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광고 파노라마] [39] "여자·小兒도 집에서 돈 벌자" 80년 전 등장한 '봉투 붙이기'
'여자·소아가 쉽게…수입은 확실 / 일가(一家) 생활의 안정을 득(得)하는 견실한 직업!'
1934년 2월 8일 일본 오사카 의 지요다 상사(千代田商社)가 조선일보에 광고를 내고 새로운 종류의 가정 부업 희망자를 모집했다. 내용은 지대(紙袋·종이봉투) 제조. 자기 집에서 편지 봉투, 서류 봉투 등 각종 종이봉투를 만들면 이 회사에서 '영구히 현금으로 매입'한다는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인형 눈알 붙이기' '목걸이 구슬 꿰기'와 함께 대표적 가정 부업으로 꼽히는 '봉투 붙이기'의 역사가 80년 전 시작된 것이다.
봉투 붙이기는 특별한 자본이나 기술이 없는 사람들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대표적인 일이 되어 갔다. 요즘엔 재단된 종이를 받아다 붙이는 작업만 하는 경우가 많지만 1930년대엔 집에서 간단한 종이 재단기를 갖추고 제작하기도 했다. 지요다 상사는 1934년 봄엔 '월 100원(약 200만원) 이상 돈 버는 일'이라며 이틀에 한 번꼴로 봉투 붙일 사람을 찾는 광고를 냈다.(조선일보 1935년 7월 16일자) 1935년 하반기엔 서너 개의 봉투 제작업체들이 '소자본으로 할 수 잇는 깨끗한 일로서 지대(紙袋) 제조만큼 적당한 것은 아마 업슬 줄 안다'며 앞다퉈 참가자를 모집했다.
식민지 조선의 어려운 경제 현실 속에서 많은 주부는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부업 전선에 뛰어들던 때였다. 일본제 기계들이 이 땅에 들어오면서 닭·토끼 사육 등 농축산 위주이던 가정 부업엔 제조업 바람이 일었다. 아이스케이크 제조기와 함께 '곡물팽창기(뻥튀기 기계)'는 '돈버리 대왕'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워 광고했다.(1935년 2월 2일자)
'봉투 붙이기'는 사회봉사를 위한 자금 마련도 도왔다. 300여명의 빈곤 가정 어린이들을 가르치던 군산학원(群山學院) 관계자들은 1927년 봉투를 붙여 운영 경비를 충당했다.(1927년 6월 24일자) 조선일보가 펼친 문자 보급 운동에 참여한 평북 개천군(价川郡) 어느 마을 유지들은 빈곤 가정 어린이들에게 한글과 산술 등을 무료로 가르쳐 주기 위해 편지 봉투를 만들어 팔았다.(1932년 3월 5일자)
광복 후에도 이 부업은 계속되고 있다. 1960~1970년대엔 가정집에서 잡지 등을 재활용해 만든 종이봉투들을 동네 구멍가게가 포장용으로 많이 사들였다. 비닐봉지 사용이 늘고 개인 간 편지 쓰는 일마저 줄어들면서 한때 봉투 붙이기 부업의 시장이 줄어드는 듯했지만, 쇼핑백과 축의금 봉투 붙이기 일감이 꾸준히 이어지면서 봉투 붙이기 역사는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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