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아이즈]책꽂이-'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외 4권

윤시내 2013. 12. 9. 09:2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뉴시스】오제일 손정빈 이재훈 유상우 박영주 기자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한강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

"우리가 이렇게 어두웠었나. 덜컹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 맹렬하던 전철의 속력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가속도만으로 레일 위를 미끄러지고 있다. 확연히 느려졌다고 느낀 순간, 일제히 조명이 들어온다, 다시 맹렬하게 덜컹거린다. 갑자기 누구도 파리해 보이지 않는다. 무엇을 나는 건너온 것일까?"

해가 떨어진 무렵 4호선 전철, 전력 공급이 끊긴 구간을 달리는 10여 초의 시간에 시인은 웅크려 앉은 사람들의 파리한 얼굴을 본다. '우리가 이렇게 어두웠었나' 자문하는 찰나, 다시 들어오는 조명에 사람들의 얼굴을 다시 본다. 1993년 등단한 뒤 20년 만에 첫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펴낸 한강(43)은 시집 뒤편의 산문을 통해 '무엇을 건너온 것일까'라고 묻는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어느 늦은 저녁 나는)

시집을 여는 '어느 늦은 저녁 나는'처럼 시집 곳곳에는 '무엇'이 자리하고 있다. "이제 살아가는 일은 무어일까"라고 묻는 '회복기의 노래'가 그렇고, "내가 가진 모든 생생한 건/ 부스러질 것들// 부스러질 혀와 입술,/ 따뜻한 두 주먹// 부스러질 맑은 두 눈으로// 유난히 커다란 눈송이 하나가/ 검은 웅덩이의 살얼음에 내려앉는 걸 지켜본다// 무엇인가/ 반짝인다"는 '저녁의 소묘 4'도 그렇다.

한강은 등단 이래 삶의 근원에 자리한 인간 본연의 고독과 고통을 그려왔다.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등을 통해서다.

첫 시집도 같은 맥락이다. 시집의 해설을 쓴 조연정 문학평론가는 "그녀의 소설 속 고통 받는 인물들의 독백인 듯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고 읽었다. '저녁의 소묘' '새벽에 들은 노래' '피 흐르는 눈' '거울 저편의 겨울' 연작들의 시편 제목에서부터 정조가 감지된다.

"허락된다면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싶다는 그녀다. 하지만 한강의 바람대로 실제로 고통을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고 치면, '무엇'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으로 삶을 향한 의지를 다져왔기 때문이 아닐까.

"정면을 보며 발을 구를 것/ 발목이 흔들리거나, 부러지거나/ 리듬이 흩어지거나, 부스러지거나// 얼굴은 정면을 향할 것/ 두 눈은 이글거릴 것/ 마주 볼 수 없는 걸 똑바로 쏘아볼 것/ 그러니까 태양 또는 죽음, /공포 또는 슬픔// 그것을 이길 수만 있다면/ 심장에 바람을 넣고/ 미끄러질 것, 비스듬히"(거울 저편의 겨울 9-탱고 극장의 플라멩코)

▲순례자들의 안식처, 에르미타를 찾아서지은경 지음예담 펴냄

'은둔지' '사람이 살지 않는 장소' '세상과 뚝 떨어진 집' '사막과 같이 황량함', 이 모든 쓸쓸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말 '에르미타(Ermita)'는 스페인 북부 피레네 산맥 사이에 흩어져 있는 작고 소박한 건축물의 이름이다. 비단 종교 세력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했던 신자들뿐만 아니라 세상을 등지고자 했던 사람들, 나그네들이 바람과 추위를 피해 잠시 머물며 다음 여정을 마음에 새기던 곳이기도 하다.

'순례자들의 안식처, 에르미타를 찾아서'는 바로 이 에르미타에 매료돼 7년째 에르미타를 찍어온 벨기에의 사진작가 세바스티안 슈티제와 도시를 떠나본 적 없는 작가 지은경이 에르미타를 찾아 스페인 북부에서 보낸 4개월간의 여정을 담고 있다. 긴 시간을 차로 달리고 눈 쌓인 숲을 헤쳐가며 찾아낸 에르미타, 피레네 산맥의 광활한 자연, 그 사이에서 만난 스페인 사람들, 동물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모든 이야기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 특별한 여행은 노란 승합차 '에르미타 익스프레스'에 필요한 모든 짐을 싣고 혹독한 겨울의 피레네 산맥을 달리는 데서 시작한다. 낮에는 눈길을 달리고, 사진 장비를 챙겨 산을 올라 에르미타를 촬영한다. 올리브 오일에 담근 구운 채소와 달걀 프라이, 있는 재료로 뚝딱 만든 스파게티로 끼니를 삼고, 밤이면 잠을 청하기에 알맞은 곳을 골라 차를 세우고 하늘의 별 아래에서 잠이 든다. 다음 날이면 새벽 첫 빛을 받으며 에르미타 익스프레스를 타고 다시 떠난다. 이 모든 불편함이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이 여행이 오직 에르미타만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고백한다.

▲시민의 탄생송호근 지음민음사 펴냄

사회학자인 송호근 교수(57·서울대 사회학)는 '시민의 탄생'에서 조선의 역사 변동은 공론장 구조 변동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84)의 '공론장의 구조변동'을 끌고 들어왔다. 국가와 시민사회를 연결하는 영역인 공론장을 여론의 형성 집결 영역이라 정의하는 이론이다.

