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 검색하는 여자, 리뷰 남기는 남자

2013. 7. 26.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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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레드기획] (2013.07.29 제971호)두 편의 논문으로 살펴본, 성 경험이 '위험한 일탈'이 아닌 시대의 모텔 사회학러브호텔은 부티크모텔로, 밤의 일탈은 낮의 향유로, 선택권은 남성에서 여성으로

"최근 대학생들 사이에 'MT 간다'는 말은 '모텔에 간다' 는 말의 줄인 말이라고 한다."

이나영 중앙대 교수(사회학)가 2012년 발표한 논문 '욕망의 사회사, 러브모텔'에 나오는 말이다. 그만큼 모텔에 가는 것이 일상의 일부가 됐다는 뜻이다. 대학생 이민호(24·가명)씨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처음 모텔 사이트를 접했다. 친구가 알려준 앱을 내려받으니 주변 모텔의 가격과 정보가 한번에 나왔다. 언젠가 모텔 사이트 광고도 본 기억이 났다. 실제 지난해 "데이트를 준비해라, 성공할 것이다"라는 모텔 정보·예약 사이트 '야놀자'(www.yanolja.com) 광고가 지하철 내부에 붙기도 했다. 그는 자취방이 있지만, 여자친구와 1~2주에 1번 정도는 모텔에 간다. 가끔은 1박을 하기도 하지만 주로 낮에 간다. 적은 비용으로 만족도가 높기 때문이다. 그는 "2만원이면 5~6시간 있을 수 있다" 며 "좋은 욕조에 입욕제도 있어 쉬기에 좋다"고 말했다. 영화 보고 커피 마시고 하는 것보다 비용이 오히려 적게 든다.

영화 보고 커피 마시는 것보다 적은 비용

6개월 사귄 여자친구와 처음 모텔에 갔을 때도 낮이었다. 데이트를 하다가 "우리 한번 가볼까" 해서 갔다. 지금은 여자친구도 "어디 모텔이 좋다더라"고 말할 정도다. 갈 곳을 고를 때, 모텔 사이트 후기도 참고한다. 그가 즐겨 가는 모텔은 동네에 1호점과 2호점이 있는데, 후기를 보니 2호점 평가가 더 좋아서 그곳에 간다. "처음에 모텔 하면 이미지가 좋지는 않았는데, 심지어 대기할 때도 팝콘과 커피가 준비돼 있고, 컴퓨터도 있어 뻘쭘하지 않아서 좋았다"고 말했다.

지역별·테마별·가격별 모텔을 소개하고 예약 하는 '모텔 가이드'(www.moga.co.kr)에 들어가면, 모텔 이용 후기를 읽을 수 있다. 대전에 있는 한 모텔에 대한 후기는 "전 부산 살고 여친은 서울 살아서 대전에서 만나곤 한다"며 욕조 사진에는 "지중해 느낌이 난다", 창문 사진에는 "별장 느낌이 물씬" 같은 경험담이 붙어 있다. 여기엔 쿠폰을 내려받아 갖고 가면 할인이 되는 모텔들이 있고, 사이트에서 나눠주는 콩으로 진행하는 제휴호텔 쿠폰 경매도 있다. 운이 좋으면 무료숙박권을 얻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회원이 되면 숙박비를 할인해주는데, 특히 주중 대실료가 저렴하다. 야놀자는 심부름 대행 서비스도 한다. "입실 뒤 편의점으로 나가는 불편이 없으시도록 호텔 야자 직원이 인근 편의점 심부름을 대행해드립니다." 심지어, 세탁물 서비스도 한다.

이안나 부산대 여성연구소 전임연구원이 2012년 발표한 논문 '모텔 이야기: 신자유주의시대 대학생들의 모텔 활용과 성적 실천의 의미 변화'는 부산 지역 대학생 12명을 상대로 한 심층면접에 기반하고 있다. 논문은 "과연 지금의 대학생들에게도 모텔은 '불륜의 장소'이며 연애 과정에서 성경험은 '위험한 일탈'로 받아들여지고 있을까?"라고 묻는다. 먼저 여기에 나온 대학생들의 모텔 첫 경험을 들어보자.

