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퇴임 앞둔 김인준 교수_"법·회화·건축 교수님, 제가 청강해도 되겠습니까?"

김영진 기자 2013. 6. 14.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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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서 경제학 강의 33년.. 국내 주류 경제학 정착 기여

"기인(奇人) 화가 중광 스님은 '괜히 왔다 간다'고 하셨지요? 전 즐겁게 왔다가 즐겁게 갑니다."

오는 8월 정년 퇴임을 앞둔 김인준(金仁埈·65)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퇴임(退任)의 변(辯)은 의외로 경쾌했다. 33년의 강단 생활을 접는 아쉬움보다 그동안 후학들을 길러온 보람이 컸던 것 같았다.

김 교수는 서울대 상대 재학 중 미국 유학 길에 올라 다트머스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하버드대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0년에 귀국해 그해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교수로 강의를 시작했고, 이후 학부 통합 등으로 경제학부 교수로 일해 왔다.

그는 퇴임 후엔 청강생이 되고 싶다고 했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더는 티칭(강의)은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대신 다른 교수님들이 허락하시면 서울대에서 법학과 그림, 건축학 강의를 듣고 싶습니다." 법학은 자신의 전공인 경제학을 연구하면서 학문적으로 접근해보고 싶었던 분야였고, 그림·건축학은 평소 관심을 갖고 있었던 학문이어서 정년을 마치면 꼭 공부하고 싶었다고 했다. 김 교수는 "학생이 아닌 교수가 수업에 참가하면 담당 교수님에겐 부담될 수밖에 없어 사실 조심스럽지만, 잘 말씀드려 볼 생각"이라며 청강생의 뜻을 이루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김 교수는 "퇴임하면 학교(서울대)에서 멀면서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곳에 개인 사무실을 내고, 학교로 수강하러 다니는 게 지금으로선 가장 큰 소망"이라며 웃었다. 그는 중국어 회화 실력도 갖추겠다고 했다. 그는 "학생들에게도 중국어를 익히고 중국을 열심히 공부하라고 가르쳤다"며 "지금 학생들이 한국 경제의 주역이 되는 20년 후엔 중국어가 영어만큼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년 퇴임식도 하지 않는다. 지난 5일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한 국제금융론의 마지막 수업을 고별 강연 삼아 퇴임식을 대신했다. 대형 강의실에서 진행된 고별 강연에는 학부생 100여명과 동료·후배 교수 100여명 등 200여명이 함께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학생들에게 경제이론을 인용해 세 가지를 당부했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뒤따르는 수요·공급 이론처럼 무슨 일이든지 상대방이 있는 만큼 갑(甲)의 위치에 서더라도 을(乙)의 입장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하고, 비교우위 이론처럼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잘하는 분야를 찾는 게 중요하며, 기회비용이론처럼 한꺼번에 모든 것을 다 얻을 수는 없고 둘 중 하나는 포기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지라는 조언이었다.

김인준 교수는 국제금융과 거시경제 분야에 정통한 학자로 학문적 업적을 쌓으면서 한국경제학회장과 금융통화운영위원, 금융발전심의위원 등을 지냈다. 초임 교수 시절 마르크스 경제학과 제3세계 이론 등이 주름잡았던 1980년대에 주류 경제학을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다.

부친인 고(故) 김형일 전 신민당 의원은 5·16쿠데타 당시 육군본부 참모차장이었는데 군정(軍政)에 반대하다 예편당했다. 이후 2년간 미국유학을 다녀온 뒤 야당에 들어가 6대부터 9대까지 내리 4선 국회의원(지역구 경기 화성)을 하면서 신민당 원내총무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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