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야기] 종각에서 홍릉수목원 가는 길

2013. 12. 1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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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주성 시티스토리 편집장 runman@penmedia.co.kr

모처럼 시간 내어 서울여행을 할 때, 그냥 한 곳만 다녀오기 아쉬울 때가 많다. 그곳에서 볼거리가 많다면 모를까 오가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이왕 하는 도보여행이 운동도 되면 좋을 것이다. 주말 오전 서너 시간 걸어서 할 수 있는 서울여행 코스를 소개한다. 서울도보여행 코스는 매번 종로1가 종각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편집자]

종각에서 출발하는 서울여행의 이점 중의 하나는 서울의 다양한 볼거리를 하나의 선으로 연결하여 이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종각에서 출발하여 서울 한양도성 안에 있는 역사적인 절과 유적을 둘러보고 도성 밖을 빠져나가 홍릉 수목원으로 가는 코스입니다.

◆ 종각~대각사

종각에서 종로를 따라 동쪽 방향으로 가다 처음 만나는 사거리인 종로2가 사거리에서 탑골공원 방향으로 길을 두 번 건넙니다. 탑골공원 자리는 수많은 역사를 안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고려 때부터 있었던 흥복사는 절이 있었습니다. 조선 세조 임금이 1464년 크게 중건하고 원각사(圓覺寺)라고 불렀습니다. 이때 지금 국보 2호로 지정된 원각사 10층 석탑도 세웠습니다.

원각사는 연산군 10년인 1504년에 문을 닫게 되고 이후 관청으로 쓰이다가 이곳의 목재를 뜯어 다른 건물에 사용하면서 절터와 원각사탑만 남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한참 흘러 조선말인 1895년 영국인 브라운의 건의로 황실공원으로 조성되어 탑골공원, 파고다공원으로 불리다 1991년부터 탑골공원이라는 공식명칭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919년 일제식민 통치에 저항하는 범국민운동이었던 3.1 독립만세운동의 중심 현장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탑골공원 동쪽에 난 수표로가 지금의 안국역 근처의 북촌과 남산 밑 중부경찰서 자리에 있던 영희전을 잇는 남북 중심도로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 길 중간에 청계천을 건너는 수표교가 있었습니다.

탑골공원 담장을 끼고 낙원상가 방향으로 길을 잡습니다. 탑골공원에 오는 노인들을 상대로 하는 상점들이 내건 가격이 정말 놀랄 정도입니다. 가격파괴 정도가 아니라 이 정도로 받아도 가게가 운영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될 정도입니다.

낙원상가를 만나 오른쪽 종로3가역 방향은 종묘방향입니다. 길 북쪽은 익선동입니다. 익선동은 기와지붕의 옛 집들이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옛 골목길 풍경을 보기 위해 익선동 골목길을 둘러보고 나오는 것도 좋습니다.

종묘방향으로 가다 만나는 사거리는 묘동사거리입니다. 묘동사거리에서 남북으로 난 길은 창덕궁 돈화문에서 필동까지 이어지는 돈화문로입니다. 묘동사거리에서 종묘방향으로 가다가 왼쪽 '다이아몬드귀금속센터' 가 있는 골목길로 들어갑니다. 이 길 중간에 대각사가 있습니다.

대각사는 3.1독립선언에 참여한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명인 용성스님이 1911년 창건한 절입니다. 용성스님은 민족자주의식을 고취하는데 힘썼고, 특히 승려가 결혼하고 고기를 먹는 일본식 불교로 변질되는 것에 저항하여 한국의 전통불교를 수호하는데 큰 기여를 한 스님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의 대각사는 1986년에 신축된 것입니다.

◆ 대각사~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

대각사를 나와 골목길을 통해 종묘 쪽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종묘 서쪽길은 서순라길이라 부릅니다. 이 길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종묘담장까지 무허가 집들로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서순라길은 1990년대 중반 무허가 시설물을 철거하고 다시 길을 낸 것입니다. 지형을 자세히 보면 종묘 담장을 떠받치는 언덕이 절개되어 길이 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서순라길을 따라 종묘 정문을 지나 종묘의 동쪽인 동순라길을 따라갑니다. 동순라길 또한 예전의 언덕이었다는 것은 종묘 담장이 높은 축대 위에 있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동순라길이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큰 길(김상옥로)과 만나는 일대가 배오개 또는 배고개, 한자로는 이현(梨峴)이라고 불렸던 곳입니다. 김상옥로를 따라 계속 가면 한국기독교연합회관 지나 연동교회를 만나게 됩니다.

