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꿈틀 신나는 진로]미래의 제과명장, 국내 대표 명장과 최연소 기능장을 만나다

2013. 10. 1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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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신뢰 얻기 위해 케이크 400개 내다버렸죠"

[동아일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제과 명장을 꿈꾸는 전북 학산고 제과제빵과 3학년 이은화 양(가운데)은 최근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충정로사옥에서 김영모 제과 명장(왼쪽)과 국내 최연소 제과 기능장인 김호겸 기능장을 만났다. 이성은 기자 sunmin112@donga.com

동아일보 교육섹션 '신나는 공부'가 교육부, 고용노동부와 공동진행하는 청소년 진로탐색 연중기획 '꿈틀꿈틀 신나는 진로'에서 살펴볼 첫 진로는 제과·제빵 분야.

최근 열린 '제48회 전국기능경기대회' 제과·제빵 부문에서 은상을 받은 전북 학산고 제과제빵과 3학년 이은화 양(18)이 김영모 제과 명장(60)과 국내 최연소 제과 기능장인 김호겸 기능장(28)을 8일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충정로사옥에서 만났다.

김영모 명장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16세에 '맛나당' 빵집 보조로 제과·빵 분야 일을 시작한 뒤 40여 년 동안 제과·제빵 분야 외길을 걸은 끝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제과 명장이 된 입지전적 인물. 1982년 서울 서초동에 6평짜리 빵집에서 시작해 지금은 서울 서초본점과 도곡타워팰리스점 등 4개 매장에서 150억원이 넘는 연매출을 올린다.

김호겸 기능장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제과·제빵 공부를 시작해 26세인 2011년 국내 최연소 제과 기능장이 됐다. 그는 현재 서울과 충남 천안에 있는 '한미제과제빵커피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제과·제빵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하루 3시간 자며 연습 또 연습

"작은 빵집 사장으로 남을 수도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과 무엇이 달랐기에 명장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시나요?"(이 양)

이 양의 질문에 김 명장은 "언젠가는 우리나라도 학력이 아닌 실력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될 것이라 믿고 제과·제빵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기술을 연마했다"고 말했다.

김 명장은 '도착'에 가까울 만큼 치열하게 기술을 연마했다. 22세에 입대했을 때는 수년간 익힌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경계근무를 서면서도 싸리나무 가지를 반으로 꺾어 한 손에 쥐었다. 버터를 짜는 힘을 조절하는 연습을 계속한 것이다. 전역 후에도 제과점에서 하루 2∼3시간 자며 케이크에다 재료를 짜서 장미꽃을 만드는 연습을 했다. 40대 이후에도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기 위해 국내외에서 20여 개 제과·제빵 과정을 이수했다.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성장해왔다.

"일을 배우던 시기엔 하루 3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어요. 밤 12시에 빵 반죽을 만드는 일로 제과점 일을 마치면 혼자 연습하고 잠깐 눈을 붙였다가 오전 4시부터 빵을 만드는 생활을 반복했지요. 몰래 연습을 하다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답답한 마음에 손등을 깨물어서 손등이 늘 멍들어 있었답니다.(웃음)"(김 명장)

김 기능장은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제과·제빵을 공부하는 많은 학생이 겉으로 보이는 기술에만 신경을 쓴다"면서 "전국 기능대회 입상을 해도 기본기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바람에 '스펙'은 좋지만 현장에선 제대로 일을 못하는 경우도 많다. 기본기를 제대로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술, 지식, 인성… 그중 제일은 '인성'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제과 명장을 꿈꾸는 이 양이 "명장이 되기 위해선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나요"라고 물었다.

김 명장은 "기술만으론 절대로 최고가 될 수 없다"면서 인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람들이 소비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하기에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수라는 것.

김 명장은 "인성 중에서도 윤리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크리스마스 때 판매하려고 케이크 400개를 만들었다가 모두 버렸던 일화를 소개했다.

크리스마스 때 판매하려고 예약을 받은 케이크를 직원들이 실수로 배수관이 지나가는 지하실에 보관하는 바람에 케이크 버터에 안 좋은 냄새가 베어버린 것. 고객들은 차이를 느낄 수 없는 미세한 냄새였지만 김 명장은 케이크를 모두 버리고 밤새 직원들과 다시 만들었다.

