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교육의 본질 고민하는 교사 늘었다"

2013. 9. 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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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 정책이 5년차로 접어든 시점에 맞춰 일선 교육현장에 몸담고 있는 교사들에게 혁신학교의 성과와 한계, 향후 전망을 평가하는 자리를 부탁했다. 각각 현직 혁신학교 교사와 일반학교 교사, 그리고 혁신학교 연구 및 정책개발 업무를 맡고 있는 참석자들은 혁신학교가 이전까지의 교육 실험에 비해 눈에 띄는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 동의했다. 하지만 혁신학교가 한국 사회의 교육환경에서 보다 장기적으로 확산되려면 정치적 개입과 관료주의, 사교육 문제 등 다양한 측면의 장애물들을 해결하려는 노력 역시 필수적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경기도교육연구원 정책개발팀장

조현초등학교(혁신학교·경기도 양평군 소재) 교사

전곡중학교(일반학교·경기도 연천군 소재) 교사

먼저 혁신학교 4년의 경험을 평가해 보자. 각 참석자의 입장에서 볼 때 혁신학교 이전과 이후의 차이점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최탁(이하 최)

"혁신학교를 시작할 때 우리 교사들이 처음 던진 화두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과연 행복한가'라는 물음이었다. 4년이 지난 지금 볼 때 가장 큰 차이점은 교사들이 교육의 정의를 다시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단편적 지식이 아니라 아이들의 삶과 연결할 수 있는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소통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차이다. 여러 의견을 모으다 보면 성과와 방식을 두고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2년을 지나고 나서부턴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더라도 소통 자체가 갖는 변화의 힘을 느끼게 된 것이 차이점이다."

이선진(이하 이)

"혁신학교 밖 일반학교에서 근무하며 바라본 시각에서 말하자면, 혁신학교 이전에도 학교현장에 열의와 의지가 있는 교사들이 많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좌절을 겪었다. 그런데 혁신학교란 틀이 생기면서 그동안 좌절된 것들을 표현할 틀과 가능성이 생겼다. 새로운 시도를 막으면 안 되고, 기존과는 다른 걸 해야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전에는 학부모와의 모임이나 가정통신문 발송까지 막았지만 지금은 만나라고 독려한다. 하지만 혁신학교 바깥의 교사들이 불편해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전까지 입시에 맞춘 수업만 했는데, 이젠 저런 분위기가 대세가 되면 이대로 머물러 있어도 될지 위기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혁신교육을 알아보려 기웃대는 교사나, 교육의 본질 또는 교사로서의 생존을 고민하는 교사도 늘었다."

혁신학교의 수업방식은 어떤 특징이 있고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궁금하다.

서용선 팀장

"사고를 성장시키고 집단이 변화를 만든다는 점이 중요하다"

서용선(이하 서)

"형태는 다양하게 표현되지만 핵심은 점수를 어떻게 주는지와 같은 그런 문제보다 협력과 창조성에 바탕을 둔 지식에 있다. 협력수업이라도 그게 강요된 형태라면 잘못이고, 설명이나 암기 중심의 강의식 수업도 있어야 하는 건 분명하다. 또 체험하는 작업을 많이 넣는 것보다 사고를 성장시키고 집단이 변화를 만든다는 점이 중요하다."

"일반학교에선 연차가 낮은 교사는 토론식 수업을 시도하면 시끄럽다며 교장·교감에게 불려간다. 한 교실은 다 자고 한 교실은 수업 때문에 시끄러워도 자는 교실을 오히려 용인하는 정서가 깔려 있다. 일반고교에서 방과후 토론식 수업을 해본 적이 있다. 6개월이 지나 끝난 뒤에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동아리를 만들어 계속하고 싶다고 요청하더라. 학생들이 공부 맛을 느끼면 수업에 몰입한다. 그러나 지금 교육은 편식만 시키고 인스턴트를 먹이는 꼴이다. 좋은 걸 먹이며 식성 바꾸는 과정을 거치면 고3까지 이런 자발적인 공부방식을 이어갈 수 있다."

