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장수풍뎅이를 사줬다, 내 직업이 달라졌다

2013. 10. 8. 20:4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나는 농부다] 황규민 곤충하우스 대표

농사를 농사라 부르지 못해 속앓이를 해온 농부들이 있다. 농작물 대신 곤충을 기르는 사람들, 곤충하우스 대표 황규민(53)씨는 그중 하나다. 그의 농장은 대전광역시에 속하긴 하지만 유성구 성북동의 한적한 시골에 있다. 버스 종점에서도 자동차로 십여분을 더 달려가야 한다. 마중 나온 황씨가 상점에서 바나나 한 상자를 사서 자동차에 실었다. "곤충 멕일 거"라고 했다.

회사에 다니다가 근속 10년을 채우던 날 장사를 하고 싶어 사표를 썼다. 한때 여러 곳의 화장품 대리점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사기를 당해 모든 것을 잃었다. 곤충 농사라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안겨준 이는 그의 아들이었다. 2001년 초등학생이었던 아들이 장수풍뎅이를 사달라고 했다.

부자가 이내 장수풍뎅이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아들과 함께 키운 장수풍뎅이가 번식을 거듭해 집 베란다가 온통 사육장이 됐다. 무수히 불어난 장수풍뎅이를 친구들에게 직접 팔아보라고 권했지만 아들은 곤충 사육을 취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직접 나섰다.

처음에는 가정집을 빌려 사육장으로 사용하다가 2003년 빚을 내 이곳에 농지 500평을 매입하고 건물을 세워 곤충 농사에 전념했다. 대전의 대형 할인마트에 정식으로 곤충 매장도 냈다. 그는 직원 둘과 함께 농장을 맡고, 아내 김영희(51)씨가 매장을 운영한다.

곤충은 종류마다 유충에서 성충에 이르기까지 먹이와 적정 온도 등이 모두 다르다. 남방형 곤충인 장수풍뎅이는 사슴벌레보다 5도쯤 높은 25~29도를 유지해줘야 잘 번식한다. 장수풍뎅이는 오륙십 마리를 한 통에서 키울 수 있지만 사슴벌레는 공격성이 강해 애벌레부터 한 마리씩 따로 키워야 한다.

곤충 농사가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농장 일에 손이 익어가던 2009년 한 직원이 일하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졌고, 넉 달 뒤에는 농장에 불이 나 한순간에 잿더미가 됐다. "건물은 다시 지으면 되지만 전재산이자 생명인 곤충이 다 죽어버렸으니…." 다행히 농장이 보험에 가입돼 있어 재기할 수 있었다.

수요에 비해 곤충 농업이 지나치게 비대해진 것도 문제다. 황 대표가 처음 곤충 농사에 뛰어든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곤충을 판매하는 곳이 스무 군데 정도였다고 한다. 농장은 딱 두 군데밖에 없었다. "홈페이지를 만들어 놓으니 하루에 택배가 100개씩 나갔죠. 한 달 매출이 7500만원이나 됐어요. 장차관이 안 부러웠죠.(웃음)"

그런데 2006년 무렵 곤충 취급 업체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기 시작했다. 젊은층의 온라인 쇼핑몰 창업이 잇따라, 지금은 100여곳에 이른다. 그는 우리나라 애완 곤충 시장이 포화상태에 들어섰음을 알았다. 곤충을 애완용에서 식약용으로 판매하는 데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풍뎅이 번식력, 바로 이거야!2년뒤 농장과 매장을 냈다화재 등 한고비 위기를 넘자이번엔 경쟁업체가 늘었다애완용 말고 식용으로 판다면?곤충 독성검사는 진행중이지만문제는 식품코드 등록식약처 지원이 절실한 이유다

문제는 식품의약품안전청(현 식약처)의 규정(식품공전)이었다. 곤충의 식품코드가 등록돼 있지 않아 식용으로 판매하는 게 법적으로 불가능했다. 여운하 장수풍뎅이연구회 회장, 백유현 나비마을 대표 등 곤충 농업의 초창기 멤버들과 함께 식약용 곤충 농업의 활로를 개척하는 작업에 뛰어들었다. 경희대 등에 곤충식(食)의 효능에 대한 연구도 의뢰했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예전부터 메뚜기는 물론이고 초가지붕에서 발견되는 굼벵이 등을 구워 먹어왔다"고 말했다. 흰점박이꽃무지굼벵이를 이용해서 만든 동충하초는 시장에서 널리 판매되고 있다.

