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외국인들이 만드는 잡지 '서울리즘' 내용 들여다봤더니..

정기현 인턴기자·연세대 국어국문과 2013. 10. 14.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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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지난 9월 28일 서울시립대 종합운동장은 '제4회 주한 외국인 유학생 문화 스포츠 대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모인 80여개국 출신의 외국인 유학생들의 함성소리로 가득 찼다. 대회는 그랜드코리아레저(GKL)의 임병수 사장,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의 축사와 함께 시작됐다. 축사를 마치고 이자스민 의원이 단상에서 내려오자 재빨리 달려가 명함을 건네는 이가 있었다. 주한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한국어 잡지 '서울리즘(Seoulism)'의 라쉬 타일러(25) 편집장이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타일러 편집장은 지난 7월 창간된 '서울리즘'을 알리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는 "아직 초창기라서 일단 잡지를 많이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이자스민 의원은 다문화 1호 국회의원으로 한국 생활을 하는 외국인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책을 만들기 위해 힘쓰시는 분이라 서울리즘을 꼭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종합운동장 한편에 마련된 프리마켓 부스들을 돌아다니며 서울리즘 홍보에 열을 올렸다.

줄다리기로 시작된 체육대회는 축구, 농구, 크리켓, 피구 등으로 이어졌고 참가한 학생들은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임했다.

체육대회가 있기 며칠 전, 기자들은 여의도의 식당에서 외국인 유학생 세 명과 식사를 함께했다. 계란말이, 어묵볶음, 장아찌 등 토종 반찬이 가득한 상을 앞에 두고도 어색함은 없었다. 시카고대학을 졸업한 타일러씨, 성균관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고 한국에 온 지 4년차인 중국인 왕소(22)씨, 고려대 철학과생이며 이제 한국 생활 2년차를 맞는 중국인 반연문(21)씨 모두 외국인에겐 짜고 생소할 수 있는 반찬들을 맛있게 먹으며 유창한 한국말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국적이 제각각인 이들은 한국어 잡지 '서울리즘'을 함께 꾸려나가고 있는 동료이다. '국제학생 잡지'를 표방하는 서울리즘(seoulism.tistory.com)은 타일러씨가 지난 7월 창간한 잡지로 현재 12명의 집필진과 3명의 편집 임원으로 구성돼 있다. 창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지원금을 마련하지 못해 종이 잡지로는 발간되지 않고 있지만 온라인 홈페이지에는 꾸준히 글이 올라오고 있다. 서울리즘의 기자들은 한국인 남자가 보는 외국인 남자, 중국과 한국의 기숙사 문화 차이, 한국 포장마차 체험기 등 외국인의 입장에서 한국을 바라본 글이나 한국 생활을 하며 느꼈던 점 등을 자유로운 에세이 형식으로 써서 올리고 있다.

타일러씨는 "한국에 온 외국인 유학생들 사이의 이렇다 할 커뮤니티도 딱히 없고 한국 친구들과의 소통에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잡지를 창간했다"며 "서울리즘이 유학생들에겐 소통의 장이 돼주고, 한국 친구들과는 한글로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매개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잡지 창간 멤버를 모집하는 데에는 철저히 발로 뛰는 노력이 필요했다. 타일러씨는 친분이 있던 외국인 유학생 친구들에게 직접 제안하기도 하고 각 대학 국제처에 공고를 올려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또 가지고 있던 유학생 메일 리스트에 일일이 메일을 보냈다. 메일을 정말 끝없이 보내봤다는 타일러씨와 동료들의 노력 덕분에 서울리즘은 현재 일주일에 한 번씩 회의를 거쳐 각 집필진당 1~2개의 글을 쓰는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 "중국이 경쟁이 치열한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한국에 와서야 진정한 치열함이 뭔지 알았다"

한국 유학 생활 2년차에 접어든 타일러씨는 말투는 물론 사소한 제스처 하나마저 한국인과 같을 정도로 '한국 물'이 제대로 들었다. 그런 그도 "한국인들과 어울리고 소통할 기회가 부족하다"며 외국인으로서 겪는 소외감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유학생들이 쓰는 학교시설도, 듣는 수업도 따로인 경우가 많아 한국인 커뮤니티에 흡수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왕소씨는 반대로 "대학 동아리의 가족적인 분위기와 단결력에 크게 놀랐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가 중국의 개인주의적인 대학문화와 대조적이라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다.