"초등학교에선 저학년부터 작은 단위로 나눠 수업을 진행한다. 나중에 보면 고교 진학 후에도 초등학교를 자기 학교라 생각하고 청소하러 오는 애들도 있다. 성장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가치관과 꿈이 어떻게 변하는지 추적해오고 있다. 중학교만 들어가도 비전과 현실 사이에서 현실을 수용하는 경우도 많지만, 자기 삶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지는 않았다. 혁신학교와는 다른 환경의 학교로 진학하는 예도 많지만 더 나은 적응능력을 보인다."

최탁 교사

"학생들을 보면서 가치관과 꿈이 어떻게 변하는지 추적해오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혁신학교 정책을 확대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혁신학교를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는 뜻일 텐데, 아직도 남은 걸림돌은 없을까.최

"이전까지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거나, 교장·관료 때문에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 교사의 전문성이 없었던 이유가 더 컸다. 지식전달 중심의 교육구조가 공고하다 보니 이 틀을 벗어난 적도 없고, 다른 그림을 그리기 어려웠던 것이다. 전문성과 확신은 시행착오를 겪고 또 공론화된 장에서 동료들의 불안을 들으며 격려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대개 새로운 아이디어를 불편해 하거나 외면해도 그것이 지속되면 정착할 수 있다."

"혁신학교 정책이 긍정적 평가를 받다보니 무리하게 확장하는 측면도 있긴 하다. 우리 지역의 한 혁신학교는 로드맵을 주도한 교사 2명이 다음해 다른 학교로 옮긴 뒤 결국 만들어놓은 정책을 따라가는 모양새가 됐다. 다른 학교 따라가는 데 급급하지 않고 실정에 맞게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게 중요하다."

"그동안의 정책이 채찍과 당근으로 개별 교사의 변화를 요구했다면 이제야 학교 단위로 교육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고 본다. 의미있는 변화가 나오게 기다려주고, 다른 일반학교의 불편한 시각이 해소되는 데 4년이 걸렸다. 크게 보면 혁신학교를 인정하기 싫은 분위기면서도 한편으론 또 이상하게도 교사들은 혁신학교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공존해 왔다. 현재는 학교의 경계를 넘어서는 변화를 맞을 위치에 온 것 같다."

교육감이 바뀐 서울시교육청을 보면 경기교육청의 혁신학교 정책도 정치적 상황의 영향으로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다.이

"정부의 교육정책과 충돌하기 때문에 혁신학교를 흠집내려는 시도도 있다. 그런 시도에 맞서려고 불가피하게 혁신학교를 서둘러 확산시키는 것도 이해는 하지만 그러면 일반학교 현장에선 아쉬운 점도 생긴다. 어쨌든 무엇보다 학교교육 정상화에 나서야 할 교육부가 특정지역의 교육을 흠집내려는 게 안타깝다. 가끔 교육부와 교육청에서 상반된 내용의 공문이 동시에 내려오면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헷갈린다. '행복학교' 같은 다른 정책들은 혁신학교와 비슷한 점도 많은데 서로 조정·보완해도 되지 않을까."

"경기교육청에서 혁신교육 관련자료를 받아 검토해 자율학교·행복학교 같은 정책이 등장했는데, 비슷한 면도 있지만 껍데기만 같고 실제는 다른 부분도 많다. 근본적으로 교사들이 새로운 정책을 함께 만들며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이 있는지 없는지가 다르다. 좋은 내용이라도 타이틀만 그럴 듯하면 교과과정별 학기 운영을 자율로 맡겼던 자율학기제처럼 실패한다."

"행복학교 같은 정책이 나오는 것은 정치인이나 교수의 의견만 따르다 보니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시스템을 이식하는 것이고, 이건 여전히 교육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았다는 걸 방증한다. 수업의 중심이 되는 교사와 아이들이 만나는 관계나 이들의 성장에 대해선 교육부는 관심이 없다. 그런 정책은 구조적으로 교사를 배제하는 것이고, 단순히 교육에 대한 몰이해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가 깔려 있다."

