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과서 너무 불친절..쉽고 재밌으면 좋겠어요"

2013. 8. 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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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함께하는 교육] 교육 정보

서울 양재고 역사토론동아리

"50일치의 식량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 혹한의 추위까지 겹쳐 성 안의 궁핍은 날로 심해지고 있습니다. 성 안에 웅크리고 앉아 말라죽을 날을 기다릴 게 아니라 화친을 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청나라 군사가 남한산성 전체를 포위한 상황입니다. 조선에 유리한 외교적 화해를 이끌어내기 힘듭니다. 더구나 여기서 물러난다면 청은 계속해서 무리한 요구를 해 올 것입니다."

격론이 오갔다. 청의 포로로 잡힌 채 노역과 수탈에 시달리는 백성을 돌보려 한다면 마땅히 화친을 해야 한다는 주장과 오랑캐에 불과한 청의 여진족에게 항복한다면 '소중화'라 자부해 온 조선의 근본과 사상마저 무너진다며 항전해야 한다는 반론이 팽팽했다. 17세기 병자호란 당시 '화친'을 내세웠던 최명길과 '척화'를 설파했던 김상헌의 설전이 아니다. 지난 17일 서울 양재고 역사토론동아리 학생들의 '대립토론'이다.

이날 서울 서초구 양재고 역사토론동아리 학생들은 <남한산성>(김훈)을 함께 읽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2명의 발제자가 <남한산성>과 그 배경이 된 병자호란의 역사적 맥락부터 짚었다. 그 후 10명의 동아리원들은 화친과 척화로 나뉘어 '입론'과 '반론', '교차질문'을 주고받으며 370여년 전 남한산성에서 벌어진 역사적 논쟁을 '재현'해냈다.

과거의 논쟁을 빼닮았지만 그대로 '복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학생들은 새로운 논거를 궁리하고, 각자의 논리와 역사적 관점을 세워가고 있었다. 이현지양은 병자호란 당시의 화폐가치를 지금의 기준으로 환산하며 화친과 전쟁의 경제적 유불리를 따졌다. 청이 전리품으로 요구한 황금과 백금 1만냥, 전마 3000필은 현재 가치로 약 730억원이지만, 전쟁을 벌일 경우 군대 유지 비용만도 1년에 약 5000억원 이상이라는 설명이다.

나현채군은 이제 갓 건국한 청나라에 비해 훨씬 강성했던 원나라에 항전했던 고려의 사례를 끌어왔다. 굴욕적 화친은 역사의 기록으로 남아 후대 사람들에게 패배의식만을 심어줄 뿐이며, 설령 나라가 없어진다 해도 민족의 정신만 살아있다면 언제라도 부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발제를 맡은 오승원양은 병자호란 당시의 조선왕조실록을 조사한 후 <남한산성>과 일일이 대조해가며 소설적 허구와 역사적 사실을 가려내기도 했다.

동아리는 지난해 8월 시작됐다. 한 학기에 한 과목을 몰아서 수업하는 '집중이수제'로 한국사 수업을 마친 후였다. 이대규군은 "중간고사 범위가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였다. 범위가 너무 넓은 탓에 깊이 공부할 틈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교실 수업으로는 역사에 대한 갈증을 풀지 못한 당시 1학년 학생들이 동아리의 주축이 됐다. 사건에 따라 짧게는 한 줄, 길어도 반 페이지를 넘지 않는 역사 교과서의 짧은 서술 역시 '불만'이었다.

나현채군은 "재일조선인의 경우만 보더라도 교과서에는 '해방 직후 많은 조선인들이 돌아왔지만, 일부는 일본에 정착하게 됐다'가 전부였다"며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서경식)을 읽으며 '소수자'란 이유로 핍박받아온 재일조선인들의 슬픈 역사를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역사적 사실을 세밀히 들여다보고, 앞뒤 맥락까지 파악한 후에야 역사에 대한 나름의 의미 부여가 가능한데, 교과서만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수박겉핥기식 집중이수제 후넓고 깊게 보고 싶어 시작과거 '복기' 넘어 '관점' 토론역사 대하는 자세 달라지고미래 꿈 새롭게 다지기도

토론할 책은 동아리원들이 돌아가며 정한다. 필요하다고 느끼는 주제들이 각자 다른 만큼 그동안 다룬 책도 다채롭다. 위정자들의 역사 조작과 악용을 고발한 <역사 사용설명서>(마거릿 맥밀런)를 읽으며 이현지양은 '역사를 대하는 바른 자세'를 고민할 수 있었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의 삶을 다룬 <이회영과 젊은 그들>(이덕일)에서 나현채군은 친일파 청산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박민혜양은 근대의 풍경을 신문광고로 조명한 <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김태수)를 펼치며 '광고 피디'의 꿈을 다지기도 했다.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넣자는 주장은 어떻게 생각할까. 찬성 3명, 반대 7명이었다. 나현채군은 "한국사가 서울대를 가기 위한 전략적 선택과목처럼 여겨지면서 공부를 아주 잘하지 않으면 선택하기 어렵게 되어버렸다"며 수능 필수화에 찬성했다. 이현지양은 "수능보다는 대학 필수과목으로 정하는 게 더 낫다"고 밝혔다.

찬반은 또 나뉘었지만 동아리원들의 바람은 하나로 모였다.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역사를 공부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 학생들에게 역사란 대학 진학을 위한 수능 '과목'이 아니라 시대를 뛰어넘는 지혜를 쌓는 '학문'이자 반드시 익혀야 할 삶의 기초인 까닭이다.

글·사진 김영우 기자 kyw@hanedui.com

양재고 역사토론동아리가 추천하는역사 관련 누리집

● 동북아역사재단 www.historyfoundation.or.kr

● 국사편찬위원회 www.history.go.kr

● 역사채널e home.ebs.co.kr/historye

● 한국고전종합DB db.itkc.or.kr

● 송영심의 역사교실 cafe.daum.net/edusonghistory

● 국립중앙박물관 www.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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