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lobal Focus >'가을 스모그' 유령이 중국을 떠돌고 있다

박선호기자 2013. 10. 25.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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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거리 20m.. "4일중 3일은 스모그"

"길 건너 저 높은 빌딩이 보일 듯 말 듯합니다. 빌딩을 가린 것은 스모그입니다. 스모그는 오전 출근길도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

지난 23일 오전 9시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 현지에서 마이크를 잡은 CCTV 여기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손에 이미 짙은 회색으로 변한 하얀 마스크를 꺼내 들며 말을 이어간다. "이곳에 보도를 하기 위해 나오면서 썼던 마스크입니다. 변한 색만큼 오염물질이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얼빈 일대가 스모그로 뒤덮인 지 지난 23일로 벌써 사흘째.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뿌연 스모그는 이미 수많은 중국인들의 숨을 막히게 하고 있다. 겨울이 오는 것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한 공포감마저 들게 한다. 중국 각 도시는 아직 석탄난방을 하는 곳이 많아 겨울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스모그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중국의 스모그 공포는 이제 시작인 셈이다.

25일 관영 신화(新華)통신 등 중국 매체들에 따르면 중국 스모그의 공습은 초반부터 맹렬하다. 지난 20일 시작된 스모그로 헤이룽장성은 21∼22일 성내 고속도로 전체 구간의 차량 통행이 중단됐고 하얼빈국제공항도 폐쇄돼 항공기 운항이 완전히 끊겼다. 하얼빈시는 22일에도 가시거리가 20m에 불과해 일부 시내버스 운행이 중단됐고 이틀간 휴교령이 내려졌다. 헤이룽장성의 다칭(大慶), 자무쓰(佳木斯), 이춘(伊春) 등 다른 도시에서도 스모그로 인해 도시 기능이 거의 마비됐다. 하얼빈국제공항은 23일 오전에야 인천∼하얼빈 노선 등 국제선을 포함한 여객기 운항이 부분적으로 재개됐다. 지린(吉林)성 지린(吉林)시가 22일 시내 초등학교, 중학교를 휴교 조치한 데 이어 창춘(長春)시도 23일 휴교령을 내렸다. 창춘시는 22일 2.5㎛ 이하 초미세먼지(PM 2.5) 지수가 대기오염경보 최고 단계인 500을 넘었다.

24일 들어 중국 매체의 스모그 보도가 크게 줄었지만 스모그에 대한 중국인들의 공포는 줄지 않고 있다. 올들어 중국의 스모그는 베이징(北京) 등 동북부 지역 주요 도시들에서 일상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겨울 난방시기를 거치면서 오염 정도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베이징 왕징(望京)지역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이미 '3한4온'을 빗대어 3일 스모그에 하루 맑은 날이 반복된다는 의미로 '3우(汚)1칭(淸)', 갑자기 추워졌다 갑자기 따뜻해진다는 변덕스러운 가을날씨를 의미하는 사자성어인 자한자러(乍寒乍熱)를 빗대어 갑자기 스모그가 끼었다가 갑자기 맑아졌다는 '자우자칭(乍汚乍淸)' 등의 말이 유행할 정도다.

베이징은 현재 동북 3성을 휩쓰는 오염 수준의 스모그를 지난 1월 겪었다. 당시 1월중 단 5일만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지난 7월 11일 관영 중궈신원왕(中國新聞網)이 보도한 중국 관련 통계에 따르면 2013년 1월부터 6월 말까지 베이징, 화베이(華北)평원 등 중국 전체 면적의 4분의 1, 총 74개 도시의 6억여 명 시민들이 스모그로 고통을 받아야 했다. 당시 중궈신원왕은 중국 스모그현상의 특징으로 ▲스모그 오염 지역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스모그가 연속되는 날이 길어지고 있다 ▲오염도가 심해지고 있다 등을 꼽았다.

지난 6월 중국종양등록센터가 발간한 '2012년 중국 종양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폐암 발병률은 과거 30년 동안 465%나 늘었다. 주범 중 하나로 스모그가 꼽히고 있다. 최근 미국의 유명 여가수 패티 오스틴이 베이징에 공연하러 왔다 돌연 천식이 발병해 공연을 취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네티즌들은 베이징 스모그를 원인으로 꼽았는데 이견을 보이는 사람이 적다.

커지는 스모그 공포에 중국 정부도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 재정부는 지난 14일 베이징과 톈진(天津)·허베이(河北)·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산시(山西)성·산둥(山東)성의 대기오염 문제 해결에 50억 위안(약 8760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는 2017년 말까지 베이징, 톈진, 허베이성 등지의 초미세먼지 농도를 기존 대비 25% 낮춘다는 목표를 세우고 2015년까지 베이징 일대의 석탄발전소 등의 시설에 오염 방지를 위한 시설을 개선키로 했다. 이어 베이징시도 지난 22일 대기오염이 심한 날에는 차량 2부제를 시행하고 학교도 휴교에 들어가기로 하는 등의 조치를 내놓았다. 오염 정도에 따라 일부 공장 가동도 중단키로 했다. 경제이익도 포기한 특단의 조치다.

그러나 중국 중앙과 지방정부의 이 같은 노력이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중국의 스모그 원인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베이징시의 경우 자동차 배기가스가 주범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지난 10월 국경절 휴가 때 베이징 시의 승용차들이 크게 줄었으나 휴가기간 내내 베이징시는 스모그로 덮였었다.

요즘 베이징에서는 허베이 성의 오염물 배출 공장들이 스모그의 주범으로 꼽히는 상황이다. 경제성장의 대가로 지적되는 스모그 문제를 중국 정부가 슬기롭게 해결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베이징 = 박선호 특파원 shp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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