이선진 교사

"교육부가 특정지역 교육을 흠집내려는 게 안타깝다"

"해외의 좋은 교육 사례를 찾아보니 좋은 건 한국도 다하고 있더라. 그런데 이 학교 찔끔, 저 학교 찔끔 이렇게 하니까 교사도 다른 데서 어떤 정책을 하는지 모르고, 하는 사람들도 이게 뭐가 좋은지를 모른다. 다양한 정책이 시너지 효과를 못내고 서로 불편하게만 하는 것이다. 잘 되고 있는 정책들을 정리만 잘해줘도 되는데, 새로운 정책이 나오면 기존 정책이 뿌리내리기도 전에 밀어내버린다. 정책 과잉의 나라다. 서울처럼 교육감이 바뀌고 또 기존 정책이 흔들리는 상황이 오면 근근이 버틴 혁신학교라는 틀도 무너질 수 있다. 결과가 꽃피기 위해선 한 학교가 10년 정도는 끌고가야 하고, 정부나 교육감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입시 위주의 교육구조가 바뀌지 않고선 혁신학교 역시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수도 있다.서

"혁신학교는 한 학교만이 아니라 교육 전체의 실험이다. 학교는 교장이나 교사의 것이 아니라 국민 세금으로 움직이는 사회적 기관이기 때문에 사회 전체의 흐름과 무관할 수 없다. 거시적인 시스템과 생활세계를 구분하면 혁신학교는 교육을 통해 생활세계를 복원한 사례다. 그렇지만 더 큰 힘을 내려면 시스템과의 대화가 필요하다. 특히 학력·입시 위주 교육관이 변해야 의미가 있다. 학부모 입장에선 자녀가 중학생만 돼도 성적표에 눈이 돌아간다."

이 "사회가 안 변하면 혁신교육도 한계가 있다. 고교로 갈수록 영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일부 혁신학교에서 학업성취도가 더 높다고 나오기도 하지만 그건 핵심이 아니다. 입시와 교육의 두 길을 모두 고민해야 하는데, 경쟁사회란 틀 속에선 혁신학교에 대한 기대도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다는 기대나 환상으로 변질될 수 있다. 특히 어려운 점은 지금은 사교육이 더 영향력이 강하다는 점이다."

"학력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보면 연구 결과 혁신학교의 성적은 일각의 기대만큼 안 나와도 만족도와 같은 다른 지표에선 월등하게 높게 나왔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대립은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지만 교육을 재조직하게 되면 혁신학교의 노력이 사교육을 압도할 것이다. 실제로도 혁신학교 주변 학원은 학교수업을 따라오질 못하니 학교에 문의를 할 정도다. 혁신교육의 흐름은 공교육이 사교육을 압도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지금의 사회가 경쟁사회이고 소외계층에 냉정한 사회지만, 스펙 쌓는 사람이 더 잘 되는 사회상에는 균열이 가고 있다고 본다. 수능이 요구하는 능력을 학교가 못따라가는 것만 봐도 그렇다. 사실 수능은 종합적 사고능력을 요구하는데 현 고교체제는 그런 역량을 키우지 못한다. 교과서 교육은 형식의 표준화만 가능하지만, 혁신교육은 내용 및 과정의 표준화 방안까지 제시한다."

혁신학교를 넘어서는 앞으로의 교육개혁의 대안은 사회구조의 개혁 노력과 함께 나와야 한다는 입장이 많이 나왔다. 구체적으로는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노력이 필요할 텐데.서

"혁신학교가 최소 10년은 가야 한다는 것은 학습생태계의 생존 여부가 10년이면 결정된다는 복잡성 교육이론에 따른 것이다. 교육이 백년지대계라고 하는데 이 100년도 10년의 성과를 보면 알 수 있다. 마을학교나 혁신학년정책 등은 지역에 밀착해 초·중·고 교육을 일관되게 유지해가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핀란드는 오랜 합의의 과정을 거쳐 성공했지만 정치과정을 거쳐 위로부터 시행된 것이다. 한국 교사의 실천운동은 아래서부터 시작된 의의가 있고 그래서 더욱 미래를 낙관할 수 있다."

"혁신학교가 시너지 효과를 내려면 지자체와의 문제도 풀어야 한다. 단체장과 교육감의 성향이 달라도 어느 한쪽만이라도 혁신교육을 이어갈 의지가 있으면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수 있다. 서울시의 마을공동체 정책은 혁신학교와 만나면 더 큰 효과가 나올 수 있을 텐데, 경기교육청도 혁신학교를 정착시키려면 지자체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볼 필요가 있다."

< 진행·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

< 정리·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

<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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