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으로 맞서고, 자기 목에 줄 감아'

밀양·김은지 기자, 전혜원 수습기자 2013. 6. 6.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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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0일 한전은 밀양 송전탑 건설을 다시 강행했다. 가진 거라고는 몸뿐인 '할매'들은 알몸으로 한전 직원에게 분뇨를 뿌리고, 자신의 목에 줄을 걸고 싸웠다. 새벽 4시부터 시작된 24시간 투쟁을 따라가 봤다.

5월22일 오후 3시. 처진 허리 살, 깡마른 팔다리 그리고 빨간 ‘빤스’. 곽정섭 할머니(66)의 맨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할머니는 망설일 틈도 없이 옷섶을 풀어헤쳤다. 부끄러울 새가 없었다. 자신을 강제로 들어내려는 한국전력 직원의 완력에 맞선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내는 죽어도 여기서 죽는다. 송전탑은 못 세우는기라.” 쇳소리 속에 울음이 뒤섞인 비명이었다. 맨몸으로 뛰어다니며 한전 직원에게 흙을 뿌리는 곽 할머니 앞에 남자 직원을 대신해 여자 직원이 나타났다. 할머니를 붙들고 모포를 덮은 다음 끌고 나갔다.

윗옷을 벗은 박순연 할머니(69)는 목에 줄을 휘감았다. 또 다른 할머니의 바지에는 분뇨가 잔뜩 묻어 있었다. 한전 직원이 오면 던지겠다고 할머니들이 제각각 준비한 페트병 속 오물이 여기저기 튀었기 때문이다. 30℃를 웃도는 기온 탓에 퀴퀴한 냄새는 금세 번졌다. 하늘에서는 ‘타타타’ 소리를 내며 헬리콥터가 날아다녔다. 공사 장비를 매단 채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화악산의 127번 송전탑 부지 근처를 맴돌았다.

ⓒ시사IN 이명익 5월22일 경남 밀양군 부북면 화악산의 127번 송전탑 건설 예정지에서 마을 주민들이 자신을 끌어내려는 한전 직원들에게 저항하고 있다.

미숫가루를 들고 피란 가던 한국전쟁을 겪은 손희경 할머니(79)는 “완전 전쟁판 아잉교”라고 말했다. 127번 송전탑 부지에서 충돌이 있던 같은 시각, 손 할머니는 127번 송전탑 부지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화악산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할머니·할아버지는 나이에 따라 지켜야 할 곳을 나눴다. 할머니·할아버지가 전부인 주민들은 ‘50대는 어리고, 60대는 젊고, 70대는 적당하며, 80대는 나이 든 축’으로 분류했다. ‘젊고 적당한’ 6070 주민들이 선봉대 노릇을 했다. 이들은 화악산 능선에 자리 잡은 송전탑 부지에서 한전 직원이나 전경과 직접 대치했다. 나이 든 축에 속하는 70대 중·후반부터 80대 주민은 화악산 입구에서 중장비가 올라가는 길목을 막아섰다.

공사 지역 늘면서 충돌도 늘어

송전탑 부지 위에서 일이 벌어졌다는 소식에, 손희경 할머니는 1t 트럭 짐칸에 앉아 부리나케 꼭대기로 올라갔다. 손 할머니가 도착하자마자 전경이 막았다. 140㎝대 키에 몸무게 40㎏ 남짓밖에 나가지 않는 손 할머니는 전경 다리 가랑이 사이를 뚫고 들어갔다. 그러나 곧이어 전경 대열이 하나 더 나왔다. 이번에는 전경들이 잽싸게 두 다리를 붙이는 바람에 전경 사이를 헤쳐 나갈 수가 없었다. 제발 보내달라고 애걸복걸했지만 전경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자신보다 나이 어린 60대 ‘새댁’이 끌려나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함께 올라온 위양리 권영길 이장(76)은 항의를 하다 쓰러졌고 할머니 몇 명과 함께 병원으로 실려갔다.

5월22일 오후 5시. 한바탕 충돌 끝에 한전 직원과 전경들이 물러갔다. 사흘째 공사를 막은 할머니·할아버지들도 화악산 입구로 내려왔다. “욕봤데이(수고했다)”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헤어졌다. 집회·시위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무리 구호’나 ‘정리 발언’은 없었다. 손희경 할머니는 병문안을 가겠다며 채비를 했다. 밀양시 삼문동에 있는 센텀밀양병원 6층에 입원한 박윤순 할머니(76)를 보자마자 손부터 부여잡았다. “많이 놀랐제. 몇 사람이 죽어야 되는 건지….” 손 할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박씨와 같은 병실에는 단장면에서 온 한 할머니도 입원했다. 5월20일, 한전이 한동안 멈췄던 송전탑 공사를 다시 강행하면서 곳곳에서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밀양시 단장면 3곳, 상동면 2곳, 부북면 1곳에서 시작한 공사는 24일 단장면 1곳과 상동면 1곳이 추가되면서 모두 8곳이 되었다. 충돌 지점도 따라서 늘었다(현재 밀양 단장면·부북면·상동면·산외면 4개 면 1484가구 1813명이 송전탑 건설에 반대한다). 단장면의 할머니는 “아침이 오는 게 무섭다”라고 말했다. 병원 응급실에도 송전탑 충돌에 따른 환자 3명이 누워 있었다.