반연문씨 역시 "같은 과나 동아리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는 것이 정말 즐겁다"며 대학생활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는 내내 즐거워했다. 그는 나이로 인간관계의 위아래를 따지는 한국문화에도 적응한 듯했다. 선배들을 '언니' '오빠'로 부르거나 후배들에게 '언니' '누나'로 불리는 것이 이제는 편해졌다고 한다.

이런 그들도 처음에는 한국에서 적응기간을 겪었다. 왕소씨는 서울에 오기 전 충북대와 부산대에서 각각 6개월씩 한국어를 공부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식당 아줌마들이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줘 한국 특유의 정(情)을 느꼈다. 반연문씨 역시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중국이 경쟁이 치열한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한국에 와서야 진정한 치열함이 뭔지 알았다"고 했다. 자녀를 사립유치원에 보내려다가 불합격 통지를 받고 유치원 앞에서 우는 엄마들, 늦은 밤까지 교복 차림으로 학원을 전전하는 학생들, 취업난을 뚫기 위한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는 대학생들까지….

미국에서 학부과정을 마친 타일러씨는 미국과 다른 한국 대학의 강의 방식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예컨대 "강의 중 토론을 하면 학생들끼리 자유롭게 설왕설래(說往說來)하도록 두고 교수가 지켜보는 미국 대학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교수가 학생의 의견을 받고 다른 학생에게 반문하는 식의 토론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토론 방식을 '논어(論語)에서 공자와 제자들이 대화하는 것 같다'고 표현한 그는 여기에 적응하기까지 다소 답답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들의 다양한 활동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띈 것은 북한과 관련된 활동이다. 세 명의 유학생 중 두 명은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심각성을 느끼고 있다. 타일러씨는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부터 북한 인권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접했다. 그는 "국제학 전공 학생으로서 화면을 통해 보여지는 북한의 현실이 매우 안타까웠다"며 "때문에 한국에 들어와 남북어울림학교라는 곳에서 탈북자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했다"고 말했다. 탈북자 학생들과 직접 만나보고 얘기를 나눠본 타일러씨가 탈북 대학생들의 현실에 관해 진지하게 말을 이어가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북한은 닫힌 나라' '북한 주민들은 굉장히 폐쇄적일 것이다' 등 편견을 갖고 있었다는 그는 나중에 오히려 북한 학생들에게 한국 학생들보다 더 큰 동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도 '이방인' 같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북한 학생들과는 '이방인'으로서의 공통점 덕분에 더 쉽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고. 미국인 타일러씨와 탈북 대학생들은 한국 사회에서 똑같이 '외국인' 같은 지위를 부여받고 실감하고 있던 것이다.

반연문씨도 '북한인권시민연합'이라는 단체에서 10월 16일로 예정된 탈북청소년을 위한 뷰티플드림콘서트의 홍보단으로 일하고 있다. 그 역시 "탈북청소년들이 우리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공감했다"며 "이를 위로하고 그들과 소통하기 위한 콘서트 홍보단의 일원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경영학도인 왕소씨는 여느 한국 학생들처럼 대기업 취업을 목표로 두고 있다. 타일러씨의 목표는 지난 7월 창간한 잡지 서울리즘을 비영리단체로 등록시키는 것이다. 타일러씨는 "서울리즘을 '단순히 유학생들이 글 쓰는 잡지'를 넘어 소수자들과 주류 한국인들 사이의 벽을 허무는 데 일조하는 매체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반연문씨는 드라마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 더 많은 기사는 2013년 10월 14일 발매할 주간조선 2277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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