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世說新語] (232) 간저한송(澗底寒松)

2013. 10. 16.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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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晉)나라 때 좌사(左思)의 '영사(?史)' 제2수다. '울창한 시냇가 소나무, 빽빽한 산 위의 묘목. 저들의 한 치 되는 줄기 가지고, 백 척 소나무 가지를 덮네. 귀족들은 높은 지위 독차지하고, 인재는 낮은 지위 잠겨 있구나. 지세가 그렇게 만든 것이라, 유래가 하루아침 된 것 아닐세(鬱鬱澗底松 離離山上苗 以彼徑寸莖 蔭此百尺條 世胄?高位 英俊沈下僚 地勢使之然 由來非一朝).'

그는 '간저송(澗底松)'과 '산상묘(山上苗)'를 대비해 능력도 없이 가문의 위세를 업고 고위직을 독차지한 벌족(閥族)을 산꼭대기의 묘목에, 영특한 재주를 품고도 말단의 지위를 전전하는 인재를 냇가의 소나무에 견주었다. 이후로 간저한송(澗底寒松), 즉 냇가의 찬 솔은 덕과 재주가 높은데도 지위는 낮은 사람을 비유하는 의미로 쓴다.

당나라 때 백거이(白居易)가 '간저송'을 표제로 단 작품을 다시 지었다. 앞쪽 몇 구절은 이렇다. '백 척 되는 소나무 굵기만도 열 아름. 냇가 아래 자리 잡아 한미하고 비천하다. 냇가 깊고 산은 험해 사람 자취 끊기어, 죽기까지 목수의 마름을 못 만났네. 천자의 명당에 대들보가 부족해도, 제 있는 것 예서 찾아 서로 알지 못하네(有松百尺大十圍 坐在澗底寒且卑 澗深山險人路絶 老死不逢工度之 天子明堂欠梁木 此求彼有兩不知).' 그 취지가 같다.

송나라 때 육유(陸游)는 간송(澗松)의 이미지를 시 속에서 특히 애용했다. 그에 이르러 간송의 의미는 조금 달라졌다. '초춘서회(初春書懷)'에서는 '천년의 냇가엔 외로운 솔이 빼어나다(千年澗底孤松秀)'고 했고, '간소소수(簡蘇邵?)'에서는 '간송의 의기는 지극히 우뚝하다(澗松意氣極磊?)'란 구절을 남겼다. '간송(澗松)'에서는 '간송은 울창하니 어이 괴로이 탄식하랴(澗松鬱鬱何勞嘆)'라고 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의 호가 여기서 나왔다. 그이는 우뚝한 의기로 귀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을 일인(日人)의 손에서 지켜냈다. 천년 냇가 외로운 솔의 기상이 아닌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그 길을 걸어 이룩한 빛저운 자취가 가멸차다. 그 간송미술관에서 이 가을 진경 시대 화원전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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