3개 면 마을 노인들의 대응 방식은 비슷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중장비 앞에 드러눕거나 송전탑 예정 부지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몸으로 막는 수밖에 없었다. 끌려 나가는 걸 막기 위해 서로의 몸을 쇠사슬로 묶기도 했다. 몇 해 전, 부지 건설에 따른 벌목을 막기 위해 나무를 끌어안았을 때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절박한 시위였다. 한전 직원이나 전경보다 빨리 움직이기 위해 이들은 새벽 4시에 약속된 장소로 집결했다.

ⓒ시사IN 이명익 화악산 입구를 막는 밧줄 뒤에 앉은 손희경 할머니(앞줄 가운데 안경 쓴 이)를 비롯한 위양리 주민들.

공사가 재개된 5월20일 이후 새로운 게 있다면 ‘목줄’의 등장이었다. 부지로 가는 길목의 나무나 포클레인에 밧줄을 휘감고 동그랗게 말았다. 여차하면 목을 걸겠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대치 현장 곳곳에서는 죽음에 대한 긴장감이 높았다. 앞선 경험 때문이었다. 지난해 1월 산외면 희곡리의 이치우씨(당시 74세)가 분신자살을 했다.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그는, 두 형제와 함께 평생 논밭을 일구며 살아왔다. 지난해 한전이 공사를 강행한 이튿날, “오늘 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되겠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마을 입구 다리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이씨의 죽음은 주민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지금도 할머니·할아버지 사이에서는 “몇 명 더 죽어야 이 싸움이 끝나려나…” 하는 탄식이 곧잘 흘러나왔다.

5월22일 저녁 8시. 손희경 할머니는 사흘 만에 집으로 향했다. 한전 공사가 재개된 월요일 전날부터 화악산 입구 움막에서 할머니는 숙식을 했다. 지난해 윤여림 할아버지(85)가 중심이 되어 만든 움막이다. 비닐하우스 모양의 15㎡ 남짓한 공간이지만 부지깽이도 놓고 가스레인지도 설치해 숙식이 가능했다. 화장실은 없다. 요강이 덩그러니 한구석에 놓여 있고 움막 바깥에 호스를 놓아 생활용수를 썼다. 집 모양을 갖췄어도 집만 못했다. 성큼 다가온 여름 날씨지만, 새벽에는 움막에서 자는 게 추웠다. 그래도 밤중에 부지불식간에 한전 직원이 쳐들어올까 걱정하며 집에서 잠을 설치는 것보다는 움막에 있다 뛰쳐나가는 게 맘이 편해 3박4일 내리 움막에서 살았다.

할머니는 밀양시 삼랑진읍 덕촌에서 부북면 위양리로 17세에 시집와 ‘덕촌댁’으로 불렸다. 그녀가 스무 살 때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유언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땅을 지키라는 내용이었다. 땅을 팔고 부산으로 가 용접 기술을 배우겠다는 남편을 눌러 앉힌 이도 손 할머니다. 쉰여덟에 당뇨를 앓다 세상을 떠난 남편과 밀양 시내, 부산, 강원도 등으로 떠난 자식들을 대신해 손 할머니는 고향집을 지키고 있다. 할머니의 바람은 한 가지다. 많은 보상금도 아니고, 그저 살던 곳에서 여생을 마무리하는 것.

‘보상금 더 받으려 그런다’ ‘님비(지역 이기주의)다’라는 도시 사람들 시각이 가장 답답하다. 보상금을 더 준다는 소리를 할 거면 그 돈으로 ‘지중화(송전선로 지하 매설)’를 하라는 게 손 할머니를 비롯한 마을 주민의 요구다. 마을 주민들은 ‘지중화’니, ‘765㎸ 송전탑을 새로 짓지 말고 기존 345㎸ 송전선로를 보강하라’는 등 대안을 꿰고 있었다. 사흘 만에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온종일 입었던 ‘765㎸ OUT’이라고 적힌 빨강 조끼를 벗었다. 그 안에 입은 팥죽색 생활한복 상하의 차림 그대로 이불 안에 들었다. 내일 걱정에 쉽게 잠이 들지는 않았다.

5월23일 새벽 3시. 손 할머니는 절로 눈을 떴다. 새벽 5시 정도에 일어나는 손 할머니에게도 이른 아침이다. 해도 뜨지 않은 시각, 손 할머니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입안이 헐어 죽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지팡이 하나를 짚은 채 다시 화악산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사IN 이명익 5월22일 아침 여수마을 주민들이 포클레인에 목줄까지 걸어놓고 공사를 막았다.