"오빠랑 둘이서 문 열고 들어서면서 동시에 '와~! 여기서 살아도 되겠다' 했어요. 깔끔하고 혼자 지내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넓었어요."(여성 A)

"요즘 모텔은 호텔보다 좋아요. 여자친구에게 모텔 가자고 꼬일 때도 저는 이런 걸 막 이야기해요. 놀이동산 보다 재밌다는 식으로. 놀러가는 거라 생각해라. 그러면 막 웃으면서 '진짜 가' 하고 물어요. 너랑 자고 싶다고 대놓고 말하면 저를 검은 짐승으로 보거든요. … 솔직히 모텔 한번 가려면 할 일이 많아요. 사전에 인터넷 검색해서 거사 치를 장소에 대한 정보를 모아요. …'야놀자'라는 모텔 포털 사이트 회원이기 때문에 회원이라고 말하면 1만원 깎아주는데 여자친구랑 갈 때는 원래 요금 다 주고 들어가요. 틈틈이 준비해왔다는 게 들키면 쪽팔리고 쿠폰 쓰면 좀 찌질해 보이고, 이제는 여친이 먼저 말해요. '어디어디 좋다더라' 하면서."(남성 A)

숙·식·성·유가 결합된 공간으로 재구성

1990년대 도심 외곽에 위치한 러브모텔과 달리 2000년대 중반 도심에 세워져 최신형 컴퓨터, 고급스러운 욕조, 독특한 디자인을 갖춘 숙박업소를, 이나영 교수는 논문 '욕망의 사회사, 러브모텔'에서 '부티크 모텔'이라 부른다. 그는 "이전에 러브호텔이 섹스의 탈일상화, 초현실화에 기반하고 있다면 현재 부티크모텔은 놀이와 쾌락의 공간으로 변모했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숙(宿)과 식(食), 성(性)과 유(遊)가 결합된 공간으로 재구성"됐다는 것이다. 이안나 연구원도 최근의 모텔을 "놀이의 장소고, 휴식의 장소고, 대화의 장소다"라고 규정한다.

"우리 커플은 편해서 갑니다. 영화관이나 DVD방보다 훨 편하거든요. 추우면 히터 빵빵하게 틀고 더우면 에어컨을 만땅으로 켭니다. …식당을 찾으러 다닐 필요도 없어요. 바로 중국집이나 치킨집, 피자집에 전화 한 통이면 끝입니다."(남성 B)

여성의 데이트 주도권이 강해진 현실도 모텔산업의 변화에 투영돼 있다. 궁전 모양 등 키치적 외양에 신경썼던 1990년대 러브모텔들 대신에 내부 인테리어에 주력한 부티크모텔로의 변화는 이런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섹슈얼리티의 변화를 '러브모텔'을 통해 분석한 이나영 교수의 논문은 숙박업 관계자의 증언을 전한다.

"남자들은 어디를 가나 상관이 없어요. 왜냐면 목적은 따로 있기 때문에…. 여자들은 처음 들어가는 곳이라든지, 아니면 자기가 인상에 많이 남기 때문에 그 사람 그 남자하고의 관계에서 내가 어떠한 곳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그걸 소중하게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여자가 가자고 하는 데를 간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여자를 잡아야 하는 거죠. … 나중에 자주 다니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여자가 할인을 받기 위해서 그런 것들을 꼼꼼하게 따지지. 남자는 그런 거 별로 안 따져요."(모텔 사이트 관계자)

모텔 사이트 관계자 "여자를 잡아야 하는 거죠"

이안나 연구원은 신자유주의 시대, 사랑도 능력이 되고 사랑만이 유일한 안식처가 됐다고 지적한다. "세상 살이가 나날이 각박해지고, 지금까지 믿었던 일체의 규범들이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의 사랑만이 대안이 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여전히 성규범의 눈치를 보면서도 규범을 재구성하는 실천을 하기도 하는데, 이런 공간으로 모텔을 주목한다. 외박을 하려면 부모의 눈치를 봐야 하고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들에게 대실은 현실적인 선택이다. 이안나 연구원의 논문은 대학생들이 "부모와 부딪치는 것은 '쓸데없는 저항'이며 그렇다고 모텔을 포기하는 것 역시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한다"고 전한다. 이러다 생기는 에피소드도 있다. "순간이동하고 싶다"는 여자친구와 함께 들어간 무인모텔에서 생긴 에피소드가 이안나 연구원의 논문에 담겨 있다.

"진짜 쪽팔리는거는… 처음에 무인모텔 갔는데 입구에 현금 넣는 기계가 있는데 거기에 돈이 안들어가서 결국 주인을 불렀어요. 또 방에 들어갔는데 아무리 찾아도 콘돔이 안보여서 주인 아저씨한테 말했더니 와서 찾아주고 갔어요. 결국 돈 더 주고 비싼 무인모텔을 간 이유가 없어진 거잖아요. 제대로 쪽팔렸죠."(남성 C)