연동교회는 1894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지금의 혜화동 동숭동 일대에 많이 살던 갖바치 등 천민 계급의 사람들이 많이 다녔다고 합니다. 양반을 제치고 천민이 장로에 선출되기도 하여, 양반 신자들이 1910년 따로 묘동교회를 세워 분리했다고 합니다.

연동교회 앞에서 길을 건너 이화사거리 방향으로 간 다음 대학로 방향으로 길을 또 건너갑니다. 100여미터 가면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초등학교가 나옵니다. 이 학교의 정문 기둥 4개에 얽힌 사연이 정문 왼쪽에 적혀 있습니다. 3.1 독립선언의 현장 파고다공원(탑공공원)에 있던 기둥을 옮겨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정문 기둥으로 사용했습니다. 이후 서울대학교가 1975년 관악캠퍼스로 이전하고, 을지로5가에 있던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가 법과대학 건물로 이사 오면서 초등학교 정문 기둥이 된 것입니다.

◆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이화마을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 옆에 방송통신대학교가 있습니다. 방통대 안에는 1909년에 완공되어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근대 목조건물인 옛 공업전습소 본관 건물이 있습니다. 사실 이 건물은 일제시대 중앙시험소로 사용되었습니다. 공업전습소를 중앙시험소로 사용하면서 같은 설계도면으로 새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고풍스런 서양 건축양식(르네상스식)과 마치 생선비늘이 덮여 있는 듯 나뭇조각을 포개어 놓은 외벽이 눈길을 끕니다.

공업전습소 건물을 보고 방통대 북쪽 담장길을 따라 낙산 방향으로 걸어갑니다. 방통대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건물은 1931년 완공되어 경성제국대학 본부건물, 서울대학교 동숭동 시절 본관, 문화예술위원회 본관 등으로 사용되다 2010년부터 예술가의 집으로 사용되고 있는 사적278호로 지정된 건물입니다.

예술가의 집과 방통대 사잇길을 따라가면 쇳대박물관이 나옵니다. 쇳대는 자물쇠의 사투리로 쇳대박물관은 철물점을 4대째 이어오는 최홍규 관장이 승효상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뢰하여 2003년에 지은 것입니다. 보기 드문 세계의 각종 자물쇠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쇳대박물관을 지나 이화장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이화장은 이승만대통령이 해방 후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까지, 4.19혁명으로 대통령에서 하야 후 망명 전까지 머물던 집입니다. 이화장은 내부공사로 인해 2014년 말까지 개방되지 않습니다.

이화장 앞에서 낙산쪽 방향으로 가파른 골목길로 올라갑니다. 몇 년 전부터 벽화마을로 알려져 젊은이들이 사진 찍으러 자주 찾는 이화마을 골목입니다. 벽화는 얼마 전 새 단장을 했는지 못 보던 그림들이 꽤 있었습니다. 계단에 물고기를 그려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계단 끝에 있는 '508수퍼'라는 작은 가게 앞에는 쉼터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성곽탐방이나 이화마을 여행을 하는 이들에게 숲 속 옹달샘 같은 곳입니다.

◆ 이화마을~보문사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성곽의 암문을 통해 성 밖으로 나갑니다. 길을 따라 왼쪽 방향인 낙산공원 정상 버스 종점까지 가서 오른쪽 길을 따라 쌍용아파트 방향으로 갑니다. 쌍용아파트 정문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언덕 아래를 보면 초가집이 보입니다. 지봉 이수광이 살았던 '비우당(庇雨堂)' 입니다. 비를 피할 만한 집(이면 족하다)이라는 뜻으로, 검소한 선비의 모습을 보여주는 집입니다. 이수광은 광해군 때 관직에서 물러나 이곳에 머물며 자신의 견문과 지식을 담은 '지봉유설'을 썼다고 합니다.

비우당 뜰 안에는 자주동샘이라는 우물이 있습니다. 단종의 부인이었던 정순왕후와 얽힌 이야기가 있는 우물입니다.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고 난 후 정순왕후는 이 동네에 거처하며 염색일로 먹고 살았는데, 이 우물에 천을 담그기만 하면 자줏빛으로 염색이 되어 자주동샘, 자지동천(紫芝洞泉)이라고 불렸다 합니다.

비우당에서 다시 찻길로 나온 다음 계속 언덕 아래쪽으로 가면 작은 사거리가 나옵니다. 길건너 건물에 숭신교회가 있는 왼쪽길로 내려가면 비구니절인 보문사가 있습니다. 보문사는 고려 예종 때인 1115년에 창건되었고, 세계에서 유일한 비구니 종단인 보문종의 본산 입니다.

