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출에 발목 잡힌 매매 활성화
대구 대곡동 전용 60㎡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 이모(37)씨는 최근 집주인의 권유로 현재 거주하는 집을 사려다가 마음을 접었다. 현재 이 아파트의 매매가는 1억6,000만원인 반면 전세보증금이 1억4,000만원이어서 표면적으로는 2,000만원만 대출을 받으면 구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씨는 이미 치솟는 전세금 탓에 6,000만원 정도의 전세대출을 받은 상태다. 집을 사기 위해서는 총 8,000만원의 대출을 받게 되는 셈이지만 자신의 소득을 감안하면 부담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이씨는 "기존 전세대출이 많아 또 대출을 받아 집을 사기에는 부담이 크다"며 "또 전세대출금을 갚은 후에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해 집 사는 것은 포기했다"고 말했다.
시중에 풀려 있는 과도한 전세자금대출이 매매거래 회복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세에서 매매로 전환되는 기준으로 예상했던 매매전세 비율 60%를 넘어선 지 오래지만 이미 전세보증금에 끼어 있는 과도한 레버리지 탓에 세입자들이 쉽게 매매로 돌아서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세입자의 경우 전세자금대출이 가계부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추가로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것이 부담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세가율 상승은 전세자금대출 확대도 한몫=12일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전국 아파트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은 66.4%로 지난 2002년 10월(66.2%) 이후 최고 수준이다. 특히 집값이 비싼 수도권도 지난달 62.1%를 기록해 전세가율로만 보면 집값 급등기였던 2000년대 초반 수준을 웃돈다.
그럼에도 기대했던 전세에서 매매로의 전환은 활기를 띠지 못하고 있다. 시장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정부가 서민주거 안정을 목표로 확대한 전세자금대출에서 찾고 있다.
과거 전세보증금은 대부분 순수하게 자기자본인 경우가 많았다. 전세보증금이 한편으로는 저축의 수단이 되면서 내집 마련의 종잣돈 기능을 했던 것. 하지만 전세자금대출이 쉬워지면서 전세보증금 중 자기자본 비중이 줄어들어 이 같은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6월 말 현재 금융권 전세자금대출은 60조1,000억원으로 2009년 말(33조5,000억원)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전세가율은 53.9%에서 63.7%로 10%포인트가량 늘었다. 단순하게 보면 높아진 전세가율의 절반이 대출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결국 대출을 제외한 세입자의 순수 자기자본을 기준으로 보면 전세가율은 50%대에 머물게 된다.
고준석 신한은행 청담역지점장은 "전세자금대출이 확대되는 것은 분명 매매시장 활성화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세대출 확대 속도조절 필요=특히 12·3부동산후속조치에서 기존의 '목돈 안 드는 전세'가 '전세금 안심대출'로 바뀌면서 전세자금대출 조건이 주택담보대출보다 좋아지게 되면 매매로 전환되는 수요가 더욱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최근 발표된 '4·1, 8·28 대책 후속조치'에서는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평균 연 3.81%)보다 낮은 평균 3.7%, 최저 2.5%의 전세금 안심대출이 포함돼 있다. 금리도 낮은데다 전세보증금 3억원(수도권) 이하인 집에 대해 금융비용 부담율 40%까지 전세자금대출이 가능해 소득이 높아 집 구매력이 있는 중·상위계층이 더 많은 혜택을 볼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예컨대 연간 인정소득이 6,000만원인 중산층 가정의 경우 전세금 안심대출을 이용한다면 연간 2,400만원의 이자부담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3억원을 대출 받는다고 하더라도 3.7%의 평균 금리를 적용하면 연간 1,100만원만 내도 되기 때문에 사실상 금융비용 부담율 제한이 대출한도 억제 효과가 없는 셈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보다 이자도 낮은데 굳이 집을 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시장 일각에서는 정부가 전세자금대출 확대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민간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가 구체적인 상관관계를 조사해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전세대출 정책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성호기자 junpar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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