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 마니아는 가을·겨울에도 메밀국수를 먹는다

2013. 10. 23.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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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이 있는 맛집]한국식 소바와 일본식 소바의 만남 <면옥향천>

소바, 막국수, 평양냉면은 겨울이 제철막국수와 소바, 냉면은 가을·겨울이면 수요가 급감한다. 한 강원도 막국수집의 경우 수 십분의 일로 매출이 떨어진다고 했다. 겨울철 메밀이 맛있다고 해도 날씨가 추우면 냉면, 막국수, 소바에 대한 니즈는 현격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수 마니아들은 평양냉면과 막국수를 겨울철에 더 찾는다.

일본 만화 '맛의 달인(美味しんぼ)'에서 주인공 지로의 지인이 소바를 100판 먹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지인은 '단 메밀이 햇 메밀이어야 먹을 수 있다'고 조건을 단다. 햇 메밀은 겨울철에 수확한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겨울철에 차가운 메밀국수를 찾지 않는다. 필자는 온소바와 온메밀면에 관심이 많다. 음식점에서 계절을 극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뜨거운 육수의 메밀 음식이 한국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것 역시 아주 잘 알고 있다. 한국 메밀국수는 평양냉면과 막국수, 소바 등 차가운 음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손님들은 그런 인식 때문에 대부분 여름철에만 메밀국수를 소비한다. 일본에서는 따뜻한 국물의 온소바도 많이 먹는다.

국수를 아주 좋아하는 중년 남자 넷이서 부산 <면옥향천(麵屋香川)>을 방문했다. 면옥(麵屋)은 국수집, 향천(香川)은 일본의 지명인 '가가와'다. 사누키 우동으로 유명한 시코쿠(四國)의 한 현(&#30476)이다. <면옥향천>은 일본식 정통 우동을 염두에 두고 정한 상호인데 어찌된 일인지 이 곳은 소바와 막국수를 같이 판매한다. 한국 메밀국수인 막국수와 일본 메밀국수인 소바의 절묘한 동거라고나 할까. 우리는 차가운 모리소바(6000원), 뜨거운 가케소바(6000원)와 고로케+유부초밥(4000원)을 주문했다. 냉면집을 운영하고 있는 일행은 100% 메밀인 순메밀막국수(1만원)도 궁금해서 시켰다.

한국식 소바와 일본식 소바의 절묘한 절충형들어간 가게 안은 협소했다. 사이드 메뉴로 유부초밥과 고로케도 주문했다. 면으로만 식사하기 허전해서다. 유부초밥은 일본 유부를 사용했고 꽤 큼직했다. 고로케는 카레 향이 강했지만 맛은 괜찮은 편이었다.

100% 메밀막국수는 면이 가늘고 뚝뚝 끊어졌다. 필자는 메밀을 좋아하지만 100% 메밀면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봉피양>, <우래옥>에서도 순면은 거의 먹지 않는다. 필자 입맛에는 적당히 전분도 섞여야 맞는다. 가끔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장원막국수>를 가는 이유도 100% 메밀이라는 인식보다는 막국수 자체가 맛있어서 가는 것이다. 그러나 100% 메밀막국수는 이 집을 유명하게 하는데 분명히 일조했을 것이다. 부산에서는 특히 강력한 스토리텔링이 된다. 부산보다는 서울 소비자가 메밀에 대한 선호도가 훨씬 높다는 것을 감안하면 '메밀 100% 사용'은 부산 자체에서 상당한 이야깃거리가 된다. 100% 메밀막국수는 호불호가 있지만 육수도 특이하고 개성 있는 막국수임에는 틀림없다. 육수는 양지머리를 사용해 약간 평양냉면의 맛도 난다.

이 식당의 시그니처 메뉴인 모리소바는 전문점 느낌이 제대로 난다. 메밀 함유량은 약 40%로 메밀 향도 충분하고 면발이 굵어서 좋다. 면발의 끊기는 정도도 괜찮다. 일행 모두 모리소바의 수준을 인정했다.

츠유는 한국식 소바치고는 다소 짰다. 이 부분은 일본 소바와 한국 소바의 절충형을 선택한 것 같다. 일본 오리지널 소바 풍미에 한국 대중의 입맛을 맞춘 딱 중간 지점이다. 근래 먹어본 소바 중에서는 당연 가장 으뜸이었다.

수도권의 소바 식당들은 이 집에게 자극을 좀 받아야 할 것 같다. 솔직히 서울 강북의 오래된 소바 전문점보다 최소 두 단계 이상 급이 높다고 생각한다. 오래된 식당이라고 해서 다 내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주인장의 음식을 대하는 관점과 자세가 중요하다.

메밀 직접 재배하고 뽑아 만든 온소바, 일본보다 맛 우월가케소바(온소바)도 나왔다. 가츠오부시와 멸치 육수를 혼합한 온소바 역시 수준급이었다. 소바의 본고장, 일본의 서서 먹는 소바 집에서 맛본 온소바보다 오히려 앞서는 것 같다. 뜨거운 육수의 소바도 충분히 맛있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이 집에서 경험했다. 국물은 담백하면서 깊은 맛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온소바를 잘 만들어도 동절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애당초 '소바&우동'으로 콘셉트를 잡았더라면 겨울 매출이 더 늘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우동 집도 가을에 들어서면 매출이 많이 떨어진다. 주로 여름에 많이 판매되는 메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소바보다는 계절에 따른 매출 하락폭이 덜하다. 하지만 역으로 메밀 전문점이라는 인식은 좀 떨어졌을 것이다. 동전의 양면이다.

온소바는 한국에서는 이 집처럼 내공 있어야 가능한 메뉴다. 현재 이 집은 자가재배(自家栽培), 자가제면(自家製麵)을 구현한다고 한다. 충남 논산에서 메밀을 직접 재배하고 있다고. 보기 드물게 식재료까지 직접 재배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메밀은 국산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공감한다. 내몽고나 중국 동북지방 메밀이 좋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주인장은 앞으로 '자가제분(自家製粉)'까지 실현하고 싶다고 한다. 식당 업주로서는 대단한 욕심이다. 오래간만에 외식업 강자를 만났다.<면옥향천> 부산시 해운대구 우2동 1185-77 (051)747-4601

글·사진 김현수 외식콘셉트 기획자(blog.naver.com/tabula9548)외식 관련 문화 사업과 외식업 컨설팅에 다년간 몸담고 있는 외식콘셉트 기획자다. '스토리텔링이 있는 맛집'은 대부분 사전 취재 없이 일상적인 형식으로 콘텐츠를 작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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