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파행에 발묶인 경제활성화·경제민주화 법안
경제활성화와 경제민주화 등 처리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정기 국회 파행이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돼 국회의 책임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부의 경제활성화 대책들을 보며 투자를 기다리던 기업들은 관련 법안이 오랜 기간 국회에서 발목이 잡히면서 투자를 포기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또 경제민주화 관련 법들도 장기간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비슷한 법들만 우후죽순 상정되고 있어 기업 입장에서는 불확실성만 커지는 상황이다.
◆ "국회 파행에 2조3000억원 투자 계획 무산될 판"
우선 국회를 통과하면 당장 대규모 투자가 이뤄질 수 있는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의 경우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 재계에서도 국회에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 계류된 이 개정안은 손자(孫子)회사가 증손(曾孫)회사를 설립할 때 지분 100%를 보유해야 한다는 현행 규제를 외국 기업과 합작할 때는 지분 50% 이상만 보유해도 되도록 지분 보유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이다. 야당이 일부 대기업에만 특혜를 주는 게 아니냐고 반대하며 지난 7월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이 개정안은 9월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당장 GS칼텍스와 SK종합화학, SK루브리컨츠 등 3개사가 추진하는 2조3000억원의 투자가 집행될 수 있다. 이들 3개사는 일본 기업과 합작해 증손자회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데, 증손회사를 설립할 때 지분 100%를 보유해야 한다는 규제 때문에 합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침체된 주택 시장을 살리기 위해 마련된 부동산 활성화 대책도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정부와 여·야가 논의해야 할 부동산 활성화 대책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重課) 폐지와 분양가 상한제의 탄력적인 운영, 리모델링 수직 증축 허용, 지난 8.28 전·월세 대책에 포함된 취득세율 영구 인하 등이다. 여야간 이견이 큰 사안이기 때문에 다양한 논의가 이뤄져야 하지만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이 밖에도 관광단지에 휴양형 주거시설 신축을 허용하고 학교 주변에 호텔을 지을 수 있게 하는 '관광진흥법'과 벤처기업이 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크라우드펀딩'을 도입하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 역시 국회 정상화만 기다리고 있다.
◆ 국회에서 발목 잡힌 경제민주화법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도 국회에서 발목이 잡힌 상황이다. 신규순환출자 금지법이 대표적이다. 여당이나 야당 모두 신규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것에는 찬성하고 있지만 야당은 기존 순환출자까지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법이 통과되지 않고 있다. 또 기업의 인수합병(M&A)이나 구조조정 시 신규순환출자를 예외로 인정해 주는 조항 역시 야당에서 반대하고 있다.
일감몰아주기 제재 강화의 경우 법안은 통과됐지만 시행령으로 정하기로 한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대한 기준을 국회와 상의해서 정하기로 했는데, 아직 결정이 안 되고 있다. 최근 공정위는 새누리당 정책위원회에 일감몰아주기 대상 기준으로 ▲총수 일가 지분이 상장사는 30% 이상, 비상장사는 20% 이상인 기업 ▲계열사 간 거래가가 정상가 대비 7% 이상 높은 가격으로 이뤄지는 거래로 정했지만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상장사 40%, 비상장사 30%로 완화하고, 거래가 기준도 정상가 대비 10% 이상으로 높일 것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예외조항에서 거래규모도 50억 미만을 200억 미만으로 완화할 것으로 요구한 상태다.
어려운 경제상황 때문에 기업들의 부담 증가를 이유로 국회에서 논의가 제대로 안 되는 법들도 많다. 대기업집단 금융사가 보유한 비금융 계열사 지분의 의결권을 5% 이내로 제한하는 금융사 의결권 제한과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에 대해 손해액의 3~10배 손해배상 청구를 허용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공정거래법 위반행위를 한 명만 제소해도 나머지 관련인도 자동으로 소송의 효력이 미치도록 하는 집단소송제, 불공정 거래행위 등에 대해 일반인도 법원에 행위금지를 청구할 수 있는 사인행위금지청구권 등은 기업의 비용 증가와 소송 남용에 대한 우려로 인해 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된 상황이다. '불공정행위 근절'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정부와 새누리당의 입장을 감안하면 이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이 외에도 하도급법상 보호대상인 수급사업자 범위에 중견기업을 포함하는 하도급법 개정안과 대리점 단체 구성 및 협의권을 부여하는 대리점 보호법 등 역시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가 되지 않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경제민주화 국정과제 중 아직 입법화되지 못한 과제들은 시급성과 파급 효과 등을 감안해 순차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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