◆ 보문사~고려대학교

보문사 앞에는 동망봉터널이 있습니다. 동망봉은 정순왕후가 영월로 유배간 단종을 그리워하며 동쪽을 바라보았던 언덕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보문사를 나와 찻길을 따라 고려대 방향으로 갑니다. 사거리를 지나면 북악산에서 발원해 성북동, 삼선교를 지나 청계천으로 흘러가는 성북천, 옛 이름 안암천을 건너게 됩니다.

길을 따라 언덕을 넘으면 고려대병원이 나옵니다. 병원 건너편에는 고려대학교 이공대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병원을 지나 언덕을 내려와 사거리에서 왼쪽길로 올라갑니다. 100여미터 가면 조계사의 말사인 개운사가 있습니다. 개운사는 조선 건국초 무학대사가 창건한 절로 알려져 있습니다. 불교계에서 개혁성향이 강한 중앙승가대학이 2001년 김포로 이사가기 전까지 이곳에 있었습니다.

개운사에서 나와 오던 길을 되돌아가다가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후문으로 가는 길을 찾아 고려대 교정으로 들어갑니다. 대학교정이 주는 추억과 포근함, 생동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고려대 본관과 중앙도서관 구관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본관은 1934년 완공된 것으로 조선인 건축가 박동진이 설계를 하였습니다. 조선인이 설계하고 건축한 최초의 건물입니다. 고딕풍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내는 본관 건물은 고려대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가 미국의 듀크대학 본관 건물을 본 떠 짓게끔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 고려대학교~홍릉수목원

고려대 정문을 나와 길을 건너 골목길로 접어듭니다. 80년대 암울했던 시절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에게는 추억의 골목길입니다. 하지만 막걸리를 마시며 시국을 논하고, 젖가락 두드리며 노래 불렀던 추억의 집들은 이제 찾을 수 없습니다. 골목길을 헤치고 나오면 내부순환도로가 위로 지나가고 밑으로 정릉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다리를 건너 계속 직진하면 '홍능갈비' 본점이 있는 영휘원 사거리를 만납니다.

사거리에서 길을 건너 왼쪽으로 가면 고종의 후궁이었던 순헌황귀비 엄씨의 능인 영휘원이 있습니다. 엄씨의 위패는 청와대 안에 있는 칠궁에 모셔져 있습니다. 영휘원 경내에는 숭인원이라는 무덤도 있는데, 고종의 넷째 아들이자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인 의민황태자의 장남 이진의 무덤입니다. 의민황태자의 어머니가 영휘원의 주인인 순헌황귀비 엄씨 입니다.

영휘원 옆에 있는 세종대왕 기념관의 위치는 세종대왕과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곳입니다. 세종대왕기념관을 지나면 오늘의 도착지인 홍릉수목원이 나옵니다. 홍릉수목원은 주말에만 일반 시민에게 개방됩니다.

홍릉수목원과 이 일대 영휘원까지 원래 명성황후의 무덤이었던 홍릉 묘역이었습니다. 1895년 일본 자객들에 의해 암살된 명성황후는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되고 나서야 이곳에 정식 묘를 쓸 수 있었습니다. 이후 1919년 고종이 승하한 후 지금의 남양주시 금곡동에 묘를 쓰면서 이장하여 합장 되었습니다. 홍릉은 이전하였지만, 사람들은 이후에도 계속 이곳을 홍릉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홍릉수목원은 홍릉을 옮기고 난 후 1920년 식물표본지구로서 임업시험장이 들어섰습니다. 우리나라와 세계각지에 구한 초목본 식물 2,000여종 20여만 개체가 있습니다. 홍릉수목원 안에는 산림과학관이 있어 나무와 임업, 목재에 대해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 종각에서 홍릉수목원까지 여행길을 뒤돌아보며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였던 탑골공원(원각사지)과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가 돌기둥으로 서로 연결되어 마치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듯한 즐거움을 이 코스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탑골공원, 대각사,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 옛 공업전습소 본관 건물, 고려대, 홍릉수목원의 역사에도 우리 근대문화 거의 모든 곳에 영향을 미친 일제 식민시대의 아픔과 저항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약 3시간 정도 걸리는 종각~홍릉수목원 여행길은 편안한 마음으로 주말을 보내기 좋은 코스입니다. 도착지인 홍릉수목원 주변 식당에서 홍능갈비를 맛보는 즐거움 또한 이 코스의 매력입니다.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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