"많은 젊은 기능인들이 빨리 돈을 벌고 싶어 합니다. 그들에게 '왜 사업을 하려고 하느냐'고 물으면 90% 이상이 제품이야기가 아니라 돈버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럴 경우엔 이익만을 생각하면서 저렴한 재료를 쓰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윤리성이 중요하지요. 윤리적으로 제품을 만들면 당장은 손해일 것 같지만 고객들이 다시 찾아와 결국엔 이익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김 명장)

"최고는 고객들이 인정할 때 되는 것"

"현장으로 바로 갈 지, 전문대학에 진학할 지 고민이에요. 현장에서 기술을 배우는 것도 좋지만 장기적으론 대학을 나와야 하지 않을까요?"(이 양)

이 양의 진로고민에 김 명장은 "사회적으로 대우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조언했다.

김 기능장은 "대학에 진학하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이 제과·제빵 분야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를 생각해 진로계획을 세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학 교수가 되는 등의 진로를 염두에 둔다면 대학진학을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일을 하면서 공부도 할 수 있는 환경이 충분히 갖춰졌다는 것이다.

"기술적으론 해외 어떤 나라와 비교해도 우리나라가 뒤지지 않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상황에 맞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경쟁력이지요. 자신이 어떤 학교를 졸업하거나 기능대회에서 입상하면 '난 실력을 갖췄어'라고 생각하는 학생이 많은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고객이 제품을 알고 제품을 신뢰하는 순간 '최고'가 되는 것입니다."(김 명장)

10대에 기능대회 입상하면 탄탄대로?… 60대에도 끊임없이 공부해야!▼ 제과·제빵 분야 경력경로 분석

《 '신나는 공부'는 교육부, 고용노동부와 함께 청소년의 진로탐색을 돕기 위해 10여 개 전문직업 분야에서 성공한 직업인들의 경력경로를 분석해 소개합니다.

직업 분야별 명장들의 경력경로를 분석해 해당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가 되려면 어떤 진로를 걸어야 하는지에 관한 현실적인 정보를 드립니다.

명장들의 성장사를 '진로 선택기→기본 직무능력 습득기→전문 직무능력 습득기→산업 리딩기'로 나눠 분석한 뒤 공통된 특징을 제시합니다.

첫 순서로 대한민국 제과 명장 6명의 경력경로를 분석했습니다. 설문과 인터뷰에 참여해준 명장은 김영모 김영모과자점 대표(60), 박찬회 박찬회화과자 대표(62), 서정웅 코른베르그과자점 대표(64), 안창현 안스베이커리 대표(53), 임헌양 신라명과 상임고문(74), 홍종흔 명장홍종흔 대표(48)입니다. 》

[진로 선택기] 학교 아닌 현장에서 시작

명장 6명은 대부분 고등학생 시기인 16∼18세에 제과·제빵 분야 진로를 선택해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공부를 마치고 대학이나 전문학교에 진학한 명장은 한 명도 없었다.

김영모 명장은 만나당제과(16세), 박찬회 명장은 뉴욕제과(17세), 서정웅 명장은 풍년제과(17세), 안창현 명장은 고려당(18세), 홍종흔 명장은 나폴레옹과자점(17세)에서 각각 일을 시작했다. 임헌양 명장은 이들보다 10년쯤 늦은 26세에 유솜크라브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이는 경제적 이유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노점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장이 되기 위해 대학진학은 필요하지 않다'는 설명은 지금의 교육환경을 고려하면 지나친 일반화일 수 있다. 이들 명장이 일을 시작한 1960∼1970년대는 지금과 달리 제과·제빵 관련 교육기관이 거의 없었기 때문. 또 명장 6명 중 4명이 '어려운 가정환경이 진로선택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한 만큼 하루 빨리 직업현장으로 가야할 만한 현실적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다만 김영모 명장은 "제과·제빵의 경우 기술 하나를 체득하는 데 5년 정도가 걸린다"면서 "대학에선 다양한 제과·제빵 관련 기술과 지식을 종합적으로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기술을 배우는 데 집중할 절대 시간이 부족해진다는 단점도 있다"고 말했다.

[기본직무능력습득기] 독학한 이론, 현장에서 적용

명장들은 최고 전문가가 되기까지 2단계로 나눠 직무능력을 키웠다. 10대 후반∼20대는 제과·제빵 현장에서 일하며 기본직무능력을, 30∼40대에는 해외연수와 끊임없는 제품 연구를 통해 자신만의 차별화된 직무능력을 쌓는 데 힘을 기울였다.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제과·제빵 기술을 배운 사람은 명장 6명 중 한 명도 없었다. 처음 수 년은 공장 청소, 그릇 닦기 등 허드렛일과 팥 앙금 끓이기, 도넛 튀기기, 오븐에 불 지피기, 빵 굽기 보조와 같은 기초적인 일을 했다. 이 과정을 통해 선배들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우는 동시에 실력을 쌓을 방법을 스스로 찾아 나섰다.

