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여신' 열린 결말을 폄하하기 어려운 이유

김교석 2013. 10. 28.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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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의 여신'이 제시한 여성들의 행복 조건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 결혼의 여신 > 은 좀 더 주목받았어야 할 드라마였다. 지난주 36부작으로 끝난 < 결혼의 여신 > 의 평균 시청률은 10%대에 머물렀지만 당초 20부작에서 32부작으로 연장이 결정되었고, 추후 4부 더 늘어났다(비록 후속작의 편성문제가 가장 큰 이유지만). 화제성만큼 시청률이 나오진 않았지만 그래도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는 결정적인 방증이다. 물론, 재벌가가 배경이고 이혼과 바람이 난무하며 온갖 우연으로 점철된 상황이 연속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 드라마를 제대로 보고 내린 평가가 아니다. < 결혼의 여신 > 은 통속적인 클리세 속에서 메시지와 판타지를 뚜렷하게 각인시키고 전달했다.

이 드라마는 철저히 여성을 위한,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본 연애와 결혼을 다룬다. 그래서 모든 커플, 서브 스토리의 어떤 조연 커플이라도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주인공 롤은 모두 여자다. 남편은 거들 뿐, 모든 남자 캐릭터들은 철저하게 서브에 머무른다. 못된 시어머니의 전형으로 나오는 변애자(성병숙)의 남편은 기 한번 못 피고 살고, 결혼 문제로 관계를 맺으면서 몇 차례나 얽힌 현우(이상우)와 세경(고나은)커플의 경우 현우는 편모를 모시고 살고, 세경의 아빠는 파리에 가 있는 관계로 모든 집안일은 세경모(박준금)가 결정한다. 다소 막무가내 캐릭터인 그녀 스스로 하는 말이 '남자한테 사랑을 받지 못해서'라는 것이다. 이는 신영그룹 내부도 마찬가지다. 유난스러운 재벌가 안주인 이정숙(윤소정)은 며느리들과 트러블을 일으키기 일쑤다. 회장(전국환)이나 아들들은 이정숙이 잡고 있는 집안 내부 관계도에서 비껴나가 있는 제 3자에 가깝다.

너무 답답해서 시청자들로부터 가장 많은 지탄과 관심을 받은 은희(장영남)는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했던 필호(곽희성)를 추억으로 묻은 채 신시아(클라라)와 바람났던 남편 승수(장현성)와 다시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대인의 풍모를 보인다. 신영그룹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부정적인 재벌가와는 다른 건전하고 존경받을 재벌가의 총수 역 또한 반효정이 분한 할머니다. 그룹 부회장이 되는 야심가 홍혜정(이태란)은 말할 것도 없고 그룹 내 지분과 권력 자체에 관심 없는 송지혜(남상미)도 마찬가지다. 가장 어린 커플인 노민정(이세영)과 김예솔(김준구)부부 또한 조건만 보는 된장녀이자 철없는 며느리 노민정에 의해 모든 이야기가 진행된다.

제목은 결혼의 여신이지만 이 드라마에는 성공한 결혼생활을 하는 커플은 남편의 도움으로 꿈에 그리던 뉴욕 연수를 떠난 송지선(조민수)과 그녀를 지지해준 남편 노장수(권해효) 커플 정도밖에 없다. 우울한 공기를 가득 머금고 있던 지혜는 결국 이혼을 했고, 아이들에게 부모가 이혼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혜정은 감옥에 들어간 남편 태진(김정태)을 대신해 집안을 이끄는 것을 목적으로 가정생활을 이어간다. 극중 가장 독하고 센 캐릭터인 그녀는 돈 때문에 결혼한 것은 맞지만 자신의 꿈은 부회장이 아니라 '신영그룹 회장 사모'였다는 것을 밝히며 결국 한 여자이자 엄마일 뿐이라는 것, 결국 이렇게 됐지만 여자로 사는 게 가장 행복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여성이 주인공이고, 모든 커플의 관계가 여성의 시각으로 조명되는 이 드라마가 말하는 것은 결국 '여자의 행복은 남자하기 나름이다'는 것이다. 이것이 작가의 메시지이자 결혼의 여신이 되기 위한 조건인 셈이다.

< 결혼의 여신 > 은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여타 주말드라마와 달리 흥미로웠고 한 발 나아간 지점이었다. 마치 모자이크 퍼즐을 맞추듯이 다양한 군상의 커플들을 겹겹이 보여주면서 어떤 연애가 행복한 연애인지, 어떤 결혼 생활을 바라봐야 하며 어떤 조건을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계속해서 건넸다. 그것은 조건도, 일방적인 사랑도 아닌 운명적인 무엇이라는 다소 판타지어린 결론에 이르긴 하지만 노장수나 김예솔 같은 캐릭터를 통해서 어떤 남자와 조건이 정작 여자를 행복으로 이끄는지 넌지시 말해주었다.

< 결혼의 여신 > 은 서로 다른 가치관과 인생관을 지닌 커플들의 사랑과 갈등을 통해 결혼의 진정한 의미와 소중함을 되돌아보는 이야기를 그렸다. 막장의 요소, 재벌가들이 등장하는 거대한 스케일, 우연의 심포니가 이루는 스토리에다가 이혼과 바람, 고부갈등이라는 고유의 소재를 빼곡하게 등장시키는 한편으로 < 넝쿨째 굴러온 당신 > 등에서 시도한 코미디 정서를 입혔다. 그리고 그 가운데 연애관에 관한 뚜렷한 시각이 존재했다. 주입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커플의 이야기를 펼쳐서 보여줌으로써 가장 통속적인 소재를 가지고 메시지를 완고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밀어붙인 것이다.

이것이 단지 < 결혼의 여신 > 을 막장이나 아줌마 드라마로 폄하하기 어려운 이유다. 물론 35회의 쨍한 햇살을 배경으로 억수 같이 쏟아지는 빗줄기 등등 웰메이드하다고 칭송받는 드라마 수준의 완성도를 자랑한 것은 아니지만, 시청자의 관습을 잘 반영하면서 나름의 철학을 꽤나 강하고 심도 깊게 보여준 힘이 있었다. 그 힘은 시청자 각자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것도 두 차례나 연장된 드라마에 기대하기 힘든 미덕이 존재한 것이다. 이른바 장르의 공식 내에서 작가주의를 펼친 독특한 주말드라마였다고나 할까, 그래서 < 결혼의 여신 > 은 열린 결말의 궁금증만큼 아쉬운 이별로 다가온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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