송 교수는 하버마스가 부르주아 계급의 상승과 근대 국가의 건설 과정을 설명하는 데 적용한 공론장의 분석적 유용성을 통시적으로 확장한다. 조선의 전반적 역사 변동의 추동력을 캐는 거시적 분석틀로 삼은 것이다.

갑오 정권에서 대한제국에 이르는 근대 이행기에 조선에서는 공론장의 관점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가 발생했다. 조정 담론장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양반 공론장을 계승한 '지식인 공론장'이 형성됐다. 동학이 기여했던 종교적 평민 공론장이 '세속적 평민 공론장'으로 부활했고, 지식인 공론장과 평민 공론장이 상호 연대하고 공명했다.

이러한 공론장은 "특정 계급이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활용하는 정보와 상품의 유통 영역이자 수단으로서 인쇄 매체, 모임, 토론 단체, 교통망, 그 밖의 유통 기제들을 동원해 계급적 합의를 창출하고 확장해 나가는 공적 기제의 총체적 네트워크"를 지칭한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근대 민주주의는 국가와 사회, 개인 간 갈등이 이 공론장에서 진행되는 토론과 그에 따른 합의를 통해 해결되는 정치 체제다. 이런 점에서 공론장은 민주주의의 핵심적 거점이라 할 수 있다.

유신 정치와 광주 민주화 운동, 민주화, 압축적 경제 성장, 외환 위기 등 격동의 세월을 거친 한국 사회는 고령화와 최저 출산율, 높은 자살률,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인 양극화 현상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수많은 쟁점들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뒤엉키는 현실 가운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공론 형성 과정이 차단됐다.

이를 위해서는 의사소통의 장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 송 교수가 강조하는 지점이다. 개인이 개인적 삶의 영역을 넘어 자신의 생각과 의사, 정서를 타인과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화와 토론, 합의를 바탕으로 한 의사소통이 이뤄지는 공론장과 그것에 의해 시민의 출현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 극단적 경쟁과 갈등으로 소통이 불가능해진 한국 사회에 유효한 시사를 던진다.

▲어린이를 위한 99℃ 이야기호아킴 데 포사다 지음인사이트북스 펴냄

초등학교 5학년 로건은 친구와 함께 노는 것을 좋아하고 게임을 즐기는 평범한 아이다. 꿈이 없다는 게 문제지만, 책 읽기보다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을 즐긴다. 어느 날 로건은 아메리칸 유니버시티 송 페스티벌에서 우승하며 스타덤에 오른 올리버로부터 99도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후 자기에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시간과 임무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다.

로건은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이 없어도 언젠가 생길 나의 꿈을 위해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한 올리버의 충고로 용기를 얻는다. 이후 로건은 학교 연극부에서 맡은 보잘 것 없는 단역에도 최선을 다할 뿐 아니라 생활 태도에도 변화를 보이게 된다.

'어린이를 위한 99℃ 이야기'는 평범한 어린이 로건이 99도 메시지를 접하면서 변화하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어린이로 성장해 나가는 내용이다. 로건은 타고난 재능도 없을 뿐더러 하고 싶은 일도 없다. 이런 로건을 어른들은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꿈을 가지라고 다그치며 잔소리한다. 어른들이 이렇게 말하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꿈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얼마나 달라지는지 이미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뜬구름 잡는 것처럼 막연하기만 할 뿐 뚜렷이 떠오르지 않는 어린이들이 많다. 책은 어린이들에게 '나는 무엇이든 잘할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과 자신감을 일깨워 주는 동시에 스스로 변화할 수 있게 꿈과 용기를 심어준다.

▲제로의 기적캐릴 스턴 지음프런티어 펴냄

아프리카 대륙의 시에라리온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러나 불행히도 파상풍에 걸리고 말았다. 주로 집에서 출산하는데 손에 잡히는대로, 철제 조각이나 더러운 칼로 탯줄을 끊기 때문이다. 시에라리온에서만 매년 14만명의 신생아와 3만명의 산모가 파상풍으로 사망한다. 파상풍은 간단한 주사만 맞으면 쉽게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병이다.

하루에 1만9000명의 아이들이 파상풍처럼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다. 1991년 기준 3만3000명에 비하면 죽는 아이들의 수가 거의 절반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아이 1명이 죽어 나가는 시간은 5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한 아이가 세상을 떠나면 그 뒤에 버티고 서 있던 가족의 세상도 순식간에 멈춰버린다. 그리고 남은 가족은 아이가 떠난 빈자리를 평생 안고 살아간다.

유니세프 미국기금 회장 겸 CEO로 세 아이의 엄마인 캐릴 스턴이 세계 곳곳의 구호 활동 현장에서 굶주림, 가난, 질병으로 죽어가는 이들을 살리기 위해 7년 동안 걸어온 여정을 '제로의 기적'에 담았다. 저자는 처음 모잠비크를 찾아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목격하고, 그들을 살리기 위해 나섰다.

'제로의 힘을 믿어요'(Believe in Zero)는 살릴 수 있지만, 기본적인 지원을 받지 못해 죽는 아이들의 숫자를 제로(0)로 만들겠다는 유니세프의 목표다.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질병 때문에 죽어가는 아이들이 하나도 없다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1만9000명이 제로가 되는 날이 오도록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호소한다. 국경과 인종을 초월해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제로의 기적을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kafka@newsis.comjb@newsis.comrealpaper7@newsis.comswryu@newsis.comgogogirl@newsis.com

※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356호(12월16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