과거에는 한국어로 된 마땅한 교재가 없었다. 김영모 명장은 미국 소맥협회에서 제공한 영어원서를, 안창현 명장은 일본어로 쓰인 교재를 혼자 번역해가며 공부했다. 다른 명장들도 하루 3시간 남짓 자면서 일본어, 영어 등 어학공부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명장들은 "지금은 국내에도 제과·제빵 교육과정이 잘 갖춰져 있고 한국어로 된 정보와 지식도 많지만, 해외의 다양한 제과·제빵 트렌드를 익히기 위해서 외국어공부는 필수"라고 입을 모았다.

명장들은 젊은 나이에 기능대회에서 입상하고 유명 제과·제빵 학교에서 공부한 뒤 빠르게 성과를 내려는 요즘 젊은 세대의 태도에 대해 일침을 놓았다.

김영모 명장은 "이론을 머리로 알기는 쉽지만 이를 손으로 구현해내는 것은 쉽지 않다"면서 현장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홍종흔 명장은 "학교에서 배운 내용만으로 '내가 알고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겸손한 자세로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기술을 배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명장들은 대부분 기본직무능력습득기에 역할모델로 삼는 선배가 한 명 이상 있었다. 이들의 기술을 벤치마킹한 것은 물론 이들로부터 제과·제빵 직업에 대한 사명감과 자부심 등 정신적인 가르침을 받았다. 안창현 명장은 "첫 직장인 고려당에서 일할 때 스승에게 많은 내용을 사사 받았고, 30대에는 김영모 명장의 도움과 영향을 받았다"면서 "멘토들의 삶을 보면서 '치열하게 노력하면 나도 성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치고 힘들 때마다 이겨내는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전문직무능력습득기 & 산업리딩기] 끊임없는 트렌드와 기술 연구

명장들은 전문직무능력습득기인 30∼40대에 해외연수를 갔다. 10년 이상 현장에서 기본기를 갖춘 이들은 자신만의 차별화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해외로 떠난 것. '현장에서 일단 기본기를 익힌 뒤 체계적인 공부를 한다'는 점에선 최근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선취업 후진학' 과정과 같은 진로경로 특징을 보인다.

김영모 명장은 40대 후반에 독일, 이탈리아, 미국, 한국 전문학교와 연구소 등에서 제과·제빵 과정을 이수했다. 50세가 넘어서도 프랑스 초콜릿학교, 미국 제과제빵 과정 등을 이수한 끝에 국내 최초로 '천연 발효빵'을 개발했다. 임헌양 명장은 57세에 벨기에에서, 서정웅 명장은 64세에 독일에서 연수를 받는 등 명장 반열에 오른 뒤에도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이들은 이런 치열한 자기개발의 노력을 통해 프랜차이즈 제과점 등은 따라올 수 없는 차별화된 자신만의 제품을 만들어냈고, 30년 이상 공부와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결국 자신의 이름은 건 매장을 운영하는 명장 반열에 올랐다. 명장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트렌드와 기술을 배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프랜차이즈 제과점 때문에 하향세?▼ 제과·제빵 진로의 비전 ▼

제과·제빵 분야는 단지 먹는 음식을 넘어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식문화'를 이끌어가는 하나의 문화 트렌드로서의 비전이 있다고 명장들은 밝혔다.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차별화된 제과·제빵 제품에 대한 수요가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영모 명장은 "시대적으로 볼 때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만들어진 획일적인 제품은 앞으로 쇠퇴할 가능성이 높다. 갈수록 차별화된 수제품을 찾는 사람들의 욕구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찬회 명장은 "먹거리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이 증가하면서 완성된 제품만이 아니라 제작단계에서 어떤 재료를 쓰는지에 대한 관심도 지속적으로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명장들은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는 우리나라에서 제과·제빵 분야는 정년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직업으로도 비전이 있다고 설명했다.

임헌양 명장은 "현장에서 제품을 만드는 길이 아니더라도 학교와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와 강사, 제과제빵 관련 연구를 하는 연구원 등 다양한 세부 직업 분야로 진출할 수 있는 만큼 비전이 밝다"고 말했다.

이태윤 기자 wol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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