이렇게 들어간 곳에서 젊은이들은 친밀감을 나눈다. 모텔은 단지 성을 나누는 공간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누워서 대화를 하고 영화를 보고 게임을 하는 곳이다. '모텔 가이드' 등에는 파티룸을 갖춘 모텔들이 따로 소개돼 있다. 가끔은 친구들과 스터디를 하는 공간으로 모텔은 쓰인다. 그렇게 우리들만의 방이었던 모텔도 일상이 되면 '오래된 연인'의 피로감이 몰려드는 장소가 된다. 이안나 연구원의 논문은 그렇게 모텔이 일상이 된 커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모텔이 일상이 되고, 그 관계가 일상이 되고, 더 이상 사랑이 없어질까봐 두려워요. 두려운데 그래도 아직 모텔에 가긴 가요. 하지만 자주 이용할수록 만족은 예전 같지 않아요."(여성 B) "제대하고 나니까 공부도 해야 하고 용돈을 달라 할 수 없으니까 편의점 알바도 시작했는데 여친이 짜증을 잘 내요. 그래서 월급을 한 달 꼬박 모아서 모텔 잡고 와인 사고 했는데… 그날 대판 싸웠어요. '또 모텔이냐' 그러면서 막 화를 내데요. 나는 자기를 위해서 없는 시간 쪼개고 10만원이라는 거금을 썼는데… 면회 왔을 때는 후진 여관에서도 재밌게 지냈는 데…."(남성 D)

모텔 빈도수와 연애의 종말

그래서 이안나 연구원은 "대학생들은 연인과 모텔을 찾는 빈도수가 확연히 떨어지게 되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헤어질 때임을 직감한다"고 전한다. 주변화된 성의 공간으로 여겨졌던 모텔이 일상화되는 과정을 추적한 이나영 교수의 논문은 최근 젊은이들의 모텔 이용을 "더러움의 (밤의) 공간으로 추방되었던 (남성중심적) 육체적 욕망을 재전유하는 다양한 공간적 실천의 가능들을 보여줌으로써 여관을 새롭게 의미화하고 적극적으로 재구성한다"고 분석했다. 이렇게 순응과 위반 사이에서 우리들의 모텔은 진화하고 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모텔의 역사'불륜' 이미지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이나영 중앙대 교수(사회학)의 논문 '욕망의 사회사, 러브모텔'은 여성주의 입장에서 여관의 역사적 변화 과정을 섹슈얼리티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 논문이다. 여기엔 장급여관, 모텔, 러브호텔, 부티크모텔 등으로 변화해온 모텔의 역사가 녹아 있다. 그의 논문에 나온 역사를 간략히 정리했다.

'모텔'은 이름은 미국에서, 내용은 일본에서 유래했다. 논문에 따르면, 모텔이란 용어는 자동차를 의미하는 모터(motor)와 숙박시설을 의미하는 호텔(hotel)의 합성어로 미국적 어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는 성적 친교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일본식 '러브호텔'(love hotel)에 영향을 더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논문은 전한다.

오랫동안 여관은 성매매 공간으로 여겨졌다. 여관에 관련된 법은 박정희 정권 시기인 1961~62년 숙박업법·공중위생법 등이 제정되면서 법적으로 정비됐다. 1986년 아시아경기대회와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숙박업에 대한 세금 면제와 은행 융자 완화가 이루어졌고 결과적으로 숙박업소 수가 크게 증가하였다"고 논문은 전한다. 당시 여관은 객실에 따라 분류했는데, 20실 이상이면 '갑'이라 분류했다. 이때부터 여관(갑)은 '장급여관'으로 불리게 됐다. 장급여관은 개별 욕실이 따로 설치돼 있고 침대방이 있었다는 점에서 차별화됐다.

낮 시간에 객실을 시간 단위로 빌려주는 '대실'은 1990년대에 일반화됐다. 그것은 "소위 '연인들 간의 은밀한 성적 친교'를 위한 전용 공간으로서 러브호텔의 시대가 도래" 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논문은 "정부 시책에 맞춰 객실 안 욕실 시설, 다수가 함께 사용하는 온돌방 대신 2인용 침실방을 마련한 것이 결과적으로 성적 프라이버시 보호에 한몫하게 되자 업주들은 숙박이 아닌 성적 친교를 위해 잠시 방을 빌려주는 영업 행태를 보편화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지방자치제 도입과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각종 규제 완화도 러브호텔 증가에 영향을 끼쳤다. 1999년 식품위생법 개정으로 숙박업소 영업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뀌었다. 도심에서 떨어지되 접근성이 보장되는 러브호텔이 등장한 것도 이 즈음이다.

논문은 "당시 업주들에 따르면, '남는 장사'를 위해 최소 2.5에서 3.5 회전을 목표로 했다"고 전한다. "'모텔=불륜'이라는 이미지를 더욱 공고화하는 작용"이 일어난 것도 이 때다. 2000년대 중반, 성매매특별법 등으로 모텔업이 타격을 입자 "업주들은 시설과 서비스 개선, 새로운 고객층 확보를 통해 불황을 타개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오늘날 모텔의 틀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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