할머니가 움막에 모인 ‘새벽조’ 15명에게 건넨 첫 인사는 밥이었다. “밥 묵었나?” 밥을 먹지 않은 사람을 위해 움막에서 지은 밥과 파랗고 노란 나물 반찬 세 가지, 멸칫국을 차렸다. 움막 한편에 모으고 있는 분뇨 통이 여러 개인 탓에 유독 움막 안에는 파리가 극성이었다. 왼손으로는 파리를 쫓는 손짓을 하고 오른손으로는 숟가락질을 하는 ‘새댁’을 보며 손 할머니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본인도 같이 산에 올라가겠다고 했다. 어제 처음부터 같이 있지 못한 게 못내 마음에 걸렸던 눈치였다. 당장 반대 목소리가 돌아왔다. “언니는 올라오지 마라. 언니가 숨이 넘어가면 우리가 더 흥분한다. 여기서 애써줘라.” 결국 손 할머니는 움막에 남았다. 10명이 올라갔고, 5명은 아래에 남아 오는 사람을 환영하고 밥을 먹이고 자리로 이끌었다. 할머니의 손은 쉴 틈이 없었다.

“얼마나 더 죽어야 싸움이 끝나나” 5월23일 아침 6시30분. 산 아랫자락 길목에 스타렉스 차량 4대가 등장하자 주민들이 긴장했다. 이어 소방차와 구급차가 화악산 길목 앞까지 다가왔다. 물을 뿌려 사람들을 흩어지게 만든 다음 진압을 할 거라는 말이 돌았다. 앞서 오전 6시쯤 왔다갔던 경찰 정보과 직원이 정보를 빼돌려서 구급차가 왔다면서 한 할아버지가 기자에게도 소리를 쳤다. “여기 있는 기자도 정보 다 빼주는 거 아이가. 간첩질 하는지 어떻게 아노. 아무도 못 믿겠다.” 할아버지는 아는 경찰에게 전화해 이곳으로 오지 말라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움막 일을 끝내고 손 할머니는 화악산 자락 입구에 펼쳐놓은 돗자리에 앉았다. 동네 사람이 올 때마다 얼굴이 환해졌다. 반면 낯선 얼굴이 등장하면 누구냐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틈틈이 산 위 상황을 전해 듣고, 같이 앉은 할머니 10여 명과 격렬했던 어제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중간중간에는 대통령에 대한 원망도 했다. “내가 이제까지 임금님 욕한 적이 없는데 송전탑 때문에 입을 안 뗄 수가 없다. 할매·할배를 개처럼 끌어내고 박근혜 대통령은 이게 뭐 하는 기고.”

그래도 이야기 끝은 농사다. 이구동성으로 콩·들깨·고추 농사 걱정을 한다. 천생 농부들이었다.

5월23일 오전 10시30분. 민주당 우원식 최고위원이 움막을 찾았다. 손 할머니는 우 위원을 보자마자 큰절을 했다. “큰 절은 몇 번씩 다시 올릴 수 있으니 제발 우리 좀 도와주소.” 도움을 주는 누구에게나 큰절부터 한다는 할머니의 호소는 다시 울먹임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목줄 같은 거는 절대 매지 말라고 당부하며 우 위원은 다른 공사 현장으로 떠났다. 우 위원을 등에 두고 할머니들 사이에서는 “국회의원 한 명이라도 어제 끝까지 같이 있었으면 그런 험한 꼴은 안 당했다”라는 말이 오갔다. 또 다른 할머니는 “여기 지역구인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왜 안 오노?”라고 말했다. 돗자리에 앉아 있던 손 할머니는 지팡이를 찾아 일어나 우 위원이 말한 그 목줄로 갔다. 목줄을 만지며 “안 되면 죽지, 젊은 사람들 (죽는 것)보다는 그게 안 낫나”라고 중얼거렸다.

5월23일 오후 3시. 어제 충돌이 있었던 시간이 다가오자 손 할머니는 초조해했다. 몇 시간 동안 말하지 않던 어제 일을 다시 꺼내면서 “오늘은 그래 못하겠제?”라며 주변에 물었다. 이날은 더 이상 충돌은 없었다. 해 질 무렵 전경과 한전 직원이 사라지자 손 할머니는 다시 여유를 찾았다. 그러면서도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지 모르는 기다. 오늘도 단장면에서 할매 둘이 끌려나갔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손 할머니가 5월20일 새벽부터 시작한 ‘단기 투쟁’은 오늘로 나흘째, 송전탑 공사 계획이 알려지고 반대를 해온 ‘장기 투쟁’은 8년 며칠째로, 또 하루를 보냈다.

밀양·김은지 기자, 전혜원 수습기자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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