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MBN 특집 다큐 2부작 '대한민국 영부인'..퍼스트레이디의 삶과 사랑을 돌아보다

2013. 8. 7.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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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 국경을 초월한 뜨거운 사랑

"이 자리에 앉아도 되겠습니까?" 스위스 제네바 작은 식당에서 빈자리에 앉아도 되냐는 노신사의 말에 "예스"라고 대답한 30대 오스트리아 여성 프란체스카. 그녀의 승낙은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부인자리에 대한 승낙이 되었다.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부부의 연을 맺은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 한국의 초대 대통령 부인이 서양인이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가난한 동양 남자와 결혼을 감행한 프란체스카 여사가 어떤 여성이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승만 대통령을 향한 프란체스카 여사의 순애보와 그녀의 성장배경에 대해 알아본다.

바람 잘 날 없었던 경무대 안주인

외국인 여성으로 한국의 최초 영부인이라는 영예를 누릴 수 있었던 프란체스카 여사. 하지만 낯선 이국 땅에 익숙해지기 전에 6.25 전쟁과 4.19 혁명 등 역사의 소용돌이를 겪어야 했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능숙한 영어솜씨로 발 빠르게 외국에 협조를 요청하는 등 대통령 부인으로서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으나, 4.19 혁명으로 대통령 하야와 함께 대통령 부인 자리를 내려 와야 했던 프란체스카 여사. 그리고 그녀가 친자식처럼 아끼던 양자 이강석을 잃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비극적 운명을 겪어야 했던 프란체스카 여사의 나날을 되돌아본다.

윤보선 대통령의 부인 공덕귀 여사, 신여성에서 영부인으로

고등학교 시절 영어, 피아노, 수영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소질을 보이며 YWCA 학생회장을 맡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해왔던 공덕귀 여사. 그녀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일본 유학을 마치고 미국 프린스턴 대학 입학 허가서까지 받은 신여성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여성이 혼자 미국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꿈조차 꾸지 못했던 일로, 진학이 무산되고 당시 서울시장이자 부인과 사별한 윤보선 대통령과 결혼을 하게 된다. 명문가로 시집왔지만 답답하기만 했던 결혼생활과 시집생활. 시대를 앞서간 신여성에서 명문가 며느리가 된 공덕귀 여사의 속마음을 들춰본다.

여성 지도자의 날개를 달다

청와대에서 시어머니까지 모시며 조선시대 여인의 삶을 살았던 공덕귀 여사. 하지만 외국 귀빈이 올 때면 유창한 영어실력을 발휘하며 청와대 안주인으로서 외교 역할을 톡톡히 수행할 수 있었던, 시대를 앞서간 진취적인 신여성이었다. 가부장적인 분위기 탓에 대통령의 부인은 외부에 활동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던 그때. 시대와 엇박자로 살 수 밖에 없었던 그녀는 5.16 직후 윤보선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를 나와야 했고, 퍼스트레이디 삶을 반납한 후 여성운동가로서 활발한 삶을 살게 된다.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 외유내강의 영부인

옥천여중 교사로 재직했던 육영수 여사는 전쟁이 일어나자 부산으로 피난을 갔고, 그곳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맞선으로 만나 결혼을 하게 됐다. 1961년 5월 16일 아침, 집을 나서는 당시 박정희 소장을 "아이들 숙제를 봐주고 나가요"라며 불러 세운다. 직감적으로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것을 예상한 그녀는 남편이 집을 나서자마자 남편에게 받은 연애편지 등을 불살라 버렸다. 훗날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소박한 여인이었지만 군인의 아내로서 강인하고 대범한 모습을 보였던 육영수 여사. 외유내강 그녀의 젊은 시절을 찾아가 본다.

소리로 듣는 목걸이

대통령 부인인 육영수 여사가 착용한 목걸이는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아닌 라디오 목걸이였다. 언제 어디서나 라디오 방송을 수시로 들으며 민심을 살폈던 그녀는 대통령인 남편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자주 전달해 '청와대 내 야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남편에게 제동을 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 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육영수 여사 하면 떠올리게 되는 올림머리. 과연 어떻게 탄생되었을까? 육영수 여사 헤어스타일에 대한 비화와 함께 역대 영부인들의 헤어스타일과 그 속에 담긴 에피소드를 만나본다.

최규하 대통령 부인 홍기 여사, 남성보다 대담한 그녀의 모습

1980년 전두환 대통령 취임식. 최규하 대통령이 건넨 안내 책자를 "탁" 집어 치운 홍기 여사.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한 그녀의 모습이 생중계로 보여지며 사람들에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일본 명문대에서 공부한 엘리트 최규하 대통령과 무학인 홍기 여사의 학식 차이가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홍기 여사는 대대로 한학자 집안의 자제로 어릴 적부터 한학을 배워왔고, 게다가 일찍이 외교관이었던 남편을 따라 외국생활을 오래 해 외국어에도 아주 능통했다. 소박한 모습과는 달리 학식과 지식이 넘쳤던 홍기 여사의 알려지지 않은 면모를 발견해 본다.

영부인이자 내조의 여왕

공직자의 아내로서 청렴결백한 삶을 살았던 홍기 여사. 최규하 대통령이 총리 시절에도 한 번도 일하는 사람을 두지 않았던 그녀는 남편 빨래를 어떻게 기계에 맡길 수 있냐며 손수 빨래를 자청했다. 게다가 콩나물 몇 그램까지 꼼꼼하게 가계부에 적을 만큼 알뜰 내조를 펼쳤다. 그녀가 알츠하이머에 걸리고 최규하 대통령은 6년간에 걸친 병 뒷바라지를 한다. 홍기 여사가 꼼꼼하게 가계부를 적었듯이, 병간호 일지를 꼼꼼하게 적으며 홍기 여사 병간호에 열심을 보였던 최규하 대통령. 대통령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홍기 여사의 말년을 되돌아본다.

[글 이승연 기자 자료제공 MBN]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390호(13.08.13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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