그가 속한 한국곤충산업협회가 국회의원, 대학교수, 농촌진흥청 당국자 등의 도움을 받아 마련한 곤충산업법이 2010년 국회를 통과했다. 황 대표는 "2010년의 법 통과 이전에는 곤충 농부들이 값싼 농업용 전기를 사용할 수 없었고 과세 혜택도 받지 못했다"고 당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남은 과제는 식품코드 등록이에요. 곤충이 식약용으로 안전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인체독성검사를 해야 하는데 민간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거든요."

현행법상 식약용으로 제조와 판매가 가능한 곤충은 누에 번데기와 메뚜기뿐이다. 농촌진흥청도 적극적이다. 이미 2011년부터 갈색거저리, 흰점박이꽃무지, 장수풍뎅이에 대해서도 식품공전 등록을 위한 독성검사를 시작했다. 국립농업과학원 곤충산업과의 윤은영 박사는 "갈색거저리는 이미 독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고 보고서 작성만 앞둔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하루빨리 식약용 곤충 시장이 정식으로 열리길 바란다"며 식약처가 곤충 산업에 대한 관심을 갖고 식품코드 등록을 서둘러 줄 것을 기대했다. 그는 "곤충 농사가 농업의 마지막 블루오션"이라고 강조하면서, 정부에서 강조해온 녹색성장의 동력 또한 곤충 농업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곤충을 기르는 데 필요한 톱밥은 참나무나 버섯 재배에서 버려지는 것들을 재활용하는 천연 재료이다. 곤충 농업은 겨울철 곤충의 동사를 막기 위해 에너지를 쓰는 것 말고는 농약조차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산업이다.

유럽의 네덜란드와 미국 등지에서는 곤충의 식용화를 공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축산업은 곡물사료와 물 부족,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의 대량 배출로 인해 점점 더 유지하기 힘든 환경이 돼가고 있다. 곤충식은 육식을 대신해 단백질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곤충식은 자원의 효율적 사용 측면에서 육식보다 훨씬 우위에 있다.

"소고기 1㎏을 생산하는 데 곡물이 거의 10㎏ 가까이 투입되는데 곤충 1㎏을 생산하는 데는 먹이 1㎏만 있어도 충분해요."

곤충은 애완용이나 식용 말고도 쓰임새가 아주 넓다. 식물의 꽃가루받이(화분)를 매개하는가 하면 유해곤충의 천적으로도 활용된다. 애완곤충으로 인기가 높은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 외에, 귀뚜라미나 거저리처럼 파충류나 조류의 사료로 쓸 수 있는 곤충도 많다. 밀기울이나 보릿가루, 그리고 약간의 물만 있다면 작은 공간에서도 가능한 것이 곤충 농사이다. 현직에서 은퇴한 고령층이나 종잣돈이 없는 청년들도 쉽게 시작할 수 있다. 기존 농장들이 확보하고 있는 거래처를 뚫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모든 곡식은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큰다잖아요? 곤충도 마찬가지예요. 고놈들 덕분에 내가 먹고사니 정성껏 돌볼 수밖에 없어요.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는 사업이죠."

대전/글·사진 방글아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의 '농업농촌이슈 보도실습'에 참여하는 학생이 취재했습니다.

<한겨레 인기기사>■ 은밀하게 위험하게…국정원의 '역사 전쟁'정부, '고압송전선 주변 암 위험 증가' 알고도 감췄다'펭귄 킬러'를 막아라…세계 유명 동물원들 '비상'[화보] 집채 만한 파도가…15년 만에 찾아온 가을 태풍 '다나스'[화보] '한국 vs 브라질'…'세계 최강' 그들이 왔다

공식 SNS [통하니][트위터][미투데이]| 구독신청 [한겨레신문][한겨레21]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