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타워] 전세대란 풀려면 발상 전환해야
주거 약자 보호 정책 우선순위 둬야
전세대란이 점입가경이다. 전셋값은 치솟고 있지만 매물이 없어 수요자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미친 전셋값'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계약만료를 앞둔 세입자들은 밤잠을 못 이루고 있고, 서울을 떠나 수도권 외곽으로 밀려나는 전세난민이 늘고 있다. 상황이 이런 탓에 기존 세입자들은 전셋값이 더 오르기 전에 재계약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집이 완공되기도 전에 전세계약을 하는 기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전셋값 고공행진의 직접 원인은 수급난이다. 저금리 여파로 집주인은 월세를, 세입자는 전세를 선호하다 보니 공급이 수요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온전한' 전셋집 찾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11주 연속 떨어진 반면 전셋값은 51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전셋값 급등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고착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지금 집을 사면 손해"라는 인식도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문제는 전셋값 급등을 막을 수 있는 뾰족한 해법이 당장은 없다는 점이다. 전세대란을 해소하려면 수급 불일치라는 근본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전세물량이 늘어나려면 전세를 끼고 주택을 사려는 다주택자가 많아져야 한다. 하지만 부동산시장 침체로 집값 상승 기대 심리가 뚝 떨어졌고,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가 남은 탓에 이마저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는 '목돈 안 드는 전세' 제도를 처방전으로 내놨다. 집주인이 집을 담보로 전세보증금을 조달하고 세입자는 이자만 내는 것, 전세 세입자를 대상으로 보증금 상환 청구권을 집주인 대신 은행이 갖고 주택금융공사가 보증하는 두 가지 유형이다. 그러나 세입자가 넘쳐나는데 집주인이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마련해주는 불편을 감수할지 의문이다. 현장에서는 "전세물건 자체가 없는데 대출상품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평가절하하고 있다.
채희창 산업부장 |
따라서 이제는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전세는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제도로 그간 집주인, 세입자에게 환영받았다. 집주인은 전세금을 활용해 집값 상승이라는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었다. 월세가 부담스러운 세입자에게도 원금을 돌려받는 전세는 매력적이었다. 집값 상승 기대가 있어 양쪽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집값이 계속 떨어지고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최근에는 집값은 물론 월세도 떨어지는데 유독 전셋값만 오르고 있다. 전셋값이 집값의 60%가 되면 전세수요가 매매수요로 전환되는 통설도 안 먹히고 있다. 이에 더해 과거와 달리 집을 살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전세로 눌러앉는 경우가 많다. 자기 집을 놔두고 학군 등 환경이 좋은 곳에서 전세를 사는 가구도 늘고 있다.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려는 집주인들이 늘면서 전세주택은 반전세나 월세주택으로 변하고 있다. 이 같은 추세라면 월세 전환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막기 어렵다.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지난해 전국의 전세는 21.7%, 월세는 21.6%로 비슷하다. 특히 수도권 주택의 월세 거주 비율은 23%에 달해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6년 이래 사상 최고치였다. 서울은 4가구 중 1가구꼴이다.
정부는 달라진 임대차시장에 걸맞은 복합 처방전을 내야 한다. 먼저 취득세를 인하하고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제도를 없애 전세 수요를 구매 수요로 유도하는 게 시급하다. 다주택자 양도세 폐지, 분양가 상한제 폐지 법안은 가을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또 전세시장을 안정시키려면 집주인에게 전셋값을 많이 올리지 않아도 될 만한 '당근'를 줘야 한다. 전세보증금의 소득세 비과세도 고려할 만하다. '월세 시대'에 맞춰 손봐야 할 것도 수두룩하다. 저렴한 전월세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것은 기본이고 월세 임대료 보증제도, 월세 소득공제 확대, 임대사업자 지원방안 등도 모색해야 한다.
전세대란은 시급한 민생문제다. 내집 마련은커녕, 몸을 누일 곳 찾기도 힘들다는 서민들의 한숨 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산층을 살리겠다'고 약속한 박근혜정부는 주거약자 보호를 정책 최우선 순위에 둬야 한다. 10월 재보선, 내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채희창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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