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가격에 먹는 고소한 풍미의 한우구이

2013. 7. 2.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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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풀었을 때, 귀소본능(歸巢本能)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단순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 자연으로 땅으로 돌아가고 싶은, 어쩌면 가장 원론적이면서도 소박한 욕구다. 전원생활에 대한 로망으로 김보균 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전북 부안군으로 내려갔다. 복잡한 생각과 상념은 제쳐두고 한동안은 '땅'과 가까운 삶을 살고 싶었다. 처가 근처에서 작은 텃밭을 가꾸며 흙냄새도 매일 맡았다. 자주 갔던 군내 장터에는 정말로 사람 사는 냄새가 폴폴 났다. 푹푹 찢어놓은 우거지와 뭉텅뭉텅 썬 고기를 알차게 담아주는 국밥도 쌈짓돈 정도면 한 그릇 충분히 비울 수 있었다.

다시 서울로 돌아와 질 좋은 한우고기를 저렴하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가게를 차렸다. 이 역시 귀소본능의 한편에서 비롯된 일이다. 부안군의 시골장터 안의 허름하고 값싼 정육식당을 만났을 때 그는 '그래, 바로 이거다' 싶었다. 욕심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듯, 계산하지 않고 머리 쓰지 않으며 좋은 음식을 제공하는 일. 음식 장사의 시작과 끝은 그러하리라, 생각했다.

주머니 가벼운 이들을 위한 착한 실비식당

서울 문래동의 <값진식육>은 1만3000원에 질 좋은 한우고기를 먹을 수 있는 주옥같은 집이다. 크지도 않고 테이블도 몇 안 되는 작은 식당에서 저녁시간 고기 손님만 서른 번을 받는다. 전북 부안에서 2년 정도 전원생활을 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장터 내 허름한 정육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투박한 손으로 신선한 한우고기를 툭툭 썰어 헐값에 판매하는 주인장의 소박한 마음이 인상적이었다. 원체 살기 팍팍한 세상이라고 하지만, 마음을 비우고 인정을 채우면 안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고기는 한우암소만 사용한다. 외식상품화를 위해 '기름지게' 키워진 거세우는 연하고 부드러운 맛은 좋을지 모르나 몇 점 먹고 나면 느끼하다는 것을 진짜 소고기마니아들은 안다. 반면 암소는 비교적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있다.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육즙과 육질 자체에서 우러나는 특유의 풍미가 감돌아 계속해서 당기는 맛이다. 한 고기전문가는 "암소고기는 먹고 난 후 침을 대여섯 번 삼킬 때까지도 진한 풍미와 향이 입안에 남아있을 정도로 고소한 맛이 뛰어나다"고 이야기했을 정도다.

1만3000원의 한우모둠구이(150g)에는 등심과 갈빗살, 부채살, 업진살이 포함된다. 주로 1등급이나 그보다 한 단계 더 높은 1+등급의 신선한 고기다. 각 부위가 지닌 맛의 특성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골고루 섞어 내면 그 맛이 훨씬 풍부하다. 2주가량의 숙성으로 조직을 좀 더 부드럽게 해 '결대로 부서지는' 듯한 묘한 식감도 제대로 살렸다.반찬은 단출하다. 간장 양념에 달게 무쳐 숙성시킨 양파장아찌와 깍두기 김치, 상추샐러드가 전부다. 풍성하진 않지만 소고기와 곁들였을 때 그 나름의 궁합이 잘 맞는다. 오히려 필자 같은 주당에겐 가짓수 많고 밥반찬에 가까운 찬들보다는 이편이 낫다. 무엇보다 가격을 생각했을 때 이 정도 상차림은 군더더기 없고 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 오는 날 소고기에 소주한잔 생각나면…

묵직한 돌판 위에서 고기가 노릇노릇 잘 익었다. 참숯불에 직화(直火) 방식으로 구워먹을 때보다 확실히 불맛은 덜하다. 그러나 불판에 기름기가 적당히 돌아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은 좋은 편이다. 잘 익은 고기는 소금에 찍어 먹어도 맛이 좋지만 마늘기름장이나 액젓소스에 찍어 먹어도 별미다. 액젓소스는 갈비탕 고기를 찍어먹는 특제 소스에 까나리액젓과 청양고추, 마늘, 양파 등을 넣고 만들었다. 액젓 특유의 향과 알싸한 청양고추가 잘 어우러져 고기 맛을 더욱 좋게 한다. 전부 주인장이 직접 만든 소스들이다.

고기를 다 먹고 난 후 물냉면으로 시원하게 입가심하는 것도 좋지만, 이 집은 된장찌개(5500원, 후식용 1인 3000원)가 훨씬 맛이 좋다. 멸치육수를 바탕으로 콩나물과 청양고추, 두부, 표고버섯, 소고기 등을 푸짐하게 넣어 맑고 칼칼하게 끓여낸다. 입안에 남은 고기 냄새도 정리해주고 남은 술잔 비우기 위한 마지막 안주로도 탁월하다. 식사로 마무리하자고 주문했다가 주당의 경우엔 '사장님 여기 소주 한 병 더!'를 외치는 일이 다반사란다.

점심에는 푸짐한 갈비탕(8000원)과 된장찌개를 주로 판매한다. 갈비탕은 성인 남자가 먹기에도 넉넉할 만큼 양이 많다. 갈비 작업량을 고려해 하루 60~70그릇 한정 판매한다. 점심식사용 된장찌개는 고기 손님에 한한 '후식버전' 된장찌개와는 전혀 다른 맛으로 끓여낸다. 후식용 된장찌개가 '술안주'에 가깝다면 점심용은 밥과 함께 먹기 좋은 '강된장' 스타일에 가깝다. 멸치 대신 고기 육수와 재래식 된장을 사용해 걸쭉하고 진하게 우러나는 맛이 특징. 점심에 방문하는 손님들은 대부분 큰 대접에 밥과 된장을 푸짐하게 올려 슬슬 비벼먹는다고 한다. 요즘 같은 날씨에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제법 많은 양의 밥 한 공기를 싹 비우고 일어난다.

이 집의 매력은 소박한 분위기다. 격조했던 동창과 비 오는 날 저녁에 만나 소주 한잔 나누어 마시면서 사는 이야기 나누기에 더없이 좋다. 저녁 7시만 되면 젊은 남성들이 넥타이를 풀고 고기를 구워 소주를 즐긴다. 젊은 여성 손님도 제법 많다. 예쁘고 도도한 아가씨 둘이서 한우고기 3인분에 그들만의 레시피로 된장비빔밥까지 만들어 먹고 가는 것도 봤다. 부안의 시골장터에서 봤던 정겨운 풍경을 도심에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개업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아 벌써 입소문이 나는 바람에 요즘 주인장 김 씨는 매장 밖을 나갈 틈이 없다. 주방 한쪽에 마련한 반 평도 채 안 되는 공간에서 하루 종일 고기 작업 일에만 매진한다. 아내와 아이들은 여전히 전북 부안에 있다고 한다. 장사를 준비하는 동안에는 그래도 1주일에 한 번은 마주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주말에도 통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좀 더 자리가 잡히고 일손도 풍부해 여유가 생기면, 좋은 고기와 맛난 된장찌개를 아내와 아이들과 제일 먼저 나누고 싶다"며 김 씨가 웃는다.<값진식육>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3가 77-43, (02)2634-9288

기고 = 글 황해원(※ 외부필자의 원고는 chosun.com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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