴한 공직생활을 위한 결의를 다졌다.

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지킨 청렴의 절개, 그리고 역사에 기록된 이름 조선의 청백리.

박수량의 백비를 보면서 이름조차 없는 묘비에 아로새겨진 목민관의 참뜻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김건희 울산보훈지청 선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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