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욱의 어른아이 문화탐구, '세결여' 이 시대를 살아가는 당신 행복하십니까?

최재욱 2013. 12. 18.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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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드라마 홍수 속에서 김수현 작가가 그려나가는 드라마의 품격 "명불허전이네!"

막장 드라마가 넘쳐나는 현재 우리 안방극장에서 메시지와 재미를 모두 갖춘 드라마를 찾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대중이 예전과 달리 드라마를 보면서 깊은 감동을 받거나 우리 사회에 대해 고민하기보다 1차적 쾌감을 바탕으로 한 재미를 추구하는 작품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 탓에 드라마가 중량감은 가벼워지면서 수위는 세지고 있고 즉각적인 만족도는 높아졌지만 기억에 오래 남을 명작들은 줄어간다.

이런 우리 방송 현실에서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현실감 넘치는 메시지와 드라마적 재미를 담보하는 김수현 작가는 보석 같은 존재다. 현재 방송 중인 SBS 주말특별기획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시청률은 기대에 못 미치는 10%대 초반을 오가지만 '드라마의 품격'이 뭔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김수현 작가의 팬이 아니라면 전작보다 어두운 분위기 때문에 다소 부담스러운 부분이 분명히 있다. 나도 사실 '세 번' 결혼한 여자라는 제목에서 오는 뉘앙스 때문에 방송 첫 주는 본방 사수를 포기했었다. 사연 많은 여자가 전해줄 구슬픈 이야기가 왠지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방송을 통해 드라마를 접하면서 철저한 오해였음을 깨닫게 됐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하는 김작가의 명불허전 필력과 열려 있는 세련된 사고와 젊은 감각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됐다.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두 여주인공 은수(이지아)와 현수(엄지원) 자매를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스토리라인은 멜로부터 로맨틱 코미디, 불륜극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면서 전연령대 시청자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내가 특히 눈여겨보는 건 김작가가 두 자매를 통해 젊은 세대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주변 상황보다 자기 감정에만 충실해 비극을 키워가는 은수와 '시크'와 '쿨'이란 가면을 쓰고 자기 감정을 표출할 줄 모르는 현수의 모습은 흔하지는 않지만 우리 주위에서 충분히 찾아볼 수 있는 인물들이다. 상반된 두 모습은 감정 소통에 서투른 현재 젊은 세대들의 앙면성을 상징한다.

은수는 사실 한국 드라마에서 처음 보는 혁신적인 캐릭터다. 재혼을 하면서 딸 슬기를 친정에 맡긴 은수는 시집 눈치 보느라 아이를 챙기지도 못하면서도 아빠 집에서 살겠다는 딸을 막는다. 엄마의 무관심에 지쳐 있는 초등학생 1학년생 슬기가 "행복하냐"고 묻자 거침없이 "슬기가 나 싫어하는 거 빼고 어른들도 잘해줘 행복하다"고 말할 정도로 이기적이다. 나도 모르게 "저런 나쁜 X?"이라는 아유가 튀어나오는 순간이었다.

은수는 엄마보다 여자로서의 삶을 더욱 추구한다. 김작가는 재혼가정이 갈수록 늘어가는 현실에서 은수를 통해 '엄마보다 여자로서 행복을 추구하는 게 꼭 욕먹을 짓인가'라는 질문을 시청자들에게 던진다.

은수의 언니 현수와 안광모(조한선) 커플은 드라마의 밝음을 담당한다. 그러나 이들의 감정 사(史)도 만만치 않다. 15년 동안 광모를 짝사랑했지만 말 한번 못 꺼내본 현수. 광모는 이를 눈치챘으면서도 현수와의 친구관계에서 오는 편안함이 좋아 모른 척한다. 다른 여자들과 결혼을 하려 하지만 매번 결정적인 순간에 도망친다. 그 이유는 당연히 현수다. 세상만사 다 통달한 듯 시크한 얼굴 뒤로 진실된 감정 앞에서는 겁쟁이가 되는 젊은 세대들의 모습을 코믹하게 그려내는 김작가의 공력에 탄성이 절로 나오게 된다.

드라마의 중반에도 다다르고 있는 현재 두 자매의 인생역정은 더욱 드라마틱하게 진행될 전망이다. 두 번째 결혼도 위기에 더욱 치닫는 은수의 비극이 깊어지면서 '세 번' 결혼하게 되는 과정이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시청자들 모두 알고 있지만 본인들만 자신들의 감정을 제대로 모르는 현수와 광모가 언제야 속마음을 터놓을지도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김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젊은 세대들에게 말하고 싶은 진정한 행복의 의미는 뭘까? 마음을 비우고 자신의 감정에 좀더 솔직하자는 게 아닐까. 자신만의 행복이란 명제에 강박증을 지닌 은수의 모습은 자신의 감정이라기보다 욕심일 뿐이다. 현수는 솔직하지 못해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고 있다. 인생이라는 큰 항해에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고 공감할 만한 단면들이다. 어른의 입장에서 이들을 응원하면서 현실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복수를 위해 점 하나 찍으면 부모도 못 알아보고 삼천배를 올리면 동성애자가 이성애자로 바뀌는 게 요즘 드라마 속 세상이다. '어른의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이 있다. 김작가가 젊은 세대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누굴 가르치겠다는 의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보다 문제를 제기하며 함께 고민하자고 권유하는 것으로 읽혀진다. 잔소리로만 치부할 수 없다. 노(老)작가가 젊은 세대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조언. 주의 깊게 한번 들어보자.

글. 최재욱 대중문화평론가 fatdeer69@gmail.com사진제공.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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